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⑦ (대구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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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08-14 17:00 조회2,831회 댓글0건본문
구안동김씨 분관성씨 ⑦ (대구김씨)
김방경의 넷째아들인 김론(김윤)의 증손인 김달을 시조로 하는 대구김씨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 김씨의 뿌리 (1998, 범우사)
시조 김달(金達)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김은열의 8세손이 되는 김방경의 현손이다.
김달은 조선조에 병조참의와 병사를 지냈고, 정종2년에는 제2차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었다.
김달은 본래 대구 도화촌에 살았으나 함경도 길주군 상고면에 자리를 잡게 됨으로서 큰아들 김여연(金麗淵)은 그곳에서 세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관은 선대의 거주지였던 대구로 했다. 이렇게 함경도 길주에 자리잡은 김여연의 후손들을 길주파라고 한다.
둘째아들 김부형(金富亨)은 대구 도화촌에 그대로 남아 터를 지켰다.
▣ 대구김씨가 생기기까지의 세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씨의뿌리]책자에는 대구김씨 시조 김달을 김방경의 큰아들 김선의 증손으로 적혀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바로잡아 정리했습니다.
① 경순왕 김부 (金傅) (?-978)
② (4남) 김은열 (金殷說) (?-1028, 현종19)
③ (2남) 김숙승 (金叔承) ★구안동김씨 시조
④ 김일긍 (金日兢)
⑤ 김이청 (金利請)
⑥ 김의화 (金義和)
⑦ 김민성 (金敏成)
⑧ (2남) 김효인 (金孝印) (1192 ?-1253)
⑨ 김방경 (金方慶) (1212-1300) ★구안동김씨 중시조
⑩ (4남) 김 론 (金 )
⑪ (2남) 김영요 (金永曜)
⑫ (3남) 김 백 (金栢)
⑬ 김 달 (金達) ★대구김씨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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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검색자료
대구김씨(大邱金氏)의 시조(始祖) 김달(金達)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 김방경(金方慶 : 구안동 김씨의 중흥조)의 넷째 아들인 김 론(金 )의 증손(曾孫)이다.
그는 조선(朝鮮) 때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지내고 대구 도화촌(道化村)에 거주(居住)하였으나,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王子)의 난(亂)이 일어나자 함경도(咸鏡道) 길주(吉州)로 유배(流配)되었다.
그때 후손들이 함께 따라가 그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전(前) 세거지(世居地)였던 대구(大邱)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으며, 길주 명천파(吉州明川派)·서포파(西浦派)·광화파(光化派)·황주파(黃州派)·고령삭파(古寧朔派)·종성파(鍾城派) 등 크게 여섯파로 계대(繼代)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조선 인조(仁祖 : 제16대 왕, 재위기간 : 1623∼1649) 때 무장(武將)으로 이 괄(李 适)의 난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된 태암(泰巖)이 뛰어났다. 그는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의주성(義州城)을 수비하다가 적에게 포위당하여 자결하였다. 그후 숙종(肅宗 : 제19대 왕, 재위기간 : 1674∼1720)조(朝)에 와서 그의 충의(忠義)를 기리는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지고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군수(郡守)를 지낸 득일(得鎰)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영홍(永弘)이 뛰어났고, 병조참판(兵曹參判) 취규(就奎)와 현감(縣監) 응회(應晦)는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오른 연석(連碩), 중추부사(中樞府事) 수택(壽澤), 통정대부(通政大夫) 화룡(化龍), 선략장군(宣略將軍) 진흥(振興), 부호군(副護軍) 의묵(宜默)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조선조 문과방목에 대구김씨 2명이 올라 있습니다.
대구(大邱) 김(金)씨 입격자들
총 2명 입격
김대현(金大鉉) 헌종9(계묘, 1843) 식년시(式年試) 丙科23
김필선(金必宣) 정조13(기유, 1789) 식년시(式年試) 丙科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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