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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김시민 장군 06 (판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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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12-05 01:25 조회1,5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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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김시민 장군 06 (판관, 목사)





<야후 홈페이지>



●판관 判官

신라 ·고려 및 조선시대의 관직.



조선시대에는 종5품 관직으로 중앙 및 지방에 두었다.

중앙 관서에는 돈령부(敦寧府) ·한성부(漢城府) ·수원부(水原府) ·광주부(廣州府) ·상서원(尙瑞院) ·봉상시(奉常寺)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상의원(尙衣院) ·사복시(司僕寺) ·♠군기시(軍器寺) ·군자감(軍資監) ·관상감(觀象監) ·전의감(典醫監) ·사역원(司譯院) ·선공감(繕工監) ·제용감(濟用監) ·전생서(典牲署)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훈련원 등에 두었다.

지방 관서에는 초기 각 도와 도호부에 판관을 두었으나, 뒤에 이를 폐지하고 경기도에 수운판관(水運判官), 충청 ·전라도에 해운판관을 두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경기 ·평안도를 제외한 ♠각 도 및 수원(水原) ·강화(江華) ·광주(廣州) ·춘천(春川) 등의 유수영(留守營)과 제주(濟州) ·경성(鏡城) ·청주(淸州) 등 ♠특정지역에 판관을 두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훈련원 訓鍊院

조선시대에 병사의 무재(武才)시험, 무예의 연습, 병서(兵書)의 강습을 맡아보던 관청.



1392년 조선의 개국과 더불어 서울 동대문운동장 부근의 명철방(明哲坊)에 설치하여, 처음에는 훈련관(訓鍊觀)이라 하다가 1467년(세조 13) 훈련원으로 개칭하였다.



창설 당시에는 사(使) 1명, 군자좨주(軍諮祭酒) ·사마(司馬) 각 2명, 참군(參軍) 4명, 녹사(錄事) 6명 등의 관원을 두었는데, 《경국대전》에는 지사(知事:정2품) 1명, 도정(都正:정3품) 2명, 정(正:정3품) 1명, 부정(副正:종3품) ·첨정(僉正:종4품) ·★판관(判官: ?종4품) ·주부(主簿:종6품) ·참군(參軍:정7품) ·봉사(奉事:종8품) 각 2명과 서원(書員) 3명, 고직(庫直) 1명, 사령(使令) 6명, 방직(房直) 1명, 군사(軍士) 7명, 종각직(鐘閣直) 1명, 타종군(打鐘軍) 3명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습독관(習讀官) 30명을 두어 《병요(兵要)》 《무경칠서(武經七書)》 《통감(通鑑)》 《장감(將鑑)》 《박의(博議)》 《진법(陣法)》 《병장설(兵將說)》을 습독하고, 활과 말타는 법을 연습하게 하였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지되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군기시 軍器寺

고려·조선 시대에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



고려 목종 때 설치된 군기감(軍器監)을 1362년(공민왕 11) 군기시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1392년(태조 1) 군기감을 설치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군기시로 개칭하였다.



관원에는 의정(議政)이 맡는 도제조(都提調) 1명, 병조판서 또는 병조참판 중에서 1명, 무장(武將) 중에서 1명을 선발하여 2명의 제조(提調)를 두고, 그 밑에 정(正:정3품)·부정(副正:종3품)·첨정(僉正) 각 1명, 별좌(정·종5품)·★판관(종5품)·별제(別提:정·종6품)·주부(主簿:종6품) 각 2명, 직장(直長:종7품) 1명, 공제(工製:종7품) 5명, 봉사(奉事:종8품) 1명, 공조(工造:종8품) 2명, 부봉사(副奉事:정9품)·참봉(參奉:종9품) 각 1명, 공작(工作:종9품) 2명을 두었다.



또 《경국대전》에 따르면 여기에 칠장(漆匠) 12명, 마조장(磨造匠) 12명, 궁현장(弓弦匠) 6명, 유칠장(油漆匠) 2명, 주장(鑄匠) 20명, 생피장(生皮匠) 4명, 갑장(甲匠) 35명, 궁인(弓人) 90명, 시인(矢人) 150명, 쟁장(錚匠) 11명, 목장(木匠) 4명, 야장(冶匠) 130명, 연장(鍊匠) 160명, 아교장(阿膠匠) 2명, 고장(鼓匠) 4명, 연사장(鍊絲匠) 2명 등 모두 644명의 공장(工匠)이 딸려 병기제조에 종사하였다.



부속 시설로는 야로소(冶爐所)·조갑소(造甲所)·대고(臺庫)·제조고(提調庫)·장인거소(匠人居所)·화약감조청(火藥監造廳)·궁전소(弓箭所) 등을 짓고, 많은 화약·각궁(角弓)·화포(火砲)를 제조하였다. 1884년(고종 21)에 폐지되고, 그 소관사무는 기기국(機器局)으로 옮겼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목사 牧使

고려 중엽 이후와 조선시대 관찰사 밑에서 목(牧)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外職) 문관.



목은 큰 도(道)와 중요한 곳에 두었는데, 왕실과 관계가 있는 지방은 작더라도 목으로 승격시켰다. 목사는 신라 때의 군주(軍主)와 그 직위가 같으며, 보통 병권(兵權)을 가졌다. 고려 때는 전국 12목에 목사를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3명, 충청도에 4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4명, 황해도에 2명, 강원도에 1명, 함경도에 1명, 평안도에 2명 등 모두 20명의 목사를 두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태영/문 - 감사합니다.

▣ 김영윤 -

▣ 김윤만 - 잘 배웠습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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