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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묵화(작약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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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08-23 06:41 조회1,7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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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묵화 소개>

1. 출전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서화유물도록>(국립중앙박물관. 1994. 78p. 20번 도록)

2. 작품명 : 芍藥圖(작약도)

3. 원본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4. 조사일 : 200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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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명종 18)∼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릉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가문은 현상(賢相) 공(珙)의 혈통을 이은 명문으로 누대의 문한가(文翰家)로 유명한 학자와 인물을 배출하였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이러한 천재적 가문에서 성장하면서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허씨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으며, 15세 무렵 안동김씨(安東金氏) 성립(誠立)과 혼인하였다. 가정내의 불화와 사랑하던 남매를 잃은 뒤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친정집에서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균마저 귀양가는 등 비극의 연속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먹〔墨〕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의 울부짖음에 항거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일부를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文台屋次郎)가 간행, 애송되었다.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고, 국한문가사 〈규원가 閨怨歌〉와 〈봉선화가 鳳仙花歌〉가 있으나, 〈규원가〉는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 〈봉선화가〉는 정일당김씨(貞一堂金氏)가 지었다고도 한다.




▣ 김재원 -
▣ 김주회 - 난설헌 할머니의 작약도 처음 보는 그림입니다. 대발굴 하셨습니다.
▣ 김발용 - 9월 1일 난설헌 할머니 묘 참배를 앞두고, 이 그림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김태서 - 잘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윤만 -
▣ 郡/김태영 - 귀한 그림 감상 잘하였습니다.
▣ 聚善堂 金在益 - 宗人모두에 감사 들이며 귀한 그림 잘 보았습니다.
▣ 김영윤 - 기미보 서운관정공파보에 보면 난설헌 할머님의 시누께서 한산이공 영의정 이산해의 며느님이라 나옵니다
▣ 태영/문 - 참으로 귀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정중 -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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