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장군 신도비.진주성대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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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미 작성일02-08-15 08:57 조회1,445회 댓글0건본문
김시민 장군 신도비
김시민 장군 진주성대첩도
▣ 김재원 - 자료를 찾아 올리시는것은 고마운 일이겠으나 선생의 소개를 좀 하는것이 지식인의 도리가 아닐런지?
▣ 김재원 - 현재로선 남녀성구분이 명확치 못하고 노동자인지 학자인지도 불문명하여 선생의 귀한자료를 올리는데 대한 고마움보다는 복면을 하고 남의집을 방문한 불청객일 수 밖에 없습니다.
▣ 김윤만 -
▣ 김재원-감사합니? -
▣ 김정중 - !!!
▣ 김항용 -
▣ 솔내영환 - 본 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 지나가는 사람 - 김시민장군은 뛰어난 지략으로 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목민관이자 명장이십니다..
▣ 지나가는 사람 - 본관 안동. 자 면오(勉吾). 시호 충무(忠武). 목천(木川) 출생.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 훈련원판관이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판서에 건의한 것이 채택되지 않아 관직을 버렸다. 1591년(선조 24) 진주판관(晋州判官)이 되었는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죽은 목사(牧使)를 대신하여 성지(城池)를 수축하고 무기를 갖춘 공로로 목사가 되었다.
▣ 지나가는 사람 - 1592년(선조 25) 10월 5일 진주에 이른 나가오카 다다오키[長岡忠興] 휘하의 왜군 약 2만은 수천 죽제(竹梯: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진주성을 공격, 진주목사(牧使) 김시민(金時敏)이 지휘한 3,800 조선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은 성문을 굳게 닫고 화약을 장치한 대기전(大岐箭)을 쏘아 죽제를 파괴하고, 마른 갈대에 화약을 싸서 던지거나 끓는 물과 큰 돌을 던지는 등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10배에 이르는 왜군의 공세를 분쇄하였다.
▣ 지나가는 사람 - 왜군은 10월 10일에 6일간의 대접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주했는데, 이 싸움에서는 의병대장 곽재우(郭再祐)의 응원이 적과 아군에게 심리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이 싸움의 승리로 다른 경상도 지역을 보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호남지방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 김주회 -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이신가요?
▣ 태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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