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볌기념관 개관기념 학술대회(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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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1-06 06:02 조회1,846회 댓글0건본문
백볌기념관 개관기념 학술대회(10.31)
며칠만에 신문을 일별해 보니 10월 31일 백범기념관에서 백범기념관 개관기념 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백범기념관(02-719-1311)에 서둘러 전화를 해서 학술대회 자료집을 요청하니 이미 다 배부되고 백범기념관 비치본 밖에 남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몇 달후에 이번 학술대회 자료집과 백범연구 논문 서너편을 합쳐서 단행본으로 제작 예정이라고 몇 달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조선일보/문화)
[문화] “백범의 임시정부 한반도 진공계획” (2002.10.28)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일제 말기 제주도를 거점삼아 한반도 진공작전을 펼치려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1일 오전 9시30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백범기념관 개관 기념 학술대회에서 ‘백범 김구와 중경 임시정부’를 발표하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김구 주석이 제주도를 통해 국내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을 미국측에 제의했다는 것이 중국 자료에 나타난다”고 미리 발표한 논문에서 밝혔다.
한교수가 찾아낸 자료는 중국 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하국광(賀國光)이 중국 국민당 오철성(吳鐵城) 비서장에게 보낸 1945년 7월25일자 보고서. 이 보고서는 김구가 미국의 중국전구(戰區)사령관인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미군이 제주도를 해방시켜주면, 임시정부가 즉각 미군의 협조하에 제주도에 들어가 전 한국인을 영도하여 미군 작전을 돕겠다”고 제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백범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보낸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1945년 4월17일과 5월1일 두차례에 걸쳐 백범은 중국전구사령부를 방문한 적 있다고 한 교수는 밝혔다. 백범이 5월1일 그로스 참모장을 통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전달한 문서에서 그같은 제의를 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한교수는 “중국 정보기관은 이 문서에 ‘미국 측이 군사상 한국측의 협조를 필요로 할 경우,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와 교섭할 수있으며, 더 이상 중국 군사위원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김구가 미군 측에 광복군과 직접 교섭을 벌일 것을 요구하면서, 제주도 진공 계획을 제의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광복군의 국내 진공계획이 무산됐다.
‘백범 김구의 민족독립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을 제목으로 한 이날 학술대회는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장 박유철), 백범학술원(원장 신용하) 공동주최.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가 ‘백범 김구의 청소년기 생활과 의병운동’을,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백범 김구와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을,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백범 김구의 평화통일운동’을 각각 발표한다. (02)719-1311
▣ 태영/문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학술대회 자료집과 백범연구 논문 단행본이 기다려 집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며칠만에 신문을 일별해 보니 10월 31일 백범기념관에서 백범기념관 개관기념 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백범기념관(02-719-1311)에 서둘러 전화를 해서 학술대회 자료집을 요청하니 이미 다 배부되고 백범기념관 비치본 밖에 남이 있지 않다고 합니다. 몇 달후에 이번 학술대회 자료집과 백범연구 논문 서너편을 합쳐서 단행본으로 제작 예정이라고 몇 달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조선일보/문화)
[문화] “백범의 임시정부 한반도 진공계획” (2002.10.28)
백범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가 일제 말기 제주도를 거점삼아 한반도 진공작전을 펼치려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1일 오전 9시30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리는 백범기념관 개관 기념 학술대회에서 ‘백범 김구와 중경 임시정부’를 발표하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김구 주석이 제주도를 통해 국내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을 미국측에 제의했다는 것이 중국 자료에 나타난다”고 미리 발표한 논문에서 밝혔다.
한교수가 찾아낸 자료는 중국 군사위원회 판공청 주임 하국광(賀國光)이 중국 국민당 오철성(吳鐵城) 비서장에게 보낸 1945년 7월25일자 보고서. 이 보고서는 김구가 미국의 중국전구(戰區)사령관인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미군이 제주도를 해방시켜주면, 임시정부가 즉각 미군의 협조하에 제주도에 들어가 전 한국인을 영도하여 미군 작전을 돕겠다”고 제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백범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보낸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1945년 4월17일과 5월1일 두차례에 걸쳐 백범은 중국전구사령부를 방문한 적 있다고 한 교수는 밝혔다. 백범이 5월1일 그로스 참모장을 통해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전달한 문서에서 그같은 제의를 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한교수는 “중국 정보기관은 이 문서에 ‘미국 측이 군사상 한국측의 협조를 필요로 할 경우,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와 교섭할 수있으며, 더 이상 중국 군사위원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김구가 미군 측에 광복군과 직접 교섭을 벌일 것을 요구하면서, 제주도 진공 계획을 제의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광복군의 국내 진공계획이 무산됐다.
‘백범 김구의 민족독립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을 제목으로 한 이날 학술대회는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장 박유철), 백범학술원(원장 신용하) 공동주최.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가 ‘백범 김구의 청소년기 생활과 의병운동’을,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백범 김구와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을,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백범 김구의 평화통일운동’을 각각 발표한다. (02)719-1311
▣ 태영/문 -
▣ 김재원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학술대회 자료집과 백범연구 논문 단행본이 기다려 집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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