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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김병필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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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10-30 20:21 조회1,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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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홈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질문하신 김병필은 우리 선안동김씨가 아니고 후안동김씨(고려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손)임니다.



후안동김씨의 홈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디지털 한국에서 김병필에 대해 옮겨 보겠습니다.



김병필(金炳弼)

1839(헌종 5)∼1870(고종 7).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아버지는 문근(汶根)이고, 철종비 명순왕후의 동생이다.

음보로 사용(司勇)에 기용되어 1854년(철종 5) 응제(應製)에서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혜를 받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규장각대교가 되었다.

그뒤 검열·교리를 거쳐 1859년에는 홍문관부제학·대사성·이조참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듬해 호조참판, 1861년 이조참판, 1862년 대사헌을 역임하고, 1863년 다시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행호군(行護軍)이 되었으며, 철종이 죽자 존호도감옥책관(尊號都監玉冊官)을 겸하였다.

고종의 즉위로 흥선대원군이 집정하자 관계에서 물러났다가, 평소 대원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촌형 병학(炳學)이 안동김씨의 몰락 이후에도 그대로 관직을 유지하여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오름에, 그의 도움으로 1866년 상호도감제조(上號都監提調)로 다시 기용되어 이조참판·검교부제학·홍문관부제학을 지낸 뒤 1868년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1851년 누이가 철종비로 책봉되자, 아버지 문근을 필두로 그의 일족이 요직을 독점한 가운데 별다른 재능없이 15세에 관직에 나아가 20세에 당상관이 되고, 30세에 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 김윤만 -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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