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점필재 김종직의 글

페이지 정보

郡/김태영 작성일02-08-15 07:51 조회1,784회 댓글0건

본문

§ 상락군의 시권에 두 수를 쓰다[書上洛君詩卷二首]



상락군의 증조(曾祖) 익원공(翼元公 익원은 김사형(金士衡)의 시호 )이 좌정승(左政丞)으로 있을 적에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공 제(閔公霽)가 사명을 받들고 남방(南方)으로 가게 되자, 익원공이 제공(諸公)과 함께 자하동(紫霞洞)에 모여 전송하였는데, 이 때 부원군이 익원공에게 준 시에 “김 정승의 손자인 또 김 정승은 죽마 타던 어린 시절을 내 일찍이 기억하는데 임금의 교화 빛내는 것은 그대 집의 일이라 정사당 안에서 날로 전전긍긍하누나[金政丞孫金政丞 當時竹馬記吾曾 丹靑王化君家事 政事堂中日戰兢]” 하여, 진산군(晉山君) 하륜(河崙)이 서문을 짓고 금릉 봉사(金陵奉使) 단목지(端木智)와 정승 성석린(成石璘) 등이 운(韻)을 나누어 시를 지었으니, 이 때가 건문(建文 명 혜제(明惠帝)의 연호. 1399~1402 ) 3년 가을이었다. 그런데 성화(成化 명 헌종(明憲宗)의 연호. 1464~1487 ) 4년(무자)에 상락군이 또 우의정에 제배되자, 중추부사 서거정(徐居正)이 이 시축(詩軸)에 이어 서문을 짓고 또 나에게 시를 지으라고 명하였다.



자하동 안의 나무 빛은 가을이 되었는데 / 紫霞洞裏樹光秋



신선이 승류들을 회합했다 하누나 / 見說神仙集勝流



온 좌중의 악기 소리엔 높은 흥취가 놀랍고 / 四坐雲璈驚逸興



한 편의 좋은 시문엔 훌륭한 계책 떨쳤어라 / 一篇華藻振徽猷



서로 충고하는 건 겸손하여 얻기 위함이요 / 相規只爲謙謙得



막역의 친구는 의당 간절함으로 구해야지 / 莫逆須因切切求



교우의 도리가 아직도 황각 626) 위에 남아서 / 友道猶存黃閣上



맑은 풍도가 경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도다 / 淸風長使薄夫羞



넓고넓은 흉금이 스스로 맑디맑아라 / 胸襟千頃自澄淸



재상의 자품으로 성명 시대를 만났구려 / 廊廟之姿値聖明



흘러내려온 기구 627) 는 부조의 업을 전하였고 / 滾滾箕裘傳緖業



빛나는 종정에는 공훈의 이름이 새겨졌네 / 煌煌鍾鼎勒勳名



모래 둑 628) 의 나무 빛은 삼괴 629) 가 무성하고 / 沙堤樹色三槐茂



바닷가의 하늘은 팔주 630) 가 떠받치도다 / 海域天容八柱擎



자손을 위한 계책 이미 기반이 원대하리니 / 貽厥已應基址大



장마비 가져다가 창생에게 보답하소서 / 願將霖雨答蒼生







--------------------------------------------------------------------------------





[註 626] 재상의 관서(官署)를 이른 말로, 전하여 재상을 뜻한다. ☞



[註 627]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양야(良冶)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裘] 만드는 것을 배우고, 양궁(良弓)의 아들은 반드시 삼태기[箕] 만드는 것을 배운다.”고 한 데서 온 말로, 부조(父祖)의 업(業)을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



[註 628] 새로 재상이 된 것을 뜻함. 당(唐) 나라 때 누구나 새로 재상이 되었을 때는 그의 사제(私第)로부터 성(城)의 동가(東街)에 이르기까지의 길에 모래를 죽 깔고 이를 ‘모래 둑’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唐書 李德裕傳》 ☞



[註 629] 주대(周代)에 외조(外朝)에 심었던 세 그루의 괴나무를 이르는데, 삼공(三公)이 이 삼괴를 향하여 앉았었으므로, 전하여 삼공을 말한다. ☞



[註 630]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여덟 기둥을 말하는데, 전하여 임금을 보필하는 것을 의미한다. ☞







김종직(金宗直) (1431 세종13년 ~ 1492 성종23년)

호: 점필재 (人+占 畢齋) 시호: 문간(文簡)

본관: 선산

기호학파의 영수로 야은(冶隱)의 학통을 이어 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제자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과 같은 거유(巨儒)를 내었다.

무오사화(戊午士禍)때 부관참시(剖棺斬屍) 되었으며 이때 많은 문집과

서류들이 소각 되었다.

<점필재집><청구풍아><동문수><이존록>등의 저서가 있다.



점필재집에서 옮겼습니다.





상락군 김질 (1422 ~1478) 문정공이 우의정에 올랐을때 지은것으로 보여집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김재원 - 감사하비다

▣ 김재원 - 제 컴이 이상한 글씨가 나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정중 - !!!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고맙습니다

▣ 김태서 - 직계조이신 문정공 할아버님에 관한 시를 대하니 감격 스렵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 상락군 김질은 장인인 동래정창손과함께 혼자만 살겠다고 사육신을 밀고한 배신자랍니다.

▣ 死六臣 - 계획이 일단 좌절되자 같은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金) 등은 뒷일이 두려워 세조에게 단종복위음모의 전모를 밀고하여 세조는 연루자를 모두 잡아들여 스스로 이들을 문초하였다

▣ 김주회 - 귀한 글과 자료! 고맙습니다.

▣ 김정중 - 감사합니다. 역사는 만약에(if)가 없지요. 역사는 간단히 한마디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며 다각적으로 분석 평가해 봐야 실체적 진실에 접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태영/문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