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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자의 시각에서 본 성씨의유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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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미 작성일02-12-30 03:35 조회2,3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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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학자의 시각에서 본 <성씨의 유래에 관한 글>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글이 길어 나누어서 올립니다.

 

조선성씨유래

조희승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실장. 박사.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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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성은 언제부터 쓰이였는가

본에 대하여

저성,희성,벽성,복성

  김(金)씨에 대하여
  고(高),량(良),부(夫)에 대하여
  문(文)씨에 대하여
  왕(王)씨에 대하여
  박(朴)씨에 대하여
  조(曺)씨에 대하여
  서(徐)씨에 대하여
  최(崔)씨에 대하여
  강(姜)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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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성은 언제부터 쓰이였는가

 우리 나라에서 이름앞에 붙이는 성은 같은 족속,같은 혈통을 나타내는것으로서 《씨》 혹은 《가》라고도 한다.

 례를 들어 《김》성을 부를 때 《김씨》,《김가》라고 한다.

 조선사람의 성은 특별한 경우를 내놓고는 언제나 사람에게 붙어다닌다.

 실례로 녀자가 시집을 가도 자기의 성을 그대로 쓰며 남자가 양자로 가도 대다수의 경우 같은 혈통에 가거나 다른 혈통으로 가는 경우(매우 드물지만)에도 자기의 성을 그대로 쓰는것이 상례로 되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의 성은 자기가 사는 집(가문)에 따라 달라진다.

 실례로 같은 친형제일지라도 동생이 외켠에 양자로 가면 그의 성이 달라진다.

 오래전에 일본수상을 지낸 기시 노브수께(岸信介)와 사또 에이사꾸(佐藤榮作)는 야마구찌현출신의 친형제이지만 동생이 양자로 갔기때문에 자기 성을 버리고 사또를 칭하였다.

 일본에서는 녀자들도 시집을 가면 자기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른다.

 우의 사실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조상대대로 성을 써오는 풍습은 나라마다,민족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은 고대로부터 쓰이였을것으로 보아진다.

 그것은 나라를 세우고 대를 이어 계승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기둥인 임금과 그를 이어나가는 계승자가 있어야 했기때문이다.

 나라를 계승하는 태자는 임금의 아들이라는 징표가 있어야 했다.왕자임을 보여주는 표징은 많다.호신부,칼,구슬 등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가운데서 가장 명백하고 만사람이 인정하는것이 바로 임금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성이였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형성유지되던 우리 나라 첫시기의 국가에서 성은 자못 중요하였다.

 우리 나라의 첫 국가는 단군조선(檀君朝鮮) 즉 고조선이다.바로 고조선때부터 왕족을 비롯한 특권귀족들은 성을 가지고있은것으로 보아진다.

 옛자료에는 고조선에 왕수긍(王受兢)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며 또한 배(裵)씨는 단군때 사람이 조선의 남쪽에 내려가서 퍼진것이라고 기록되여있다.

 그리고 고조선의 왕족들이 남으로 내려가서 한(韓)씨가 되였다는 전설도 있다.그밖에 단군이 수여하였다는 사성(賜姓)전설도 많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 나라에서 일찍부터 성을 쓰기 시작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옛날책들을 보면 삼국시기에는 주로 출신지방(부락 또는 고을)이름을 사람이름앞에 붙여서 피줄 또는 지역적인 소속을 밝히였다.그 대표적인 실례가 백제왕실의 성인 《부여》이다.백제왕실은 고구려왕실에서 갈라져나왔는데 두 왕실의 출신지방은 부여였다.

 한편 삼국시기부터 한자 성(한식성)을 쓰게 되였는데 처음에는 왕실이나 귀족들이 간혹 쓴것 같다.

 기원전 277년에 우리 나라의 첫 봉건국가인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성왕)의 성은 《고》가였다.이밖에 고구려에는 우성(큰 성)으로서 장,양,왕,두,오,리 등이 있었다.

 백제에는 왕실의 성인 《부여》외에 사,연,협,해,진,국,목,백 등 8개의 큰 성이 있었으며 신라에는 왕실의 성들인 박,석,김을 비롯하여 리,손,정,배,설,남,안,최 등 여러 성이 있었다.

 삼국시기에 왕실이나 귀족들가운데는 한자 성이 점차 보급되여갔으나 일반 인민들의 대부분은 성을 못가지였다.

