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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익대부밀직사사보문각대제학휘승용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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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2-10-28 04:46 조회1,7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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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翊大夫密直司事寶文閣大提學諱承用墓碑銘(봉익대부밀직사사보문각대제학휘승용묘비명)



공(公)의 휘(諱)는 승용(承用)이시니 신라경순왕(新羅敬順王)의 후손이시다.

경순왕이 고려왕조(高麗王朝)의 부마(駙馬)가 되시고 후손(後孫) 태수공(太守公) 휘이청(諱利請)께서 안동(安東)으로 적을 받으시니 자손(子孫)이 따라서 본관(本貫)으로 삼았고 삼대(三代)를 지나서 휘효인(諱孝印)은 병부상서(兵部尙書)이시며 휘방경(諱方慶)을 낳으시니 재차(再次)나 일본을 정벌하신 공훈(功勳)으로 상락공(上洛公)에 봉(封)해지고 시호(諡號)가 충렬공(忠烈公)으로 국세를 융성케한 명신(名臣)이니 이 분이 공의 조부(祖父)이시고 고(考)의 휘는 선(愃)으로 전법판서(典法判書)이시며 비(妣)는 순창군부인(淳昌郡夫人) 설씨(薛氏)시니 사재경(司宰卿) 안(晏)의 따님으로 사남(四男)을 낳으시니 공이 차례로 두 번째 분이시다.

어리실 때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셔서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아니하시더니 장성(長成)하심에 따라 문행(文行)이 탁이(卓異)하시고 절의(節義)가 청직(淸直)하셨고 원주군부인(原州郡夫人) 원씨(元氏)와 혼인하시니 수문전(修文殿) 대제학(大提學) 근(瑾)의 따님이시라 순일(純一)하신 덕(德)이 있어 효도와 공경으로 시부모님을 모시었고 옳은길로 자손을 가르치셨다.

공께서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文科)에 발탁되어 밀직사사(密直司事)를 지내셨고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에 이르시니 어버이를 섬기심에 영화로이 봉양(奉養) 하시었고 임금을 바르게 보좌하셨으니 당시에 명망(名望)이 세상에서 누가 이에 더했으리오.

원(元)나라 조정에서도 선무장군(宣武將軍) 관고려군진국만호(菅高麗軍鎭國萬戶)의 벼슬을 선수(宣授)하였으나 아! 하늘이 어찌하여 오랜 수(壽)를 주시지 않으시고 충숙왕(忠肅王) 十六年(一三二九) 기사(己巳)에 원 나라에서 환국(還國)하시다가 三月갑술일(甲戌日)에 도중(道中)에서 세상을 마치시니 충숙왕이 들으시고 심히 놀라시어 통분하면서 습(襲) 염(殮) 관구(棺柩)등을 지극히 갗추어 주시었고 특히 천금을 내려서 호상(護喪)의 비용으로 쓰게하여 영구(靈柩)가 천리(千里)길을 돌아올 때 망망한 대해(大海)를 건너서 강진군작천면남산동(康津郡鵲川面南山洞) 술좌(戌座)에 장사하였다. 이남일녀가 있었으니 장남 후(厚)는 검교첨의평리(檢校僉議評理) 상락군(上洛君)이요. 이남 구(玖)는 감찰사장령(監察司掌令)이었고, 따님은 진주류지정(晋州柳之淀)에게 출가하니 류지정은 진주부원군(晋州府院君)이다.

상락군(上洛君) 후(厚)가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낳으니 장남에 칠우(七祐)는 밀직사사(密直司使)이며 차남에 칠림(七霖)은 개성윤(開城尹)이었고 삼남에 칠양(七陽)은 수안군사(遂安郡事)로서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이며 호(號)는 강은(康隱)이고 따님에서 장녀는 함양박거실(咸 陽朴居實)에게 출가하니 벼슬이 판사(判事)이며, 차녀는 선산김군정(善山金君鼎)에게 출가하니 벼슬이 대언(代言)이고 삼녀는 광산노숭(光山盧崇)에게 출가하니 벼슬이 정승(政丞)이며 시호(諡號)는 경평공(敬平公)이었다.

장령(掌令) 구(玖)가 이남을 낳으니 성목(成牧)은 공조전서(工曹典書)이며 이남에 천순(天順)은 밀직부사(密直副使)로 그 나머지 후손은 가히 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수백년전에 석물(石物)을 갖추고 비갈(碑碣)도 세웠으나 세월이 오래 흐름에 따라 상석(床石)이 부숴저서 제수(祭需)의 진설(陳設)이 어렵게 되었고 묘갈(墓碣)도 마멸되어 글자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자손된 자(者)로서 어느 누구가 눈물을 머금고 탄식하지 않겠는가!

묘하(墓下)에 사는 후손들이 비록 여러해 동안 경영해 왔으나 빈한(貧寒)한 소치로 아직까지 정성(精誠)을 이루지 못하고 지연(遲延)된 바이었으나 이제 후손들이 성의를 같이하고 힘을 모아 비용을 연출(捐出)함으로 해서 적은 것아 쌓였으니 금년봄 청명날 그 옛날 비석을 물려내고 장차 새비석을 세우기로 하고 여러종친들이 불초손(不肖孫) 중회(重會)에게 비문을 지으라고 여러번 말하니 분명치 못한 사람이 조상의 사실에 있어 감히 아는것이 없을 뿐 아니라 하물며 전고(典故)에 그리 밝지 못하야 사양을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외람히도 두서 없는 말로서 삼가 위와 같이 지으니 황공황공 하나이다.



孔子 誕降後四十二壬寅(西紀一九六二年)正月上旬에



二十三世孫 重會 지음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원 -

▣ 김영윤 -

▣ 김주회 -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잘 읽었습니다. 승용 선조님의 誌石 실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 郡/김태영 -

▣ 태영/문 -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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