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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병천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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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11-06 17:11 조회1,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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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천면 가전리 백전동(잣밭) 제학공파 세거지 및 도정사
 가. 개관
 충남 천안시 백전면 가전리 일대는 제학공파 세거지로서 1545년 을사사화로 입향조이신 구암공(휘 충갑)께서 이곳(가전리 옆의 수신면 장산리)으로 유배 오면서부터 우리 안동김문의 世居는 시작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창평이씨들이 크게 번성해 있었는데 공은 喪配한 상태였기에 이곳의 부호요 명인이었던 참봉 이성춘의 녀와 혼인을 하였다. 그 후 이곳에서 충무공(휘 時敏), 감정공(휘 時愼), 교관공(휘 時進)을 낳았고 그 이후 안동김씨가 번성하기 시작하여 500여 년 간 제학공파의 세거지를 이루어 왔다. 한 때는 약 100여 호에 500여 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약 80여 호에 160여 명이 근동에 살고 있다.
 이곳에는 문숙공(휘 영돈), 상락백공(휘 진)과 제학공(휘 익달)의 영단이 있으며, 선조님을 모시기 위한 도정사(桃汀祠-사당)와 영모재(永慕齋-재실)가 있고, 입향조와 그 후손들의 역사 유적과 묘소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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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천면 가전리 백전동 마을 전경>

  

<제학공파 병천종중 간략 파계도>
 方慶(忠烈公)-恂(文英公)-永暾(文肅公)-縝(上洛伯公)-益達(提學公)-顧(司諫公)-孟廉(監察公)-哲鈞(主簿公)-壽亨(丞旨公)-彦默(參判公)-錫(領相公)-忠甲(龜巖公)--
--1)時晦(富平公), 2)時覺(生員公), 3)時敏(忠武公), 4)時愼(監正公), 5)時進(敎官公),
  6)時若(昌城公)

나. 주요 묘소 및 유적 분포도(행사일에 유인물로 제시)
  1)가전리 백전동(잣밭) 일대

  2)수신면 장산리 도정사 일대

  3)동면 탑원리 일대

 

 다. 입향조 소개
 *김충갑(金忠甲) 1515(중종10)∼1575(선조8)
  字는 서초(恕初), 호는 구암(龜岩)·오죽산인(悟竹山人), 1545年(明宗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지평(持坪), 헌납(獻納), 북평사(北平事)를 거쳤다. 을사사화(乙巳士禍) 때는 서울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직되고, 서청주(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약 20여 년간 유배되었다가 선조초에 방환(放還)되었다.
  그 후 안악군수(安岳郡守)가 되었으며 요승 보우(妖僧普雨)를 벌할 것을 누차 상소한 바 있다. 충무공(휘 時敏) 장군의 부친이며 경상감사를 지낸 남봉공(휘 緻)의 조부이며 시인 백곡공(휘 得臣)의 증조부이다. 보조공신(輔祚功臣) 좌찬성(左贊成) 상락군(上洛君)에 추증되었다. 묘는 충북 중원군 살미면 무릉동에서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로 천봉(遷封)하였다. 문집으로 <구암집(龜巖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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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암공 묘소>(충북 괴산읍 능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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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암공 유적비>(천안시 병천면 가전리.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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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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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필 서찰>           

 

  <時調 소개>

 베엿도다 베엿도다 落落長松 베엿도다  

                            (베었도다 베었도다 낙락장송 베었도다)

 조곰       두엇던들 棟樑之材 되올너니  

                            (조금 두었다면 동량지재가 되었을 텐데)

 우(口于)嗟홉다 大厦 기우러진덜 그 무어스로 기동할고  

                            (슬프도다 큰 집이 기울어진들 그 무엇으로 기둥을 할까)

  *발견자 : 김항용. *출전 : <上洛家乘>(二券. 券三, 五分派事實, 19쪽) 
  *출전 소개 : 金龜浩(玉泉處士. 부평공 휘 時晦 후손) 著. 현 金恒鏞 소장. 1895년(고종 32) 제작. 제학공파 내 선조님 관련 전 내용 수록. 파내 유일 귀중본.
  *시조 제작 경위 :  구암공(龜巖公)의 매부인 이휘(李煇)가 을사당인으로 몰려 국문을 받다가 매맞아 죽었고, 공도 그 후 을사당인의 친척이라 하여 충청도 서청주(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병천면 옆.)에서 20년 간 유배생활을 함. 이때 공은 매부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며 상기 시조를 지음.

 




▣ 김윤만 - 병천 가전리 입향조가 구암 김충갑 할아버지신데 어찌 충주며 괴산에 산소를 모시게 되었습니까?
▣ 김항용 - 그 당시에는 명당을 찾아 음택을 마련한 것같습니다. 구암공과 충무공 모두 최초에는 충주의 살미에 묘소를 썼다가 최근, 충주댐 공사로 그곳이 수장되기에 다시 부친(휘 錫)의 묘소와 장자(휘 時晦)의 후손들과 근친 일가들이 집성해 살고 있는 괴산 능촌리(구암공 묘소)와 능촌리의 충민사(충무공 묘소)로 천봉한 것입니다.

 구암공은 처음 배위에게서 1,2자를 괴산에서 낳고, 喪配 후 3,4,5자를 이곳 병천 출신이신 창평이씨에게서 낳으셨지요. 그래서 공은 장자가 있는 괴산과 이곳 병천을 왕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병천에는 구암공의 3자인 충무공(휘 時敏)과 5자인 교관공(휘 時進) 후손들이 주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제학공 할아버지 시제에 앞서 많은 공부가 되고있습니다. 그리고 보내주신 조선완조실록(諱 墩 선조님 관련자료)잘 받아 보았습니다. 복사하여 찬찬히 보고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 김계응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 김영윤 -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 태영/문 - 감사합니다. 많은 공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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