 옛날책에 《신라에서는 왕실의 성은 김가이며 귀족의 성은 박가이다.백성들의 성은 없고 이름만 있다.》라고 하였는데 비단 신라뿐아니라 고구려,백제에서도 백성들은 성이 없었다고 인정된다.

 잘 알려진 고구려의 창조리,밀우와 뉴유,온달,백제의 계백,도미,신라의 관창,솔거 등은 어느것이 성이고 이름인지 잘 알수 없게 되여있다.

 우리 나라에서 한자 성을 널리 쓰기 시작한것은 후기신라의 귀족들이였다.그후 고려,리조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자성이 널리 보급되여갔으나 일반백성들의 경우에는 리조말기까지도 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조선성가운데서 어느 성이 제일 많은가 하는것도 알 필요가 있다.

 1930년에 조선의 8도강산을 조사장악한데 의하면 사람수가 제일 많은것이 김씨였다.

 물론 같은 성씨의 사람이 많고 적은것은 매 시기마다 같을수가 없다.그러나 김씨는 대체로 예로부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있다.

 김(金)씨 다음으로 많은 성은 리(李)씨,박(朴)씨,최(崔)씨,정(鄭)씨,조(趙)씨,강(姜)씨,장(張)씨,한(韓)씨,윤(尹)씨,오(吳)씨,림(林)씨,신(申)씨,안(安)씨 등의 순서이다.

 

본에 대하여

 《본》은 같은 《성》안에서 시조가 다른 갈래를 고을이름(또는 고을의 딴 이름)으로 나타낸것이다.이것을 《본관》 또는 《향관》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 봉건시대 초기에 귀족들과 량인이상 신분층은 본을 가지고 자기 가문의 갈래와 《귀천》을 밝히였으며 한자 성(한식성)이 점차 보급됨에 따라 이름앞에 붙이던 출신지방이름(말하자면 원래의 성)은 본으로 되여버린것으로 인정된다.

 본은 성앞에 붙여 김해김가,전주리가,밀양박가 등으로 부른다.

 본가운데는 고을이름과 함께 그 고을의 딴이름(별칭)과 지금은 없는 고을이름 또는 그 고을이름에서 딴 이름으로 된것도 적지 않다.그중 몇개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지금 있는 고을의 이름과 그 딴이름

 김가-안동,영양(안동의 별칭)
 리가-량산,량주(량산의 별칭)
 최가-해주,대령과 고죽(모두 해주의 별칭)
 신가-창주(창성의 별칭)

 ○ 지금 없는 고을의 이름과 그 고을이름에서 딴이름

 박가-반남과 압해(모두 오늘의 라주군안에 있던 고을)
 류가-문화(신천군안에 있던 고을)
 한가-가주(정주군안에 있던 가산고을의 별칭)

 리조시기 본이 가장 많은것은 김가(499개),리가(451개),최가(326개),박가(309개),장가(245개),림가(216개),조가(200개) 등이였다.그러나 대개는 본이 10개 정도이며 110여개의 성은 본이 하나이고 본이 없거나 명확치 않은것도 많다.

 리조후기에 와서 같은 본에 속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자 같은 본가운데서도 서로 족속과 《귀천》을 가르려는 경향이 짙어졌다.그리하여 같은 본안에서도 그 문벌이 누구의 자손인가를 따지게 되였다.

 봉건시대에 량반지배계급은 가족주의와 문벌주의,지방주의를 부식하고 저들과 량인,《천민》과의 신분적차별을 엄격히 함으로써 저들이 대대로 높은 벼슬을 독차지하려는 정치적목적으로부터 본을 따지는 풍습을 집요하게 지켜왔다.그리하여 극소수의 특권문벌들이 봉건정부의 중요한 벼슬자리를 독차지하고 온갖 전횡을 다하였다.특히 리조말기에 안동김가,풍양조가 등이 세도정치를 하였으며 그후에는 고종왕의 처 민비의 족속인 려흥민가가 독판치면서 나라를 외적들의 침략에 내여맡기였다.

 한편 일반인민들속에서도 본을 중심으로 하는 혈통관념이 강하였다.

