구 게시판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5-끝)

페이지 정보

태영/문 작성일02-08-05 13:12 조회1,599회 댓글0건

본문

제1회 안사연 여름캠프 1차 보고(5)



<7월 29일 월요일> - 영호루 이후

(1) 파조 도평의공, 사촌 입향조 감목공 묘소 참배

◆ 15:40 영호루 출발 - 15:53∼16:35 무릉유원지 - 16:58∼17:25 고운사 관람 - 18:18 행촌

도착, 18:50 행촌 출발 - 19:10∼20:00 의성읍 성광교회 도착, 저녁식사 - 20:10∼20:35 창회

종친 특강 - 21:25 사촌마을 도착

<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의 명당지 >



이번 행사는 소산마을에서 시작해 사촌마을에서 종료한다는 기획진의 구상에 따라 답사팀은

15:30에 영호루를 출발, 마지막 코스인 사촌마을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더위도 식힐 겸 나이

어린 참가자들을 배려해 <무릉유원지>와 <고운사>에서 잠시 쉬었다 갔습니다.

고운사는 우리 나라 최고 명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고졸한 멋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웅전 뒷산의 우거진 소나무숲이 인상적인데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고 합니다.



사촌마을로 들어가기 전 답사팀은 어느 산고개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경치를 감상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후평 은행재>라는 곳이었습니다.

답사팀이 서 있는 <은행재>에서 정면(동쪽)에는 <건마산성=성재>이 우뚝하고, 그 북쪽 위로는

그 유명한 <사촌가로숲>이 뚜렷했습니다. 남쪽으로는 속칭 <마뜰>이라는

기름지고 너른 벌판이 펼쳐졌습니다.



고개를 내려와 답사팀은 파조이신 <도평의공 할아버지>와 사촌마을 입향조이신 <감목공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행촌>(의성읍 업1리)으로 향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데 멀리 특이한 산이 보였습니다. 여느 산과 달리 커다란 달걀을 세

워놓은 형상인데, 정상 부근에 봉분이 보였습니다. 생김새는 달걀처럼 산 전체가 둥그렇게

보였지만, 기운은 달걀처럼 약한 게 아니라 커다란 쇠공처럼 아주 단단한 느낌이었습니다.

"참 특이하게 생긴 산이로다" 하고 있는데, 다른 산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달려 비포장길로 들어서자 다시 그 산이 나타났습니다. 정중 종친 설명으로는

<중앙 알봉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둘러싸고,

좌우 양측에서 이중겹으로 물이 흘러들어와 합수되어 정면 마을 중앙의 큰 못으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또 그 뒤로 큰 산줄기가 병풍처럼 넉넉하게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윤만 종친께서는 창회 종친께 들은 이야기라 하시면서 이곳의 지형이

<복호(伏虎)> 형국이라고 적은 것을 보았는데, 찾아보니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내용은 정중 종친이나 윤만 종친께 부탁드립니다.)



행촌에 도착하니 그 산이 바로 도평의공 휘 구정 할아버지와 감목공 휘 자첨 할아버지를 모

신 곳이었습니다. 답사팀 도착과 거의 동시에 우회 종친이 모시러 간 창회 종친(전 대종

회 부회장)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휘 구정 할아버지와 휘 자첨 할아버지를 모신 산은 높지는 않지만 동그랗게 생겨서인지 아

주 가팔랐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창회 종친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경청하였습니다. 이곳은 휘

구정 할아버지의 며느님 묘소를 위에 쓴 도장법(倒葬法)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예는 율곡 이

이 선생의 경우 등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의성읍 성광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문

에는 정중 종친의 부인께서 답사팀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인근에 정중 종친의 처가가 있

는데 장모님께서 독실한 신자라고 하십니다. 그 연유로 이곳에서 다음 날 헤어질 때까지 매

끼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더운 날 음식 장만에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녁 식사 후 부인께서 병환 중인데도 둘째 아드님과 함께 이번 행사에 참가한 재원 종친께

서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베스트 드라이버답게 답사팀 차량 행렬에서 매번 후미를

맡아 안전운행에 큰 역할을 담당하신 재원 종친께 감사 말씀 드리며, 가정의 우환이 속히

걷히기를 기원합니다.



재원 종친을 배웅하는 사이에 창회 종친께서는 답사팀에게 특별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강의

주제는 <의성의 명소 명인과 효>였습니다. 창회 종친께서는 국사위원이자 향토사학자로서

우리 문중뿐만 아니라 영남 일대에서 손꼽히는 한학자이십니다. 이 날 창회 종친께서 들려

주신 <민자건> 등의 효도 이야기는 답사팀 모두에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내용이

었습니다.



