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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74) 태평양 전쟁의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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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2-12-03 23:14 조회1,6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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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님의 일생을 통하여 근세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1941년 선생님께서는 66세 이해가 다 저무는 년말



12월 8일 일본은 하와이의 진주만의 공습을 감행하여 본격적인 태평양전쟁에



돌입하게 되며, 미국의 본격적인 전쟁 참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진주만 공습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주만 기습 <- 1941. 12. 8



일본이 진주만 기습하려는 계획은 이미 전쟁전에 계획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해군제독 야마모토 이소로꾸는 진주만 기습 계획이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자 반대하는 참모들을 해임한다는 강경한 자세로 이 계획을 입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이 채택된 것은 1941년 3월이었다. 또한 1941년 11월 3일 나가노 해군 군령부 총장은 진주만 기습의 실시를 결재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부대는 11월초 구레 군항에 집결, 10일부터 18일까지 에트로프섬 히트카프만을 향해 출항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 이호 잠수함 30척이 선발대로 하와이 해역으로 향했다. 이들의 임무는 기습부대가 공격하기 전에 진주만의 정세를 정찰하는 것과 공습이 시작되면 나타날지 모르는 미국함대를 기습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중의 5척은 소형 잠수함을 등에 업고 있었는데 이들은 2인승 잠수함으로 어뢰 두발을 장비하고 적함에 몰래 다가가 기습하기 위한 특수 잠함정 이었다.







12월 1일 기습부대(이하 기동부대라 칭함)의 최고 지휘관 나구모 중장에게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대장에게서



- 니이다까야마 노보레 (니이다까 산에 오르라) -



는 암호명령이 떨어졌다. 이것은 개전은 8일 예정대로 공격하라는 뜻이다. 기동부대는 두 줄로 늘어선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히트카프만을 나섰다. 이 기동부대는 북위 45도, 동경 159도 30분 지점에서 바로 동으로 침로를 잡았다. 또한 12월 3일에는 동경 170도 지점에서 해상급유를 받았다. 이 기동부대는 6일 이전에 타국에게 발견되면 임무를 버리고 돌아오라고 되있었으나 나쁜 날씨와 안개 덕에 이들은 일본의 어선 한척을 만났을 뿐이었다. 이들은 무선 관제를 하며 12월 4일 저녁무렵 미드웨이 북방 9백 해리 지점에 이르렀고 다시 침로를 바꾸었다. 또한 7일 아침에는 도꾜의 작전본부에서 진주만에 정박한 미국함대의 군함과 위치가 자세히 타전되어 왔다. 여기서 일본 기동부대의 전 군함은 26노트로 속도를 높이고 진주만 북방 275해리, 북위 26도 서경 158도의 비행 발진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 기습에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냐면 일본의 공격징조가 이미 미국에 의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기동부대와 함께 출항해 먼저 진주만으로 향한 일본 잠수함대가 미국에 의해 발각된 것이다. 7일밤 잠수함대는 진주만을 향하여 특수 잠함정을 발진시켰다. 이들 중 한 대가 8일 03:40분에 미군 소해정인 콘들에 발견되었고 이 연락은 받은 구축함 워드가 폭뢰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06:40분이 되어서야 진주만의 본부에 보고를 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일본의 폭격기들이 기동부대를 떠났을 때였다.