 성과 본이 같은(이것을 동성동본이라고 한다.) 대수관계(항렬)를 따져서 형제사이 또는 아저씨와 조카사이로 교제하였다.즉 먼저 같은 조상의 몇대 손자인가를 따지고 대수가 같으면 (례를 들어 다같이 어떤 사람의 4대손이면) 나이를 따져서 나이많은 사람이 형으로,적은 사람이 아우로서 사귀였고 대수가 하나 차이나면 대수가 적은 사람(례: 3대손 즉 증손)이 아저씨로,많은 사람(례: 4대손 즉 현손)이 조카로서 사귀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동성동본인 경우는 절대로 혼인을 맺지 않으며 다른 성,다른 본에 양자를 보내지 않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있다.

 물론 특수한 경우가 있다.

 안동권씨(安東權氏)는 본래 경주김씨에서 갈라져나왔는데 특별히 권씨를 수여받아 안동을 본으로 삼았다.결국 경주김씨와는 동성동본이 아니지만 관습상 같은것으로 보고 서로 양자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한편 강원도 강릉김씨와 전라도 광주김씨는 본이 다르고 시조가 다르다.그런데 이들의 족보에 다같이 신라의 김알지(金閼智)에서 갈라져나왔다고 되여있으므로 혼인을 피하기도 한다.

 오늘 사회생활에서 본의 의의는 별로 없다.그러나 동성동본끼리 결혼하지 않는 풍습은 대체로 지켜지고있다.

 

저성,희성,벽성,복성

 저성(著姓)이란 두드러지게 많은 성을 의미하고 희성(稀姓)이란 말그대로 드문 성이라는 뜻이며 벽성은 매우 드문 성을 말한다.

 그리고 복성은 두 글자로 된 성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성에는 한자식성이 있고 또 고유한 우리 말 성도 있다.그러나 대부분이 한자식성이 굳어져 보편화되였다.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성의 압도적다수는 한자식성이다.

 예로부터 농사를 짓는 사람을 백성(百姓)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백가지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의미로 붙인것이였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성은 수백개를 헤아린다.조상의 족보를 밝힌 유명한 책을 《만성책보》(萬姓冊譜)라고 한것을 보아도 성이 대단히 많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의 많고적음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피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음은 이미 앞에서 서술하였다.

 노비,백정 등은 성이 없었고 지배계급에 속하지만 중도 성이 없었다.고명한 중인 경우 죽어서 비석을 세울 때 속세(俗世)의 성은 무엇이였다고 밝히는것은 그들이 불문(佛門)에 들어가면서 성을 버렸기때문이다.중은 자식을 낳지 않으니까(실지로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혈통을 밝히는 성이 있어 무엇하랴는것이다.

  물론 노비,백정에게도 더러 성이 있었다.고려시기의 관노비였던 백선연(白善淵),노비였던 리정(李貞) 등이 바로 그렇다.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특별한 경우였다고 말할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성은 사람에게 붙어서 가문,혈통을 밝히기때문에 역시 귀족들이 성을 제일 많이 가지고있었다.

 이러한것을 념두에 두면서 저성(著姓)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리조 숙종(肅宗 1675∼1720년)때 사람인 리의현(李宜顯)이 쓴 책 《도곡총설》(陶谷叢說)에 밝혀진 저성은 다음과 같다.

 ○ 저성 12성

 리(李),김(金),박(朴),정(鄭),윤(尹),최(崔),류(柳),홍(洪),신(申),권(權),조(趙),한(韓)

 ○ 저성에 이어지는 16성

 오(吳),강(姜),심(沈),안(安),허(許),장(張),민(閔),임(任),남(南),서(徐),구(具),성(成),송(宋),유(兪),원(元),황(黃)

 ○ 다음으로 많은 성 25성

 조(曺),림(林),려(呂),량(梁),우(禹),라(羅),손(孫),로(盧),어(魚),목(睦),채(蔡),신(辛),정(丁),배(裵),맹(孟),곽(郭),변(卞),변(邊),신(愼),경(慶),백(白),전(全),강(康),엄(嚴),고(高)

 이상 53성이 우리 나라에서 흔한 성들 즉 저성이다.

 다음으로 희성(稀姓)을 보자.