강연 후 답사팀은 어두운 밤길을 달려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드디어 사촌마을에 도

착하였습니다. 마침 사촌마을은 88억원의 국비지원을 받아 건물 복원, 우회도로 신설, 마을

길 단장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점곡면>의 첫인상은 여느 농촌마을과 흡사했지만, 사촌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고풍스러우

면서도 법도 있는 담장길과 기와집 등이 여느 농촌마을과 완연하게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

다.

골목길은 얼핏 보기에는 좁아 보이는데, 차량이 지나가고도 넉넉했습니다. 기다란 골목길을

지나 <만취당> 앞 정중 종친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만취당 앞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답

사팀은 정중 종친의 부친이신 희국 종친을 찾아뵈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시

는 희국 종친께 맞절로 상견례를 한 다음 답사팀은 2차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희국 종

친께서는 한문 서예에 빼어난 솜씨를 지니셨다고 합니다.



구름 속에 숨었다 나오는 달을 오랜만에 한껏 쳐다보는 사이 한 사람 두 사람 깊은 잠에 들

었습니다(만취당, 정중 종친 자택, 점곡관광농원). 특히 정중 종친의 안내로 윤만 종친과 태

영 종친은 사촌마을의 상징인 만취당에서 단잠을 이루는 소원을 성취했답니다.



<7월 30일 화요일>

(2) 사촌문중 어른 예방과 퀴즈대회

08:20 의성읍 성광교회 도착, 아침식사 - 09:20 사촌마을 도착 - 09:40 만취당 사촌마을 문

중 어른 예방 - 10:20∼10:50 성지순례(姓地巡禮) 퀴즈

< 600년 전통의 선김 반촌, 사촌마을 >

사방이 트인 만취당에서 잤건만 신기하게도 모기나 물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08:20 어제 저

녁에 들른 의성읍 <성광교회>에서 맛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의성 9봉산이

빤히 건너다 보였는데, 산봉우리 9개가 연이어 있다고 해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맨 끝 9번째 산 정상에는 아담한 정자 <문소루>가 서 있었습니다.

식사 후 정중 종친의 부친과 담소를 나눈 후 09:20분에 사촌마을로 돌아와 09:40분 만취당

에 모이신 문중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 만취당에 모이신 사촌마을 문중 어른 ==

☆성수(회 항렬) - 도평의공파 파회장

☆학수(회 항렬) - 전임 대종회 이사

☆재근 - 현 도유사

☆희국(태 항렬) - 정중 종친 부친

☆천수(회 항렬)

☆창회 - 전 대종회 부회장

☆호봉(재 항렬)

☆선회



문중 어른들께 인사를 드린 후 창회 종친께서 <사촌마을 안동김씨의 유래와 명인 명소>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곳 사촌마을은 대과 13명, 소과 26명의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인근 몇 개 고을을 합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촌마을은 강직

한 선비정신을 간직한 곳으로 입향 6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랍니다. 특히 의성의병이

봉기할 당시 구성원 중 대부분은 사촌마을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사촌마을에는 우리 선김을 비롯해 권씨와 류씨가 살고 있는데, 류씨는 처음에는 윗동

네에 살다가 현재는 혼재해 살고 있으며, 권씨는 주로 윗동네에 모여 살아 상촌 권씨라고도

한답니다. 물론 절대 다수는 우리 종친들이십니다.



사촌마을은 소산마을과 함께 대종회가 결성되기 전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 충렬공 할아버지 향사를

담당해 온 공로가 있으며, 경북 일원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선김의 구심점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촌마을은 <영남의 와촌>, <영남의 기와바다>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기와집이 많았

는데, 임란과 6·25동란 등으로 인해 수많은 집이 불탔다고 합니다.



창회 종친의 마을 소개에 이어 어제 영호루에서 실시한 4행시 짓기에 출품한 작품들을 발표

한 다음 답사팀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지순례(姓地巡禮) 퀴즈>를 실시했습니다.

퀴즈 내용은 우리 문중의 역사와 관련되거나 이번 답사 지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주회 종

친께서 몇 날 며칠을 애쓰신 끝에 만든 것입니다.

일반 퀴즈대회와 달리 우리 문중을 비롯해 사촌마을, 소산마을 등과 관련된 내용인 것을 아

시고는 사촌마을 문중 어른들께서는 흐믓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수고하신 주회 종친께 감

사드립니다.

퀴즈대회 1등은 항용 종친의 자제 용진 군, 2등은 영환 종친의 자제 홍묵 군이 차지했습니

다. 시상은 도평의공파 회장이신 성수 종친께서 해 주셨습니다.



(3) 사촌마을 답사

10:50 사촌마을 답사 시작 - 11:34 사촌 가로숲 - 11:50 후산정사 - 12:10 창회 종친 자택

방문 - 12:25 영귀정 향 - 12:29∼12:44 영귀정 탐방

< 영남의 기와바다을 그리며 >



간소하나마 마을에서 쓰시라고 선풍기 한 대를 기증한 답사팀은 10:50분부터 사촌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보는 답사에 들어갔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게시판에 이미 올라온 자

료가 많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현지에서 듣고 본 내용을 위주로 보고드리겠

습니다.