일본기동부대는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8일 오전 06:00에 폭격기들을 발진시켰다. 1차 공격부대인 전투기 43대, 뇌격기 40대, 급강하폭격기 51대, 대형 폭격기 41대가 발진한 것이다. 이 공격부대는 짙은 구름 덕에 목표를 찾는데 고생했으나 07:50분 이들은 하와이 상공에 도착했다. 이들이 폭격대형으로 흩어지고 각 목표로 향할 때까지도 진주만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또한 일본의 기습부대에게 단 하나의 장애로 남아있던 날씨마저 공격시작과 맞추어 안정되기 시작했다. 진주만 항내의 미국 전함들에게 먼저 공격이 시작되었다. 뇌격기가 편대를 풀고 일제히 뇌격 침로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이들 뇌격기들은 군함에 최대한 접근하여 200-300m 지점에 이르러서야 어뢰를 투하했다. 이들 어뢰가 명중하고 기습에 성공하였다는 무전을 일본 지휘관기가 송신할 때까지도 미국의 반격은 전혀 없었다. 소총 한발조차 발사되지 않은 것이다. 공격시작에서 불과 3,4분이 지날 동안 미국의 주력함군은 모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미국의 군함들이 뇌격기의 제물이 되고 있을 때 하와이에 있던 히컴 육군비행장, 카네오네 해군비행장을 비롯한 두 개의 공군기지가 일본 급강하폭격기와 전투기의 공습을 받고 있었다. 단 한 대의 반격기도 띄우지 못한 채 이들 항공기지는 차례로 불길에 휩싸이며 줄줄이 늘어선 미국의 전투기들은 일본 공격대의 절호의 목표가 되어 불길에 휩싸인다. 이 1차 공격대가 공격을 거의 끝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지상의 대공포대가 반격을 시작했다. 이제서야 진주만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이 1차 공격대는 그 대공포화에도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계속 공격을 가하고 2차 공격대가 발진했다는 무전을 받은 후에야 항공모함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1차 공격대의 손실은 전투기 3, 급강하폭격기 1, 뇌격기 5으로 미국에 비하여 아주 경미했다. 일본 기동부대의 기함 아까기에서는 일본기의 전과 보고와 함께 미국 하와이 방송의 미친 듯한 방송이 들어왔다.







- 연습이 아니다. 진짜 공습이다 - 라는 방송







일본 2차 공격대가 08:15분에 진주만 상공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전함 4척은 기라앉고 있었고, 3척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 2차 공격대는 유일하게 상처를 입지 않은 전함 캘리포니아에 쇄도했다. 또한 다른 편대는 육상의 항공기지들을 다시 습격하여 반격을 위해 날아 오를 준비를 하던 미국 항공기들에게 다시 한번 공격을 퍼부었다. 이 폭격대는 이미 날아올라 대기하던 미 육군 전투기 P-40 2대의 반격을 받아 수대의 급강하폭격기가 격추된다. 그러나 이 용감한 미 육군 전투기대는 곧바로 달려온 일본 제로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여 모두 격추된다. 일본 제로전투기가 처음으로 그 뛰어난 성능을 보인 것이다. 이 2차 공격대가 돌아설 무렵에는 이미 진주만에 목표다운 목표는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대공포화와 미국 전투기들의 반격으로 전투기 6, 급강하폭격기 14기를 잃었다. 이들 2차 공격부대의 수용을 마친 일본 기동부대는 침로를 북북서로 돌려 하와이와 미드웨이에서 날아올 미국 폭격기들의 공격권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위에서 언급한 일본 특수잠함정은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한 채 모두 격침되었다. 한대는 소해정의 폭뢰공격으로 인해, 2대는 구축함의 공격으로, 또 한 대는 경순양함의 공격으로 격침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한 대는 도망쳤지만 해류에 밀려 야프 섬 해안에 올라앉고 말았다. 기절해 있던 함장 사께마끼 소위는 태평양전쟁 포로 제1호가 된다.







8일 오후 1시 일본 해군부의 전과 발표가 있었다. * ( )안의 숫자는 미군측 발표



전과



격침 - 전함 5척, 급유선 1척



대파 - 전함 3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2척



중파 - 전함 1척, 경순양함 4(1)척



항공기 - 464(352)기 이상



격납고 - 8동 파괴







피해



항공기 29기



특수잠함정 5척







이렇듯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 기습은 일본의 선전포고 이전에 이루어짐으로써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는 미국의 적개심을 자극하여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소극적인 대처에서 적극적인 대처로 바꾸게 된다. 그리하여 겨우 반년 뒤 미국의 대 반격은 시작되는 것이다.









▣ 김재이 - 많은 공부를 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郡/김태영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태영/문 - 대부님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평양전쟁은 태평양 군도의 비행장 건설을 불도저로 하는 미국과 삽으로 하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이미 전쟁의 승패가 여기에서 갈렸다는 일화가 있더라구요.

▣ 김태서 - 대부님 감사합니다.

▣ 김항용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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