 ○ 희성 41성

 전(田),현(玄),문(文),상(尙),하(河),소(蘇),지(池),기(奇),진(陳),유(庾),금(琴),길(吉),연(延),주(朱),주(周),렴(廉),방(房),방(方),반(潘),공(孔),왕(王),설(楔),류(劉),진(秦),탁(卓),함(咸),양(楊),설(薛),봉(奉),태(太),마(馬),표(表),은(殷),여(余),복(卜),예(芮),모(牟),로(魯),옥(玉),구(丘),선(宣)

 ○ 그다음에 이어지는 희성 19성

 도(都),장(蔣),륙(陸),위(魏),차(車),형(邢),위(韋),당(唐),구(仇),옹(邕),명(明),장(莊),엽(葉),피(皮),감(甘),국(鞠),승(承),공(公),석(石)

 ○ 벽성(빭맗) 38성

 인(印),석(昔),공(●{龍밑에 共}),두(杜),지(智),견(●{(西밑에土)+우부방}),어(於),진(晋),오(伍),척(拓),야(夜),빈(賓),문(門),우(于),추(秋),환(桓),호(胡),쌍(雙),이(伊),영(榮),사(思),소(邵),공(貢),사(史),이(異),도(陶),방(龐),온(溫),은(隱),룡(龍),제(諸),부(夫),경(景),강(强),호(扈),전(錢),계(桂),간(簡)

 ○ 벽성에 이어지는 134성

 단(段),팽(彭),범(范),천(千),편(片),갈(葛),돈(頓),내(乃),간(間),로(路),평(平),풍(馮),옹(翁),동(童),종(鍾),풍(●{豊+우부방}),종(宗),강(江),몽(蒙),동(董),양(陽),양(揚),장(章),상(桑),장(●{초두 밑에長}),정(程),형(荊),경(耿),경(敬),경(京),순(筍),정(井),원(原),원(袁),만(萬),반(班),원(員),견(堅),건(騫),연(燕),시(時),전(傳),구(瞿),해(●{(禾+尤)밑에山 }),미(米),애(艾),매(梅),뢰(雷),시(柴),섭(●{耳밑에(耳+耳)}),포(包),하(何),화(和),하(賀),화(花),화(華),고(賈),하(夏),마(麻),우(牛),승(僧),후(侯),곡(曲),백(栢),책(●{羽밑에 새추}),필(畢),곡(谷),궁(弓),종(種),방(邦),량(●{삼수변+京}),량(良),방(芳),경(卿),형(刑),영(永),승(乘),등(登),승(昇),승(勝),신(信),순(順),준(俊),번(藩),단(端),선(鮮),천(●{초두 밑에千}),아(牙),수(水),미(彌),오(吾),수(珠),부(斧),보(甫),부(部),소(素),부(附),범(凡),고(固),대(台),재(才),대(對),표(標),초(肖),나(那),과(瓜),화(化),수(壽),우(祐),가(價),심(尋),삼(森),점(占),범(汎),극(克),욱(郁),익(翌),택(宅),직(直),택(澤),연(緣),혁(赫),책(冊),탁(濯),골(骨),촉(燭),률(律),물(物),별(別),실(實),필(弼),합(合),먀(●),궉(●)

 ○ 복성(複姓) 11성

 남궁(南宮),황보(皇甫),선우(鮮于),석말(石抹),부여(夫餘),독고(獨孤),령고(令●{재방변+瓜}),동방(東方),서문(西門),사마(司馬),사공(司空)

 이상 대략 300성이 조선의 주요성이다.

 이밖에도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국(國)씨,묵(墨)씨,직(直)씨,직(稷)씨,십(什)씨,엽(葉)씨,업(業)씨,왈(曰)씨,발(發)씨,설(雪)씨,철(哲)씨,학(鶴)씨,석(釋)씨,학(學)씨,후(后)씨,정(正)씨,좌(佐)씨,호(號)씨 등이 있어 그야말로 만가지 성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때의 중실(仲室)씨,을지(乙支)씨,백제의 조미(祖彌)씨,부여(夫餘)씨 등 여러 희성들이 2천년 력사를 가지고 면면히 이어졌다.

 리조 정조(正祖.1777∼1800년)때의 사람인 리덕무가 남긴 《앙엽기》(●{央밑에皿}葉記)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성은 모두 455성이다. 현재까지 찾은 성은 좀더 많아서 496개이다.

 이렇게 많은 성가운데서 본관수가 많은것은 김씨,리씨,최씨,박씨 등 저성이고 본관수가 10개이하의 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그리고 본관이 명백치 않은 성도 140성가량 된다.

 

                                                      ---  2편에 계속  ---




▣ 김항용 -
▣ 솔내 - 정보미씨 반갑습니다.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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