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方慶 유허지 ⑦ (신도비)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1-08-13 17:35 조회2,082회 댓글0건본문
金方慶 유허지 ⑦ (신도비)
▣ 고려사 등 기록에 보면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께서 1300년에 돌아기실 때 예장을 치르지 못한 것을 충렬왕이 이 일을 후회하고 1307년(충렬왕33) 선충협모정난정국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을 추증하고, 시호를 충렬이라 하고, 왕명으로 신도비를 세웠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족보에는 신도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렬왕33년 정미 (1307) 6월 14일에 왕이 영지를 내려 이르되 <중략> 시호를 충렬이라 하여 왕명으로 신도비를 세웠다.
그 당시의 신도비는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 침략군에 의해 파괴되어 없어지고 그후 379년동안 재건치 못하고 내려오다가 서기 1971.11.26일에 안동군 녹전면 구송동 산117-3에 여러 特志 종인들의 성력에 의하여 재건하였다.
소재지 : 경북 안동 녹전면 구송동 산117-2 (와룡-녹전 중간지점 대로변)
건립년월일 : 서기 1971. 10.30
비문 지은 사람 : 학술원장 문학박사 이병도
비문 쓴 사람 : 충렬공 22대손 (안렴사공 18대손) 의학박사 김사달
연혁
서기 1312년 (고려충렬왕4년) 6.26일 왕명에 의하여 신도비를 건립하였는데
서기 1592년 (조선선조25년) 4월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병 侵寇(침구)로 인하여 불행히도 毁失(훼실)된후 380년만에 대종회에서 건립하였음
▣ 충렬공 김방경 신도비와 관련된 대종회 연혁에 나와있는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970
12월 28일에는 安東市 映轉面 九松洞 山117-2番地 111坪을 忠烈公 神道碑 敷地로 五萬원에 매입하였다.
1971
4월 15일 神道碑 건립 장소 삼거리 대로에서 忠烈公 묘소까지 약 3Km의 세로를 공사비 壹拾萬四仟六百원을 들여 자동차가 진입할수 있도록 확장하였는데 翼元公 二十一代孫 泰奉氏가 총감독을 해 주었으며, 在日 宗親인 翼元公 十七代孫 又榮氏께서 神道碑 건립 기금으로 六拾萬원을 희사하여 이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하였다.
5월초에 神道碑를 건립키로 계획을 수립하여 적극 추진한 바 11월 26일에 완공하고 忠烈公 享祀와 아울러 二百餘 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神道碑 건립에 소요된 전액은 七拾七萬九仟四拾원이다. 당일 제막식 경비도 九萬五仟원이 소요되었다.
1989
12月 7日 忠烈公 神道碑閣을 건축비 二千三百四十九萬一千三百六十원을 들여 건축하므로 할아버님 神道碑가 풍우한설에도 마모되지 않고 영원 보존케 되었다.
1991
忠烈公 神道碑閣 마당에 忠烈公 略史臥碑를 三百四十六萬三千원을 들여 건립하였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