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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안동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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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11-02 18:13 조회1,6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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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안동김씨는 경순대왕의 손자인 숙승을 시조로 하고, 한림학사 효인의 아들로 고려에서 명성을 날린 방경을 중시조로 하여 문호를 열었다.
충렬공 방경은 고려 때 이름난 명장이자 명상으로 원종조에 삼별초의 난과 왜구 등을 토평하여 추충정난정원공신에 녹훈되었고
도첨의중찬·판전리사사에 이르러 치사하여 상락군 개국공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그르나 시조를 달리하는 선평계의 안동김씨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세칭 선안동(구) 후안동(신)
으로 구분하고 있다.
명문 선안동 김씨는 역사적으로 볼 때  대체로 고려 말엽에서 조선 중기인 인조 때까지 상당한 세력을 떨쳤으며, 중시조 방경의 현손대에서 대소 21파로 분파되어 그중 15파가 현존하며, 15파 중에서도 영후의 손자들인 익달의 제학공파, 사렴의 안렴공파, 사형의 익원공파가 구안동 인구의 60~70%를 차지하여, 통칭 [제안의 3파]로 불리우며 이 밖에 군사공파, 문온공파, 도평의공파 등 3파가 그에 버금간다.
이렇게 충효의 전통을 이어 세도를 떨쳐온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사에 찬연한 발자취를 남긴 중시조 방경을 비롯한 그의 다섯 아들과 손자들이 가문의 중흥을 일으켜 명실상부한 명문세도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그중 장남 훤은 원충단력안사보정공신으로 전법판서를 거쳐 상호군에 이르렀고, 차남 흔은 삼중대광, 도첨의사사를 지냈다.
셋째 아들 순도 삼중대광, 상락군에 봉해져 동생 론과 함께 명문의 대를 이었고, 훤의 아들 승용, 승택과 순의 아드 영돈, 영후 등도 모두 명신, 충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떨쳐 사실상 "선안동"의 주축이 된, 우상 영후의 후손중에는 고려 말의 충신 사렴이 유명하다.
그는 공민왕 초엽, 문과에 올라 정몽주, 이색 등과 함께 바른말을 잘하는 직간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고려가 망하자 청주에 은거하여 수차에 걸친 태조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은 절신이다.
평소 그는 한양쪽을 향해 앉지도 않았으며 죽음에 임하여, "고려의 신하로서 군왕을 보필하여 나라를 보존치 못했을 뿐 아니라 신순치도 못한 죄인이 무슨 면목으로 죽어서 선왕을 뵐 것인가, 내가 죽은 뒤 심심 산중에 묻어 봉토하지 말며 돌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후손은 벼슬에 나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숙종은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일편도산 만고수양] 이라는 과제로 응과생들에게 과거를 보였고, 송시열은 [충병일월 절고산악 일편도산 만고수양]이라고 그를 칭찬했다.
사렴의 동생 사형은 좌의정으로 치사할 때까지 한번도 탄핵을 받은 일이 없었으며, 증손 질은 세종 때 문과에 올라 집현전수찬을 거쳐 세조 때 우의정에 이르렀고, 그의 아우 무는 중종 때 공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수동은 사형의 현손이며 질의 조카로 성품이 원만하고 인화가 좋아, 연산군의 폭정에도 화를 면했을 뿐 아니라 많은 문신들을 감싸주어 무사하게 했다.
그의 동생 수경은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3등공신에 올라 영양군에 봉해졌으며, 학문이 높아 당시의 선비들과 깊은 교유를 맺었다.
{그가 부친의 제삿날에 제물을 마련할 길이 없어 통곡했더니 꿩이 스스로 부엌에 날아들어서 그 꿩을 잡아 제물로 썻다 하며 제사에 쓸 간장을 쥐가 흐려놀아 통곡하니 밤새 쥐가 때를 지어 장독아래 모여 죽었다고 한다}
4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무덤옆에 여막을 지어놓고 살았는데 밤새 한 길이 넘게 눈이 내렸으나 여막 둘래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탄복한 사람들이 그곳을 가리켜 [제청산]이라 이름지었다.
한편 질의 현손 찬은 임진왜란 수습의 막후 인물로서 3국간의 외교적 절충을 성공시킨 명신이었다.
이렇듯 세력을 떨치던 [구안동]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자점이 탄핵을 받아 처형 되면서부터 정치적인 몰락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명종 때 내외직을 역임하고 문장과 초서로 이름을 날린 주는 예조참판을 지낸 후, 종계변무사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마치고 죽었으므로 광국공신 3등으로 화산군에 봉해졌으며, 병조호란 때 성천부사로 순절한 언은 사렴의 후손이다.
그밖에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국난 때 자기 몸을 불사른 충성으로, 충의가문의 명예를 더욱 빛낸 인물중에 제갑과 그의 조카 시민, 시약 형제가 유명했다.
제갑은 임진왜란 때 원주목사로 원주성을 사수하다가 부인과 작은 아들 시백이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쳐 영의정에 추증되고, 1966년 강원도민에 의해 원주역전 광장에서 그의 충렬비가 세워졌다.
시민은 제갑의 형 충갑의 아들로 1578년(선조 11)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판관이 되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판서에게 건의한 것이 채택되지 않아 관직을 버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목사가 되어 사천, 고성, 진해 등지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올라 금산에서 다시 적을 대파했다.
