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사(普濟寺)
페이지 정보
郡/김태영 작성일02-08-21 19:33 조회1,888회 댓글0건본문
연복사(演福寺) : 도성 중앙에 있는데, 옛 이름은 보제사(普濟寺)이다. 큰 전각을 능인전(能仁殿)이라 하며 그 앞 문을 신통문(神通門)이라 한다. 5층 누각이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졌으므로 지금 성중의 부자 상인이 재물을 내어 고쳐 지어서 채색[金碧]이 휘황하고, 종소리와 목탁 소리가 몇 리까지 들린다. ○ 권근(權近)의 탑중창기(塔重創記)에, "부처의 도는 자비(慈悲)와 희사(喜捨)로 덕을 삼고 응보가 틀리지 않는 것으로 징험을 삼는다. 그 말이 지극히 넓고 커서 번역되어 중국에 전하고 사해에 널리 퍼져 천년을 두고 이어지는데, 오랠수록 더욱 공경한다. 위로 왕공 대신(王公大臣)에서 아래로 어리석은 남녀에 이르기까지 복리(福利)를 바라서 높여 믿지 않는 이가 없으니, 사원(寺院)과 탑(塔)ㆍ묘(廟)의 시설이 높이 솟아 서로 바라다 보이며 천하에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기부터 받들어 섬기기를 더욱 성심으로 하여 성중에 절이 민가보다도 많았으며, 그 전각의 웅장하고 높이 솟은 것이 지금까지 아직 남아 있으니, 그 당시에 지극히 높이 받들었던 것을 상상하여 알 수 있다. 고려 왕씨가 후삼국을 통일한 초기에도 대개 신라를 따라 폐하지 않아 그것으로 복 받는 터전을 삼아서 중외(中外)에 사찰을 많이 설치하였으니, 이른바 비보(裨補)라는 것이 이것이다.
연복사는 사실 도성 안 시가지 곁에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호칭은 당사(唐寺)이다. 방언(方言)에 당(唐)은 대(大)와 비슷하기 때문에 또한 대사(大寺)라고도 한다. 집이 가장 커서 천여 채에 이르며, 안에 3개의 못과 9개의 우물을 파고 그 남쪽에 또 5층 탑을 세워서 풍수설(風水說)에 맞추었는데, 거기에 대한 설명은 옛 책에 갖추 적혀 있으므로 여기서는 덧붙여 말하지 않겠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
▣ 김윤만 -
▣ 김정중 -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 김주회 - 보제사는 개성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책을 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자료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 태영/문 -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메롱` - 메롱
연복사는 사실 도성 안 시가지 곁에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호칭은 당사(唐寺)이다. 방언(方言)에 당(唐)은 대(大)와 비슷하기 때문에 또한 대사(大寺)라고도 한다. 집이 가장 커서 천여 채에 이르며, 안에 3개의 못과 9개의 우물을 파고 그 남쪽에 또 5층 탑을 세워서 풍수설(風水說)에 맞추었는데, 거기에 대한 설명은 옛 책에 갖추 적혀 있으므로 여기서는 덧붙여 말하지 않겠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개성부
▣ 김윤만 -
▣ 김정중 -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 김주회 - 보제사는 개성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책을 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자료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 태영/문 -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메롱` - 메롱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