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경순대왕 거주지 관련 개성부(開城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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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문 작성일02-08-08 04:34 조회1,511회 댓글0건본문
<경순대왕 개성 거주지 관련 지도>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개성의 옛 지도가 있는 곳입니다. 애석하게도 아주 상세한 지
도가 아니라 충렬공 본댁이 있었던 <앵계리>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경순대왕께서 사셨던
곳이 나타나 있습니다. 지도 중앙의 <만월대> 오른쪽 <라왕소거(羅王所居)>라 적은 부분인
듯합니다.
★자료 있는 곳 http://210.125.185.6/cgi-bin/kymapinfo.cgi?dirid=495&id=KYM_KW001_0031
이곳에 있는 지도를 클릭한 다음, 오른쪽 <보기영역크기>과 <보기영역배율>을 적당히
조절하시면 됩니다. 다음은 이곳에 실린 개성부 지도의 해설입니다.
<개성부(開城府) 해제>
개성부는 일제시대의 개성시와 개풍군, 장단군의 대남면·소남면에 해당하며, 지금은 개성직
할시의 개성시, 개풍군, 판문군, 장풍군의 서쪽 일대이다.
지도 왼쪽으로는 예성강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는 교동도와 강화도가 실제보다 작게 그려
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는 실선으로 표시된 임진강이 한강과 만나 강화도 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이곳
을 祖江이라 불렀다. 지금도 김포군 월곶면에 조강리란 이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도에는 고을의 鎭山 松岳山을 중심으로 1393년(태조 2)에 만든 內城의 모습과 강감찬의
건의에 의해 1010년(고려 현종 1)부터 21년 걸려 만든 羅城(또는 外城)의 흔적이 잘 그려져
있다.
내성 안쪽에는 고려 초부터 正殿의 역할을 하다 고려 말기쯤 불에 타버렸다고 알려진 滿月
臺의 터가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壽昌宮은 공민왕 때 延慶宮이 불탄 후 正殿으로 쓰였고,
조선의 태조·정종·태종이 즉위했던 곳이다.
연경궁 오른쪽에는 992년(고려 성종 11)에 國子監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가 이름이 바뀐
成均館이 보이고 있는데 지금의 대학에 해당한다. 성균관 아래쪽으로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
가 이방원의 자객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善竹橋를 비롯한 몇 개의 다리도 표시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덤인 王太祖陵-昌陵-作帝建古墓가 내성 왼
쪽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고려 때 가장 번창한 항구였던 碧瀾渡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
지 않은데 지도 왼쪽의 錢浦 아래쪽에 있었다.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항복했던 곳과 그가 거주하던 장소도 표시되어
있음이 눈에 띈다.
내성 오른쪽에 있는 穆淸殿과 아래쪽에 있는 敬德宮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에 살았던 곳이다. 특히 목청전에는 태조의 御容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 아래쪽의 齊陵은 태
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神懿王后, 厚陵은 조선의 2대왕 정종 부부의 무덤이다.
지도 위쪽에 있는 大興山城은 고려시대에는 戰時의 피난처로서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조선
초에 퇴락해 있던 것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改築한 곳이다. (이기봉)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재원 -
▣ 솔내 영환 -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내용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기왕에 앵계리 등 개성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문온공(구용) 초혼장을 한 개성부 선흥사 북서동 불당현과 대안군(은열) 묘 송도성 북10리 종암하 오룡산의 위치도 함께 화두로 삼아주시면 어떨까요?
▣ 김재익 -
▣ 김항용 -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개성의 옛 지도가 있는 곳입니다. 애석하게도 아주 상세한 지
도가 아니라 충렬공 본댁이 있었던 <앵계리>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경순대왕께서 사셨던
곳이 나타나 있습니다. 지도 중앙의 <만월대> 오른쪽 <라왕소거(羅王所居)>라 적은 부분인
듯합니다.
★자료 있는 곳 http://210.125.185.6/cgi-bin/kymapinfo.cgi?dirid=495&id=KYM_KW001_0031
이곳에 있는 지도를 클릭한 다음, 오른쪽 <보기영역크기>과 <보기영역배율>을 적당히
조절하시면 됩니다. 다음은 이곳에 실린 개성부 지도의 해설입니다.
<개성부(開城府) 해제>
개성부는 일제시대의 개성시와 개풍군, 장단군의 대남면·소남면에 해당하며, 지금은 개성직
할시의 개성시, 개풍군, 판문군, 장풍군의 서쪽 일대이다.
지도 왼쪽으로는 예성강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는 교동도와 강화도가 실제보다 작게 그려
져 있다.
지도 오른쪽에는 실선으로 표시된 임진강이 한강과 만나 강화도 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이곳
을 祖江이라 불렀다. 지금도 김포군 월곶면에 조강리란 이름으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도에는 고을의 鎭山 松岳山을 중심으로 1393년(태조 2)에 만든 內城의 모습과 강감찬의
건의에 의해 1010년(고려 현종 1)부터 21년 걸려 만든 羅城(또는 外城)의 흔적이 잘 그려져
있다.
내성 안쪽에는 고려 초부터 正殿의 역할을 하다 고려 말기쯤 불에 타버렸다고 알려진 滿月
臺의 터가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의 壽昌宮은 공민왕 때 延慶宮이 불탄 후 正殿으로 쓰였고,
조선의 태조·정종·태종이 즉위했던 곳이다.
연경궁 오른쪽에는 992년(고려 성종 11)에 國子監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다가 이름이 바뀐
成均館이 보이고 있는데 지금의 대학에 해당한다. 성균관 아래쪽으로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
가 이방원의 자객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善竹橋를 비롯한 몇 개의 다리도 표시되어 있다.
고려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덤인 王太祖陵-昌陵-作帝建古墓가 내성 왼
쪽과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고려 때 가장 번창한 항구였던 碧瀾渡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
지 않은데 지도 왼쪽의 錢浦 아래쪽에 있었다.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항복했던 곳과 그가 거주하던 장소도 표시되어
있음이 눈에 띈다.
내성 오른쪽에 있는 穆淸殿과 아래쪽에 있는 敬德宮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에 살았던 곳이다. 특히 목청전에는 태조의 御容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 아래쪽의 齊陵은 태
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神懿王后, 厚陵은 조선의 2대왕 정종 부부의 무덤이다.
지도 위쪽에 있는 大興山城은 고려시대에는 戰時의 피난처로서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조선
초에 퇴락해 있던 것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改築한 곳이다. (이기봉)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재원 -
▣ 솔내 영환 -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내용 감사합니다.
▣ 김윤만 - 기왕에 앵계리 등 개성지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문온공(구용) 초혼장을 한 개성부 선흥사 북서동 불당현과 대안군(은열) 묘 송도성 북10리 종암하 오룡산의 위치도 함께 화두로 삼아주시면 어떨까요?
▣ 김재익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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