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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위업을 보는 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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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 작성일02-10-31 00:56 조회1,5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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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전에 문정공 김질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제가 직절적으로 글을 써서 후손되는 분들은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고

선조에 대한 송구스러웠을 겁니다.

그점 제 생각이 잛았으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국가의 역사나 개인역사나 모두 중요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과거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되풀이 하지 않기위한 것이 가장크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른것에 대한 바른 시각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이곳에 올려진 많은 분중에 한분이 고려무신 김방경장군의 예를들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분이 사시던 때는 몽고가 지배하고 고려가 무신정권때의 땅에 떨어진 왕권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 또한 몽고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몽고에 대항하여 삼별초가 난을 이르켰고 왕은 그것이 몽고를 자극해서 더큰 몽고의 간섭이 있겠되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느껴서 군사 거두라는 왕명을 내리나 거역하고 계속 활동하니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려

도원수로 현문혁장군이 강화에서 삼별초를 마자 최선을 대해 싸왔으나 삼별초의 군세에 밀려 패하고 끝까지 항전하다가힘이 부치니 부인과 두딸은 욕을 보지 않으려고 강물에 투신하여 죽고 그는 삼별초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싸운 그의 용기를 인정하여 삼별초는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삼별초의 군세가 상당함을 알고 김방경장군을 다시 도원수로 삼고 군사를 증원하여 토벌케 하니 여러번싸워서 마침내 난을 평정하였고 왕으로 부터 두터운 신임과 벼슬을 받게 되지요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무리들로 써는 아주 나쁘게 보여졌을 겁니다.

몽고가 일본을 정벌하는 계획을 세우고 고려에 계획에 원조를 할것을 왕에게 강력히 표명하니 그것에 대한 고려왕은 거역할수 없는 상황이라 삼별초에 난에 공훈을 세운 김방경장군을 책임자로 하여

실행에 옮기나 여기차례의 폭풍으로 (일본에서는 카미카제 신풍이라고 신의 도움)으로 실패하니 몽고로 써는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고 그 책임은 고려측 책임자인 김방경 장군에 대한 의심으로 돌아갑니다.

일부러 정벌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갖는데 고려의 여러간신들이 그것을 기회로

그를 왕명을 거역하여 몽고의 정벌을 망쳤다는 어울한 누명을 씌워서 처벌할 것을 왕에 간합니다.

왕은 몽고의 강한 의심을 풀길이 없어 처벌을 승낙하고 몽고에 의하서 장군은 모진 고문과 치욕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죄가 없다는것을 밝혀지고 다시 충성스러운 고려의 신하로써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백성들로 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충성심이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이 한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방경장군은 왕을 거역해서 몽고와 대적할수도 없고 그러다고 자신의 직분인 고려의 신하로써의 책임을 저버릴 수도 없었던 겁니다.

여기에 사육신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어려지 않게 알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육신은 목숨을 걸고 수양대군에 대한 거사를 계획합니다.

왕위보다도 단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위기감이 더 컸을 겁니다.

단종이 죄가 있다면 자신을 받쳐줄 힘있고 충성된 자가 많이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은권을 입은 집현전 학자들이 가장 충성된 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사육신이 김질에게 거사를 동조할 것을 표명하는 가장 큰이유가 김질 또한 세종대왕의 은권을 입은 집현전학자 중에 한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김질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아서 가담을 하여야 하는것에 대한 생각은 있으대 확신이 없으니

사육신이 거사 성공시 장인인 정창손과 더불러 중요한 직책에 중용할 것을 약속했고

그것으로 나중에 일이 잘못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면서 가담하였으나 한명회의 의구심으로

일이 잘 되어지지 않자 불안한 김질은 변절을 하게됩니다.

사육신들은 세조(수양대군)의 앞에 끌려가서 역신으로써 국문을 당하지만 ,전하가 아닌 대군나으리라며 수양대군의 세종과문종에 대한 배신행위에 대한 반문을 하게됩니다.

수양대군은 처음에는 자신에 진정으로 충성한다고 믿었던 사육신이 배신을 한다고 생각하고 분노하여

죽이려하나 그 신하들의 마음을 자신도 조금은 이해를하고 회유하여 쓰려고 했으나 사육신들중 누구도

그의 회유에 마음을 바꾸지 않고 오직 단종에 대한 충성심으로 대항하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김질이라면 그상황에서 세조의 회유를 거절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충성이란 것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라 사육신이 자신을 비록해서 삼족(친가,외가,처가)을 멸하게 되는 이 위험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대항했습니다.

사육신의 가족들중에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여인들(형제의 배우자와 며느리, 딸, 손녀들은 관노(기녀나 허드레일을하는 노비) 수양대군을 왕위로 올려놓은 공신들의 첩이나 가노로 절락하게 됩니다.

