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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파내 음성공파 관련 사진 및 자점보 사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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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2-11-08 00:34 조회1,8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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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온공파내 음성공파 관련 사진 자료 및 김자점 선조님의 자점보 사진 소개>



*윤만(문) 대부님께서 우편으로 보내주신 사진을 스캔하여 본 홈에 올린 뒤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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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학묵님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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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공파 종회 및 종계 모습>(2002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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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상촌 시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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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여교사 충혼탑>(충북 중원군 동락초등학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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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교사 기념관 기념 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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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초등학교와 김재옥교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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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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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족산>



<상기 자점보 관련 본 홈 게시판 내용(2002. 7. 20) 윤만님(문)의 이천군지 조사 내용 첨가>



▣ 오남리(梧南里) 자점보(自點洑) pp798.

--보(洑)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흐르는 냇물을 막아 둑을 쌓은 것을 말하는데, 자

점보(自點洑)는 경기도와 충청북도 음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청미천(淸渼川) 상류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장호원읍 오남리 지역으로 백족산(白足山) 동남단 끝이 된다.

--인조반정 때의 공신(功臣)으로 왕실의 외척이 되어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오르는

등 권세를 마음껏 휘두르다가, 효종 2년(서기 1651) 역모사건이 탄로되어 주살된 김

자점(金自點)이 쌓았다고 하여 자점보라 불리우며, 인근에서는 자재미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백족산 중에는 금반형(金盤形)이라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명당이 있는

데, 김자점이 일찍부터 이곳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득세하게 되자 그 부친의 묘를

그 곳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금반형에는 그 앞에 반드시 큰 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곳에는 단 한 가지 물이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김자점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묘

가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 청미천을 막아 보를 쌓으므로서 부족한 수세를 보강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자점보가 생기게 된 유래이다.

--자점보는 결과적으로 장호원 일대의 중요한 농용수 공급원이 되어 그 이후부터

이 지역은 가뭄을 모르는 고장이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오남리 일대에 물을 공급하

는 중요한 수원지 구실을 하고 있다.

--수백년을 내려오는 동안 하상(河床)의 변동과 개축으로 원래의 형태는 밝히기 어

려우나 현재 남아있는 보의 길이는 약 500m 가량이며, 폭은 넓은 곳이 약 6m, 좁은

곳은 2m 가량된다.


▣ 백족산(白足山) pp815.

--장호원읍에 있는 백족산은 해발 402.2m로 이천군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며

산 남쪽을 청미천(淸渼川)이 휘돌아 그 건너편은 충청북도 음성군이다.

--산정에는 백개의 발을 가진 지네가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깃든 지네굴이 있는데,

이 지네의 전설에서 백족이라는 산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

勝覽)」 음죽현(陰竹縣) 조(條)에 「백족산은 현(現) 남쪽 15리 지점에 있으며 산중

에는 석남사(石南寺)와 백족사(白足寺)가 있다.」고 나와 있어 예로부터 백족산이라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

--이 백족산에도 금반형지(金盤形地)의 전설이 있으니 산 남쪽 기슭에 있는 김자점

(金自點)의 부친의 묘(墓)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조선 인조 때의 역

신인 김자점은 여기에 부친의 묘를 쓰고 묘 앞에 부족한 수세(水勢)를 보강하기 위

하여 청미천 상류를 막아 자점보(自點洑)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로 인해 득세하여 영

의정의 자리에 까지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촌로들에 의하면 이곳은 아무리 강풍이 휘몰아치는 날도 바람 한점 없이 평온하다

고 한다.

--산중에는 보타사(寶陀寺)가 있으나 창건년대는 그리 오래지 않으며, 백족산 서쪽에

있는 어석리(於石里) 부락 가운데에 지방지정문화재 107호인 높이 5m의 입상석불(立

像石佛)이 있다.


▣ 자점보(自點洑)의 유래(由來). pp899.

--장호원은 남쪽으로 해발 402m의 우뚝 솟은 백족산(白足山)이 있고 이 백족산 남

단(南端)을 휘돌아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청미천(淸渼川)이 길게 흐르고

있다.

--이 백족산 남단에 청미천 상류를 막아 만들어진 보(洑)가 자점보(自點洑)인데 조선

인조때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功臣)으로 영의정까지 지내며 권세를 마음껏 휘두

르다 역모사건이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김자점(金自點)이 쌓았다하여 그렇게 불리워

지며 거기엔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있다.

--백족산에는 금반형(金盤形)이라는 묘(墓)자리가 있는데 풍수지리에서는 금반형을

묘자리의 으뜸으로 쳤다. 이 금반형 자리를 김자점이 젊어서부터 눈독을 들이다가

임금의 외척(外戚)으로 득세하여 조정을 휘어잡게 되자 때를 놓치지 않고 부친의 묘

를 그 곳에다가 썼다.

--그런데 백족산의 금반형 자리에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묘에서 내

려다 보이는 곳에 큰 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청미천 만으로는 신통치가 않은 점

이 었다. 김자점은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청미천을 막음으로써 커다란 인공호수를

만들고 거기에 사시 사철 푸른 물이 고여있게 하여 부친의 묘를 명실상부한 금반형

의 명당(名堂)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덕(德)으로 가뭄이 들 때에는 근처 농민들이 보의 물을 몰래 뽑아써서 인근 일

대가 흉작으로 모르는 고장이 되었고 자점보의 물로 농사를 지으면 밥맛이 좋고 그

쌀을 먹은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어 김자점이 그 쌀을 가져다 먹고는 임금

의 외척이 되어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말도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보의 길이는 약 500m, 폭이 넓은 곳이 약 6m, 좁은 곳은 약 2m 가

량인데 자점보는 지금도 장호원 일대의 중요한 농용수 공급지로 긴요하게 쓰여지고

있다.

--충신 임경업 장군을 모함하여 죽이고 청나라와 반역을 꾸미는 등 악행을 일삼았던

김자점도 우리 고장을 위해서는 한가지 좋은 일을 남김 셈이라 하겠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김학묵 추모비, 상촌 시향과 종친님들, 김재옥 교사 충혼탑과 기념관, 자점보와 백족산 두루두루 잘 보았습니다. 사진이 너무도 깨끗해서 더욱 좋습니다.
▣ 김영윤 -
▣ 김재원 -
▣ 태영/문 - 자점보가 참 특이합니.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이 큰 것 같습니다.
▣ 김윤만 - 수고를 끼쳐드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 솔내영환 - 감곡과 자점보 답사, 그리고 백족산 등산을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 김윤만 - 백족산 남쪽이 율면 본죽리로 이곳 밤골에는 안렴사공파 화산군 김주 선조의 사당 우암사가 있다 하고 그 현손이신 김선의 일실사효정문이 있으니 청미천 건너 생극면 방축리 능안의 권근. 권제. 권람 3대묘 등과 함께 등산과 답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윤만 - 김재옥 교사 기념관 기념 식수는 아주머니와 이득주(사고 당시 중령)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이훈씨가 1990. 7. 7. 하였습니다.
▣ 김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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