◆ 만취당

만취당 김사원 할아버지 종택은 한창 복원사업 중인데, 이 종택에 딸린 정자가 바로 만취당

입니다. 만취당은 11칸 규모의 대청 건물로 임진란, 병신란(을미사변 이듬해 사촌의병이 봉기한

해의 난을 사촌마을에서는 이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이나 6·25동란의 전화에도 무사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옛 한옥과 달리 거의 고쳐 지은 부분이 없다고 합니다. 현판은 한석봉 글씨로

전해진답니다. 이외에도 하회마을의 걸출한 인물인 류운용·류성룡 선생 형제분의 안동김씨 모부인께서

타고 다니시던 가마틀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취당에 있던 목판들도

장소를 옮겨 소중히 보존하고 있답니다.



사촌마을은 배[舟]의 형국을 하고 있어 우물을 파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취당 바로 옆에 제

법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 우물물을 드시고 류운룡, 류성룡 두 분을 낳게 되셨다고

합니다.



류운용 선생은 사촌마을이 외가인 데에다 만취당을 지으신 휘 사원 할아버지와 동갑이라 어

린 시절 사촌에서 같이 자라셨다고 합니다. 물론 서애 류성룡 선생 역시 어려서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답니다.



◆후송재

후송재는 휘 사원 할아버지의 동생이신 휘 사정 할아버지의 종택에 딸려 있습니다. 만취당

종택과 후송재 종택은 각각 <백파>와 <계파>로 부르고 있답니다.



후송재는 전란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불에 타 약 10년 전에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만취당 종택에서부터 후송재 종택까지 길게 회랑(지붕을 씌운 복도)으로 이어져

있어 비를 맞지 않고 다녔다고 하니 그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만합니다.

그 큰 집터가 여럿으로 나뉘어지고 만취당과 후송재 사이에 길이 나 완전히 분리됐으니 세

월이 무상하기만 합니다. 다행히 이번 복원사업이 끝나면 옛 모습이 상당히 복원돼

바로 이동할 수 있게 될 거랍니다.



◆회나무 이슬

이외에 유난히 우뚝 솟은 회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에 맺힌 <이슬>을 받아 드시고 대과에

급제해 장령 벼슬을 지낸 선조가 계셔서 글공부하는 문중 선조들께서는 이 나무의 이슬을

받아 드시기도 했답니다.



◆사촌서림

11:20분경 사촌마을 안쪽의 답사를 끝낸 뒤 답사팀은 마을 바깥쪽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촌서림(사촌가로숲)>은 사촌마을의 풍수지리적 비보책으로 조성한 인공숲이라고 합니다.

사촌마을은 영남의 8대 명지 중 한 곳인데, 서쪽의 <와구산>이 터져서 외부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내수(內水)가 빠지는 모습이 보이는 결점이 있답니다.



이 결점을 메우기 위해 가로로 길게 조성된 숲이 바로 사촌서림입니다. 이 마을에서 나서

자란 희준 종친은 어릴 적에 아이들이 많이 나무에 올라가 껍질이 반들반들하던 때는 나무

가 잘 자라더니,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지 않으니 잘 죽더라며 옛일을 떠올렸습니다.



사촌서림은 상수리나무 등이 대중을 이루는데 열매가 손가락 두 마디쯤 돼서 매우 알차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기근이나 흉년 같은 비상시에도 매우 유용했을 것 같습니다.



◆후산정사

후산정사 역시 전란 등으로 불타 없어지고 강당만 남았는데, 도평의공파 종친들의 모금으로

약 10년 전에 재건되었답니다.



후산정사 앞 관리인이 살던 집 두 채는 해체 복원 중이었습니다. 후산정사 옆에는 두 사람

이 껴안아도 남을 정도의 향나무 2그루와 앞쪽에 커다란 회나무가 1그루 서 있습니다.

회나무는 괴나무라고도 하는데 <학자, 선비, 문인>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소산마을에서는 회나무가 <학자>를 뜻하기 때문에 대문을 세울 자리에 회나무

를 심는다는 소산마을 종손 석교 종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창회 종친 자택 방문

후산정사에는 모시 두루마기로 의관을 정제하신 문중 어른들이 대거 모여 계셨습니다. 정중

종친 얘기로는 답사팀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사촌마을 모든 분이

우리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셨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후산정사에 어른들께서 모두 나와 계셨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께

서는 정자로 올라와 좀더 담소를 나누고 가자고 손을 잡으시는데,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아쉽기만 했습니다.