그해 10월 진주성이 적의 대군에게 포위되자 겨우 3천 8백 명의 병력으로 7일간의 공방전 끝에 3만 여 명의 적을 사상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여, 선무2등공신에 녹훈되고 영의정 및 상락부원군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우 시약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선봉장으로 활약했고, 정유왜란에도 전공을 세웠는데 정묘호란 때 두 아들과 함께 적에게 포로가 되어 순절했다.
또 시민의 아들 치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특히 천문과 역학에 뛰어나 인조반정으로 능양대군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했다.
비안 현감 인갑의 아들 시양은 전적과 경사에 밝았으며 인조 때 천백리에 녹선되었고, 벼슬은 병조판서에 이르러 이조판서를 지낸 아들 휘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또한 숙종 때의 시인 득신과 무신으로 순절하여 영의정에 추증된 응하, 훈련대장 응해, 응하의 증손 중기 등도 모두 가문을 중흥시킨 후손들로 대사성 구용, 지돈령부사 구덕, 대사헌 유, 천문학자 돈, 시인 광수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근대에 와서는 백범 구가 유명하였는데 그는 15세에 학자 정문재에게 한학을 배우고, 18세 때 동학에 들어가 일찍부터 민권투쟁의 선봉이 되었으며, 일본국 중위를 때려죽인 죄로 사형 언도를 받았으나 탈옥하여 한때 중이 되기도 하였다.
그후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암살사건에 관련되어 투옥되었고, 3.1운동 후 상해로 망명한 그는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을 역임하면서 [한국독립당]을 조직, 2년 뒤인 1930년 1월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하여 현상이 붙은 채 상해를 탈출, 남경에서 장개석을 만나 한국인 대일전투 방책을 협의, 한국국민당을 조직했다.
1940년 중경에서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광복군을 조직하여 항일전을 전개했으며,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한독당 당수로 있다가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함으로써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이렇게 명문 구안동김씨는 나라의 발전과 가문의 중흥을 위해 훌륭한 인물을 대거 배출하여 현대에 와서도 명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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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군 일원
경북 의성군 일원
충남 천안군 일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원
충남 괴산군 증평읍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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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行列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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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行列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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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천서원

김사렴

충북 청원군 오창면

도정사우

김영돈

충남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도정사우

김진

충남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도정사우

김익달

충남 천안군 병천면 가전리

충렬사

김제갑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충렬사

김응하

함북 종성군

충렬사

김응하

함북 경원군

충렬사

김응하

평북 창성군

충민사

김시민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창렬사

김시민

경남 진주시

포충사

김응하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하갈리

의열사

김응하

평북 선천군

도암사

김질

전북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효자정려

김익정

충남 연기군 전동면 양곡리

효자정려

김질

전북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사충정려

김천주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사충정려

김천장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사충정려

김성추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사충정려

김성옥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효열정려

김몽상

강원도 강릉시 교동

부조묘

김사형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부조묘

김주

경기도 이천군 율면 본죽리

영당

김사형

경남 함양군 안의면 초동리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이번 제학공 할아버지 향사시 만날 수 있겠지요?
▣ 김항용 - 감사합니다. 아버님 건강때문에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 김재이 - 잘읽었습니다 저히집 아이들도 읽고 너무좋아 합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대부님 병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이럴 때일수록 마음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 김주회 - 잘 보아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윤 -
▣ 김재원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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