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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紐의 雪中採樵圖 관련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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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1-03 04:04 조회1,7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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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紐의 雪中採樵圖 관련기록



안정공파 김뉴 선조님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설중채초도 관련 기록을 찾아 모아 보았습니다.







●한국회화대관 (1979, 류복열, 문교원)



p78

金紐

字는 子固요, 號는 琴軒 翠軒 雙溪齋 觀後庵 또는 上洛居士이며 安東人이다. 세종2년(서기 1420년) 庚子에 生하여 세조9년 甲申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참판을 지냈다. 그림을 잘 그렸다. <연려실기술 별집> 그의 유작으로 전하는 <설중채초도>는 筆意가 重厚하고 品格이 高尙하다.



도판 No.24

쌍계재 김뉴 필 <雪中採樵圖> 紙本 墨畵, 종112.0 횡56.6,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디지털한국학



김뉴(金紐)

시대 조선

생몰년 1420-?(세종2-?)

본관 안동(安東)

자 자고(子固)

호 금헌(琴軒)/취헌(翠軒)/쌍계재(雙溪齋)/관후암(觀後庵)/상락거사(上洛居士)

시호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1420(세종 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고(子固), 호는 금헌(琴軒)·취헌(翠軒)·쌍계재(雙溪齋)·관후암(觀後庵) 또는 상락거사(上洛居士). 아버지는 ★중엄(仲淹)이고, 어머니는 ★조준(趙浚)의 손녀이며 ★대림(大臨)의 딸이다.

1464년(세조 10) 녹사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황해·평안도의 땅을 개간한 공으로 벼슬에 나가 성균학유가 되었다. 곧 사복직장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호조좌랑으로 《경국대전》 편찬작업을 위해 이전(吏典)을 수교하였고, 또 경차관으로 전라도에 파견되었다.

1466년 발영시·등준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안효례(安孝禮)·★유희익(兪希益) 등과 함께 도성(都城)을 측량하고 지도를 작성하였다.

또한, 예문관직제학으로 《세조실록》·《예종실록》 등을 편찬하는 데 기여함이 컸다.

1470년(성종 1) 완성단계에 있는 《경국대전》을 다시 수교하였다.

1472년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참찬관으로 저화법(楮貨法)사용을 강조하는 방안을 주장하였다. 이어 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478년에는 대사헌으로 군비확충을 위해 전라도 순천지방에 석보(石堡)를 쌓고 군인을 늘리며, 함경도 회령과 마도달량어란(馬글達梁於蘭)사이에 보를 설치하고 식량을 저축할 것을 제의하여 실천하게 하였다.

1479년 겸성균관동지사가 되고, 1481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484년 행사직이 되고, 이듬해 시를 지어 바쳐 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1490년 다시 이조참판이 되었다.

재주가 있고 학문을 좋아하여 글을 잘 지었고, 행서와 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으며, 거문고도 잘 하여 ‘3절(三絶)’이라 불리었고 그림 또한 잘 그렸다. 글씨로는 해동명적(海東名跡)·초로관주(草露貫珠) 등에 모간(模刊)한 것이 있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睿宗實錄, 成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용12齋叢話,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朴定子〉





허오(許吾)

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 피리의 명인.

당시 풍류를 좋아하는 ★김뉴(金紐)가 자리를 베풀어 ★허오의 피리는 물론 ★이마지(李#마02知)의 거문고, ★도선길(都善吉)의 당비파, ★송전수(宋田守)의 향비파 등이 어울려 풍류를 즐기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용12齋叢話. 〈權五聖〉









●서울600년 4권 (1996, 김영상)

琴軒의 雙溪齋 (금헌의 쌍계재)

- 성균관 북쪽 운치 깃든 절경

성균관을 가운데 두고 그 동쪽과 서쪽으로 泮水(반수)가 흐른다. 지금은 복개가 되어서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동쪽 개울 위편이 경치 좋고 그윽한 터전이어서 한성 초기에 琴軒 ★金紐 (1420-?) 가 쌍계재 서옥, 곧 글방을 짓고 살았다. 여기에 사숙재 ★강희맹이 글로 <쌍계재賦>를 지어 일약 장안의 명소가 되었다.

김유의 본관은 안동으로 --- (중략) --- 시와 글씨, 거문고에 뛰어나서 당대의 3絶이라 일컬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한성부 古蹟 조에

"쌍계재의 遺址가 성균관 泮水(성균관을 싸고 흐르는 개울) 동쪽에 있는데 ★김유의 옛 집터이다" 라고 적고 있다.