후산정사를 끝으로 사촌마을 탐방을 끝내고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영귀정으로 향하던 도중

우리 일행은 창회 종친의 서재를 탐방하기 위해 자택 서실을 찾았습니다. 단아한 서실에는

각종 한적과 문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이외에 귀중본인 한적들은 아드님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창회 종친은 대학자이신 천사 김종덕 할아버지의 직계 자손이신데 한글 서예에 뛰어나다고

하십니다.



◆영귀정

<점곡 제2교> 바로 위쪽에 자리잡은 <영귀정>은 소담스런 곳이었습니다. 야트막한 동산

언덕에 올라선 자그마한 정자가 깊은 강물을 내려다보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정자 아래쪽에는 오래 된 소나무가 서 있는데 아쉽게도 말라죽고, 덩굴식물이 친친 휘감고

있습니다. 희준 종친은 그 나무가 살아 있을 때는 영귀정이 더 아름다웠다고 아쉬워했습니

다.



영귀정은 처음 세울 때는 초가였는데, 후에 기와로 고쳐 지었다고 합니다. 이 영귀정 뒤쪽

소나무숲에서 나는 송이버섯 품질이 뛰어난데, 그 채취권을 주고 대가로 받는 자금을 사촌

마을 종중 운영에 보태고 있다고 합니다.



(4) 아쉬운 작별

13:03 의성읍 성광교회 도착 - 13:37∼13:47 평가회(결산보고) - 14:00 작별 인사, 제2차·제

3차 행사 시작

< 마주잡은 손에서 손으로 흐르는 혈육의 정 >

영귀정에서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으로 창회 종친과 작별한 답사팀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의성읍 성광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한 뒤 간단한 평가회를 갖고 오후 2시에 한 가족씩 떠나가기 시작했습

니다.



정중 종친은 꽤 오랜 시간 안 보인다 싶었는데, 그새 의성읍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다는 마

늘을 잔뜩 사 갖고 와서는 한 접씩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답사팀 맞이

하느라 사전준비에서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애쓰고도 아쉬워 이처럼 귀한 선물을 안겨 주시

니 무어라 감사 말씀을 드려야 할지......



영환 종친과 태영 종친 두 가족이 먼저 떠나고, 윤만 종친을 비롯해 우회·희준·정중 종친

은 아주신씨 오봉 종택과 장대서원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발용 종친과 항용 종친은

거제도와 그 인근 외도를 거쳐 전남 강진의 일가를 찾아 먼 길을 떠났습니다.

답사팀 모두는 뜨거운 혈육의 정을 새삼 확인하고, 가정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안전운행을

기원했습니다.



답사팀 가족 여러분과 여러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했지만 홈페이지를 지켜 주시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 주신 전국의 종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눈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하신 정중 종친 부인을 비롯해

참가팀 가족의 부인 여러분께도 감사한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행사 참가자 중 가장 연로하

신 영환 종친의 자당 어른께서 내내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며, 강행군을 이겨낸 나이 어린 참

가자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답사팀이 돌아올 때까지 노심초사하셨을 대종회장님과 대종회 사무국장님,

소산마을과 사촌마을 종친을 비롯해 하회마을, 학봉종택 등 답사팀을 따뜻이 맞이해

주신 모든 분들께 큰절을 올립니다.



좀더 흥미진진하게 꾸려 나가지 못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김태영 배상







▣ 태영/문 - 보잘것없는 재주를 크게 보아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행여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중 형님, 실컷 자고 나서 일한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 김항용 -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큰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강진행 속편 보고를 정리 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김정중 - 노고에 감사! 큰일에 음식 부조는 어렵다며 찡찡대면서도 글 부조는 거저 되는줄 알고 글이나 한줄 지어 주세요 헀다던 옛 평민들 얘기 생각 나네요

▣ 김태서 - 수고하셨습니다.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 솔내 영환 - 정중씨 말씀이 더욱 가슴에 닿습니다. 글쓰는 부조가 얼마나 크고 어려운데...

▣ 김정중 - 사촌마을 출신보다 더더욱 사실적인 묘사와 지방 정서에 맞는 글을 올려주심이 바로 글솜씨와 사고의 깊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너무 감사 합니다 very good

▣ 김재원 - 답사 결과 자료올리 시느라 너무 수고 많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윤만 - 伏虎(복호) 이야기는 엎드려 쉬고있는 호랑이를 건드리면 큰일나듯이 이곳은 풍수지리상 복호의 형상이므로 묘소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는 대목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믛튼 어려운 작업 감사합니다. 우리 안사연의 역사에 한 장을 장식하셨습니다.

▣ 김발용 -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집필중이시던 재향군인50년사는 마무리 되셨나요. 문중일로 생계에 지장은 없으실려나? ㅎㅎㅎ

▣ 郡/김태영 - 고생하셨습니다,

▣ 김영윤 - 감사합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