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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전주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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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영환 작성일02-08-08 19:45 조회2,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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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김씨, 안동김씨, 경주김씨.... 모두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대안군)의 후손입니다.



전주김씨의 시조 김태서는 김은열의 9세손이라고만 전하고 있습니다. 전주김씨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전주 김씨(全州金氏)의 시조(始祖) 김태서(金台瑞)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년(고종 4) 식읍(食邑)인 경주(慶州)가 몽고군(蒙古軍)의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허(廢墟)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全州)로 이거(移居)하여 살게 되었으며 그가 죽자, 나라에서는 고종(高宗)과 명종대(明宗代)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역임한 명신(名臣)이라고하여 완산군(完山君)에 추봉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전주(全州)로 삼게 되었다.

고려조에서 벌족(伐族)으로 명성을 떨친 전주 김씨(全州金氏)는 시조 태서(台瑞)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명문(名門)으로서의 기틀을 다졌는데, 장남 약선(若先)은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인 최 우(崔 瑀)의 맏사위이며 순경태후(順敬太后 : 원종의 비)의 부친(父親)으로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고, 차남 기손(起孫)은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원종(元宗)이 즉위하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막내 경손(慶孫)은 고종(高宗) 때의 명장(名將)으로 몽고군이 칩입하자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이 되어 나가 싸워 귀주성(龜州城)을 지켰고, 1237년(고종 24) 전라도 지휘사(全羅道指揮使)가 되어 나주성(羅州城)에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亂)을 평정(平定) 시켰다.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받아 대장군(大將軍)에 오른 혼(琿)은 추성익대공신(推誠翊戴功臣)으로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지고,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자흥(子興)은 좌부승지(左副承旨)로 간신 송방영(宋邦英) 일파를 제거한 공(功)으로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고 충선왕(忠宣王) 때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존선조에 와서는 성종(成宗) 때 여진정벌(女眞征伐)에 공을 세운 경(敬)이 북방수어장(北方守御將)으로 <경원성주(慶源城主)>의 왕명(王命)을 받들어 아들 4형제를 데리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되어 후손들이 함경도 지방에서 크게 번성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경(敬)을 입북중시조(入北中始祖)로 받들고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낙동강(洛東江) 전투에서 공을 세운 치원(致遠)은 1603년(선조 36)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검열(檢閱)과 감찰(監察)을 거쳐 사과(司果)로 춘추관(春秋館)의 가사관(棋士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외 인조(仁祖) 때 이 괄(李 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응추(應秋)가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어 이름을 떨쳤고, 약우(若愚)는 문장(文章)과 글씨로 명성을 날려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빛냈다.

전주 김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했던 달혼(達渾)의 후손들이 경북 의성(義城)과 안동(安東) 등지에 집중세거하며, 주로 이북지방에서 성족(盛族)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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