운좋게 박팽년의 남자후손 살아남했으나 그도 모진 고생을 하며 겨우 어머니와 충성스러운가노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지요

그 반면에 김질은 결정적으로 수양대군 반대파인 사육신제거에 공을 인정받아 장인인 정창손과 더불러

많은 상과 벼슬을 받고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훗날 세조는 자신에 행동에 대해서 많이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김질또한 인간적인 도리를 조금이나마 알았다면 자신의 한순간의 결정으로 거사에 가담하고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목숨을 걸고 거사를 계획한 많은 동료들을 배신해서 그들이 당한 화에 대한 죄책감이 없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충과 효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대부이기 때문에 중책에 임용되었을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이 드내요

후손으로써 선조의 허물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허물을 후대에 후손들이 되풀이 하지 않고 바르게 교육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후손들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백범김구선생도 그의 선조인 김자점에 의해서 상민으로 말로 형용할수 없는 다른 양반들로부터의 멸시와 서로움을 당했다는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백범선생은 원망과 부끄러움보다는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상황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대해서 바른길을 찾았습니다.

모진 역경을그의 동료들과 이겨내고 조국의 독립에 기여하였으나 동족인 안두희의 총탄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에서 근대사에 백범선생처럼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으로 평가 받고있습니다.

그의 지극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당시에는 많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근대사를 되돌아 볼때 그가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사람들이 알게 되었던겁니다.

양반과 상민이 없고 평등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한민족의 후손들에게 공과 과실을 바르게 교육시켜야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적인 나라가 되는데 기여할거라고 믿습니다.

두서없이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저는 경순왕의 아들인 은열의 외후손입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께서는 역사에도 조예가 깊고 분석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의견 주시길 바랍니다.

▣ 김태서 - 지나가는님의 사과를 받아 들입니다.두달 전의 님의 말씀 한 마디가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님의 글을 읽고 그런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문정공 휘 질께서는 저의 18대조 되십니다. 앞으로도 많은 의견 나눴으면 합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 김태완 - 역사의 순리는 도전과 응전입니다(아놀드토인비)

▣ 김태완 - 교뵤한 글솜씨로 3단계 논리를 표ㅕ지 마시시요

▣ 김태완 - 교뵤한 글솜씨로 3단계 논리를 펴지 마시시요

▣ 김태완 - 자손은 자손의 입장에서 반성과 긍지를 가집니다

▣ 김태완 - 문정공 김질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 김태완 - 저도 이 역사의 현장을 밀도있게 조명하려는 사학자입니다

▣ 김태완 - 역사의 현장을 목숨 구걸로 보는 당신은 함부로 글 올리지 마시요

▣ 김태완 - 아놀드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더 읽으시오

▣ 김부회 - 건방진 녀석이군, 들리지 말고 그냥 지나가시오

▣ 솔내영환 -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와 노력으로서 진실을 밝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상황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의 잣대로 모두 역사를 재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잣대가 오해와 오류를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의견과 견해의 토론은 환영합니다. 그러나 나만이 옳다라든가 이겻이 정설이라든가 하는 것도 역사를 바로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안목이 아닐까요? 여러 의견 존중하면서 또 배려하면서 맑은 결론에 도달하도록 이끄는것이 후손을 이끄는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항용 -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리 문중의 선조님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점에 대해서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인물에 대한 평을 할 때는 평가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그 기준점이 갖는 한계점과 문제점을 먼저 확인하고 전제해야 자신의 평에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공감이 적은 평은 독선이 되고 말지요.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일 경우는 더욱 더 심사숙고한 자세로 임해야겠지요. 어떤 평을 하느냐에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기도 하구요. 자칫하면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 때로는 자신의 조상님들 까지도 욕되게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남의 집에 들어가 그 집 사람들 앞에서 그 집안의 조상님에 대한 평을 할 때는 더욱 예를 갖추고 조심스런 자세로 임해야 옳다고 봅니다. 충신과 충절의 논란은 오랜 엣날부터 있어 왔지요. 그런데 이 평에는 동시대의 가치관으로 동시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원칙을 가져야겠지요.

이곳은 안동김씨 홈입니다. 후손인 우리들은 자신의 조상님에 대한 빛나는 업적과 공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본능적 옹호심이 발동할 수도 있습니다. 이점도 간과해서는 안되며, 또한 그런 자세를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손님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한번 방문을 환영합니다.

▣ 김윤만 - 방문을 환영합니다. 객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그리고 시공을 초월하여 멀리 떨어져서 그 시대 상황 논리를 조명해 봅니다. 그리고 사건을 뒤집어 보기도 하하

▣ 김윤만 - 합니다. 그러면서 선조님의 역사적 평가를 때로는 가슴아파하며 바르게 보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또다른 진실이 있지 않을까 탐구합니다. 손님으로서의 최소한의 예는 갖추시길 바라며 자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 김재이 - 여러종친들이 섭섭한 감정을 보이셨습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남에게 누를끼치는것은 결코 보람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김재원 -

▣ 聚善堂,在益 - 대어는 소어식하고 약육 강식하는 사회의 정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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