<용재총화>에도

"서울 성안에서 경치 좋은 곳이 비록 적으나 그 중에서 삼청동이 가장 좋고 인왕동이 그 다음이다. 쌍계동, 백운동, 청학동이 또 그 다음이다.--- 쌍계동은 성균관 윗골(上谷)에 있는데 두 샘물이 산골의 실개천을 이룬다. ★김유가 개천가에 초당(草堂)을 짓고 복숭아나무를 심어 무릉도원을 모방하니 ★강희맹이 글(賦)을 지었다." 라고 씌어 있다.

<쌍계재 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 (생략) ---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던 ★강희맹(1424-1483)은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문장이 당대의 으뜸이어서 죽은 뒤에 성종 임금께서 친히 서거정을 시켜 그의 유고를 편집하여 올리게 하였다.

그런데 요사이 서울을 명소를 소개하는 글 가운데 지금의 이화동 근방에 있던 쌍계동과 이곳의 쌍계재를 혼동하는 예가 자주 눈에 띄나, 성균관 반수 위에 있던 쌍계재와 낙산기슭의 상계동은 전혀 별개의 명소였다.

(그림) 금헌 ★김유의 雪憔圖(설초도)







●한국서화가인명사전 (2000, 한문영, 범우사)]

p115

김유 (金紐) 조선. 1420(세종2)-?. 문관 서화가. 字는 자고(子固). 號는 금헌(琴軒) 취헌(翠軒) 쌍계재(雙溪齋) 관후암(觀後庵) 상락거사(上洛居士). 본관은 안동. 지돈녕부사 ★김충엄(金 淹)의 아들. 영의정 ★조준의 외손.

1464년(세조10) 문과에 급제, 호조좌랑 예문관직제학 대사헌 등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냈다.

젊어서 한때 방랑생활을 했으나 학문을 즐기고 문장에 능했다. 특히 행서 초서를 잘 쓰고 거문고도 잘 타, 시서금 삼절로 일컬어졌다. 성균관 북쪽, 지금의 성북동 골짜기에 쌍계당을 짓고 해마다 봄철이면 벗들을 초청하여 시와 술로 인생을 즐겼다. 만년에는 두 다리가 마비되어 기동할 수 없이 되었으나 태연히 담소하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 글림도 잘 그렸다. <작품>雪中採樵圖

<그림> 金紐 雪中採樵圖







●한국회화사연구 (2001, 안휘준, 시공사)



p578

<동자견려도>에 보이는 ★김시의 화풍은 후에 이경윤의 <사호위기도>, 김명국의 <설중귀로도> 등으로 그 전통이 이어진다.

그런데 또 한가지 이 <동자견려도>와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것은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필자미상 <설중채초도>이다. 이 <설중채초도>는 ★강희안과 동시대 사인화가였던 ★김유(金紐, 1420-?)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고, 또 양식적으로도 그렇게까지 올라갈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림의 왼쪽 하단부에 아홉 자의 백문방인이 있는데 훼손이 심하여 완전한 판독이 불가능하나 ★김유의 성명이나 字號와 유관한 글씨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또 저자의 과문 탓인지는 모르나 이 그림 이외에는 ★김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어 비교도 해 볼 수 없다.

그런데 화풍으로 보면 <설중채초도>는 명나라에서 ★김유보다 약 40여년 후에 ★오위, ★장로 등에 의하여 형성되었던 절파 후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현재의 전칭보다 연대를 훨씬 낮추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인 구도, 산의 처리, 樹法, 필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 하시모토(橋本) 집안에 소장된 ★장로의 작품인 <도원순학도>와 유사하다. 倒懸의 주봉, 주봉의 허리에서 대각선을 그으며 흘러내리는 산의 능선, 병풍처럼 늘어선 원산으로 밀폐된 공간, 그 사이에 박힌 듯 서 있는 초가들, 긴 삼각형 잔가지와 잎들로 엉클어진 근경의 나무들, 이런 모든 요소들은 두 그림에서 유사하게 간취된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설중채초도>의 구도가 <도원순학도>의 그것을 뒤집어 놓은 격이라는 점일 것이다. 중국 절파의 후기 양식인 광태파의 화풍이 지체없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16세기 전반 이전으로는 올려보기 힘들 것이다.

이 그림은 아마도 김시의 <동자견려도>보다 연대가 다소 올라가는, 말하자면 김시에 약간 선행하는 16세기 전반경의 작품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확단은 할 수 없다.



도243

필자미상. <설중채초도> 16세기. 종이에 수묵, 112*56.6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재이 -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고대 박물관에 설중채조도가 있다고 하니 한번 보러 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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