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헌공 김시헌 선조님 낙관(칼러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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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08-23 06:49 조회1,479회 댓글0건본문
<애헌공 김시헌 선조님 낙관 소개>
1. 출전 :<槿域印藪>(국회도서관. 1968. 313P.
2.. 조사일 : 2002. 7. 19
김시헌(金時獻)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징(子徵), 호는 애헌(艾軒).
고려의 명장 방경(方慶)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로서 왜장과 싸우다 전사한 제갑(悌甲)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검열(檢閱)·이조좌랑·정언(正言)을 거쳐 1595년 사간·전한(典翰)·시강관(侍講官)·사인(舍人)이 되고, 이듬해 집의(執義)·사간 등을 거쳐, 1597년 승정원동부승지·우부승지·충청도관찰사·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소모관(召募官)으로 충청도에 파견되었다. 이어 병조참의·우승지·좌승지를 거쳐 복수사(復讐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신립(申砬)이 전사한 탄금대(彈琴臺)를 돌아보고 임진왜란 뒤 민심을 수습하는 데 힘썼다.
1603년 동지사행(冬至使行)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순천군수를 거쳐 병조참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607년 양양부사로 나갔다가 병조참판에 올랐다. 선조가 죽자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1년(광해3) 예조참판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그는 어려서 등과하였으며, 역학(易學)에 밝아 일대(一代)의 명류(名流)로 이름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그의 아버지 제갑이 적에게 죽음을 당하자 호남·영남 지방의 복수별장(復讐別將)이 되어 나갔다. 묘소는 중원군 앙성면 영죽리에 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근역인수에 있는 김시헌 낙관과 다른 것인가요? 微子는 무슨 뜻인가요?
▣ 김항용 - 예, 지난 번에 소개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난 번 것은 흑백이었고 이번엔 원색 그대로의 칼러판으로 복사한 것입니다. 徵子가 아니라 님의 자인 子徵(자징)인 것 같습니다.
▣ 김태서 - 수고하셨습니다.
▣ 김윤만 -
▣ 郡/김태영 -
▣ 김영윤 -
▣ 태영/문 -
▣ 김정중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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