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공파 휘 돈(墩)선조님 최종 관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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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2-11-13 06:38 조회1,808회 댓글0건본문
항용 종친께서 메일로 보내주신 조선왕조실록 중 휘 돈 선조님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있습니다.
A4 용지 130장분량의 방대한 자료입니다.
그간 휘 돈 선조님의 최종관직이 도승지, 인수부윤, 이조판서등으로 기록이 제각각
이었으나 실록 자료를 보니 인순부 윤이 최종직인듯 합니다.
그런데 졸기에는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기록이 되어있고
제문에는 인수부 윤(仁壽府尹)으로 기록되어있어 이또한 의문이 듭니다.
인순부 윤(仁順府尹) = 인수부 윤(仁壽府尹) 인지....
인순부(仁順府), 인수부(仁壽府)는 지금의 어디를 일겉는 것일까요?
이조판서는 추증(追贈)직이 아닐런지...계속 추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세종 090 22/09/16(을묘) / 인순부 윤 김돈의 졸기 》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진술하여 아뢴 것이 자세하고 밝았다. 그가 졸(卒)하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부의(賻儀)와 증여(贈與)함이 보통보다 더하였다. 아들은 김계로(金季老)였다.
《 세종 091 22/11/11(경술) / 인수부 윤 김돈의 제문 》
인수부 윤(仁壽府尹) 김돈(金墩)에게 사제(賜祭)하였다. 그 제문(祭文)에 이르기를,
ꡒ생각하건대, 경은 자품이 수이(粹異)하고 학문이 정심(精深)하여, 일찍이 빛나는 명예를 펴서 사림(詞林)을 표박(表?)하였도다. 경연[經츋]에 뽑아 두고 계옥(啓沃)의 바탕을 삼으니, 고금을 변정함과 성리(性理)의 학설에 있어서 좌우로 근원을 만나 자세하게 분석하였으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여겨 사랑함이 깊고 두터웠도다. 경의 노모(老母)가 멀리 강진(康津)에 있음에 경을 외직에 보(補)하기를 아깝게 여겼고, 경이 모친(母親)을 생각할까 가엾게 여겨 특별히 어미를 수레에 모시게 명하여 조석을 같이 하도록 하였도다. 간의(簡儀)를 감독하여 만들게 하니 제작(制作)이 새로왔고, 은대(銀臺)의 장(長)으로 뽑아서 기밀을 관장하게 하였더니, 출납(出納)이 밝고 진실하였으며, 우모(홯謨)에 힘써 부지런하였도다. 더욱 큰 그릇으로 중히 여겨 좋은 보필이 되기를 기약하였더니, 그 약하고 병들음을 민망히 여겨 한직(閑職)으로 승진 제배(除拜) 하였노라. 좋은 약제를 내려주어 날마다 회복하기를 바랐었는데, 어찌하여 수명이 길지 못하여 갑자기 영결(永訣)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자질은 풍부하게 주었으나 생명은 인색하게 주었는지, 영령을 추상(追想)하니 진실로 슬프기 한이 없노라. 이에 휼전(恤典)을 내려 사인으로 하여금 한 잔의 술을 드리게 하노니, 영혼(英魂)이 앎이 있거든 이를 흠향하기 바라노라.ꡓ
하였다.
* 사제(賜祭) :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 주던 일.
숙연한 마음으로 제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 김항용 - 사후에 추증되는 관계로 더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추증은 실록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 태영/문 -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郡/김태영 - 원문도 발굴해야 겠습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 솔내영환 - 인순부와 인수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황희의 아들인 황치신의 관직을 보면 인순부윤에 이어서 인수부윤으로 옮겼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디지털 한국자료)
▣ 김재이 -
▣ 김재이 -
▣ 김재이 -
▣ 김주회 - 발용 종친님의 끈질긴 의지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 김재원 -
A4 용지 130장분량의 방대한 자료입니다.
그간 휘 돈 선조님의 최종관직이 도승지, 인수부윤, 이조판서등으로 기록이 제각각
이었으나 실록 자료를 보니 인순부 윤이 최종직인듯 합니다.
그런데 졸기에는 인순부 윤(仁順府尹)으로 기록이 되어있고
제문에는 인수부 윤(仁壽府尹)으로 기록되어있어 이또한 의문이 듭니다.
인순부 윤(仁順府尹) = 인수부 윤(仁壽府尹) 인지....
인순부(仁順府), 인수부(仁壽府)는 지금의 어디를 일겉는 것일까요?
이조판서는 추증(追贈)직이 아닐런지...계속 추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세종 090 22/09/16(을묘) / 인순부 윤 김돈의 졸기 》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진술하여 아뢴 것이 자세하고 밝았다. 그가 졸(卒)하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부의(賻儀)와 증여(贈與)함이 보통보다 더하였다. 아들은 김계로(金季老)였다.
《 세종 091 22/11/11(경술) / 인수부 윤 김돈의 제문 》
인수부 윤(仁壽府尹) 김돈(金墩)에게 사제(賜祭)하였다. 그 제문(祭文)에 이르기를,
ꡒ생각하건대, 경은 자품이 수이(粹異)하고 학문이 정심(精深)하여, 일찍이 빛나는 명예를 펴서 사림(詞林)을 표박(表?)하였도다. 경연[經츋]에 뽑아 두고 계옥(啓沃)의 바탕을 삼으니, 고금을 변정함과 성리(性理)의 학설에 있어서 좌우로 근원을 만나 자세하게 분석하였으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여겨 사랑함이 깊고 두터웠도다. 경의 노모(老母)가 멀리 강진(康津)에 있음에 경을 외직에 보(補)하기를 아깝게 여겼고, 경이 모친(母親)을 생각할까 가엾게 여겨 특별히 어미를 수레에 모시게 명하여 조석을 같이 하도록 하였도다. 간의(簡儀)를 감독하여 만들게 하니 제작(制作)이 새로왔고, 은대(銀臺)의 장(長)으로 뽑아서 기밀을 관장하게 하였더니, 출납(出納)이 밝고 진실하였으며, 우모(홯謨)에 힘써 부지런하였도다. 더욱 큰 그릇으로 중히 여겨 좋은 보필이 되기를 기약하였더니, 그 약하고 병들음을 민망히 여겨 한직(閑職)으로 승진 제배(除拜) 하였노라. 좋은 약제를 내려주어 날마다 회복하기를 바랐었는데, 어찌하여 수명이 길지 못하여 갑자기 영결(永訣)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자질은 풍부하게 주었으나 생명은 인색하게 주었는지, 영령을 추상(追想)하니 진실로 슬프기 한이 없노라. 이에 휼전(恤典)을 내려 사인으로 하여금 한 잔의 술을 드리게 하노니, 영혼(英魂)이 앎이 있거든 이를 흠향하기 바라노라.ꡓ
하였다.
* 사제(賜祭) : 임금이 죽은 신하에게 제사를 지내 주던 일.
숙연한 마음으로 제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 김항용 - 사후에 추증되는 관계로 더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추증은 실록에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 태영/문 -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郡/김태영 - 원문도 발굴해야 겠습니다. 고생 하셨습니다.
▣ 솔내영환 - 인순부와 인수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황희의 아들인 황치신의 관직을 보면 인순부윤에 이어서 인수부윤으로 옮겼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디지털 한국자료)
▣ 김재이 -
▣ 김재이 -
▣ 김재이 -
▣ 김주회 - 발용 종친님의 끈질긴 의지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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