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점할아버지 이야기(7)<사계 김장생. 청음 김상헌 문중과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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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1-03 03:33 조회1,644회 댓글0건본문
자점할아버지 이야기(7)<사계 김장생. 청음 김상헌 문중과의 악연>
【‘소현세자의 급서’, ‘강빈의 옥’ 사건에 효명옹주의 어머니 조귀인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그리고 ‘강빈의 옥’은 사계문인의 반발을 불러왔다.
인조 24년(1646)의 정국은 강빈 옥사를 둘러싼 처리를 놓고 인조를 지지하는 김자점
등 공신세력과 사계문인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인조는 강빈 옥사로 야기된 정국 경색
을 타개하기 위해서 김상헌을 좌의정으로 기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상헌은 김류·
김자점이 인조의 신임을 받고 친청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여 좌의정
취임을 거부하였다.(주1)
--송시열 또한 소현세자 사망 직후에 정국이 혼미해지자 김상헌을 방문하여 시국 전
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시열이 김상헌을 방문한 것은 사계문인이라는 학연
에서 뿐아니라, 春秋大義(춘추대의)의 宗主(종주)인 김상헌이 숭명반청의식이 확대되
어 가는 상황에서 유력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다 더 의식한 행
동이었다. <송시열/송자대전 부록2, 연보 18년 5월조>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의 주역 조귀인과 강빈을 둘러싼 친.인척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조귀인의 친.인척으로는 자점 할아버지 가계가 있고, 강빈의 친.인
척으로는 효종과 사계 김장생. 청음 김상헌 가계가 있다. 이처럼 가문간의 갈등 관계
가 5년후인 1651년 ‘조귀인 저주사건’이 ‘김자점 역모사건’으로 변질 확대되는 과정에
작용을 하였다고 하면 무리한 추론일까? 소위 ‘김자점 역모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인조 24년 정국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동일한 인물들로서 서로 입장만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서평부원군 한준겸(한준겸,
1557~1627)의 딸인 인열왕후(1594~1635)이다. 효종의 형이다. 부인은 姜碩期(강석기,
1580~1643)의 딸인 愍懷嬪(민회빈 : 姜嬪<강빈>이라고도 함) 금천 강씨(1611~1646)
이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姜嬪(강빈)의 아버지는 우의정 문정공 姜碩期(강석기,
1580~1643)이며, 어머니는 申湜(신식, 1551~1623)의 딸인 고령 신씨이다.
--인조 23년(1645) 2월 18일 귀국한 소현세자는 68일 만인 4월 23일 병석에 눕게 되
고 4일 만인 4월 26일 34세로 창경궁 환경당에서 급서하였다. 일설에는 소현세자가
의관 이형익에 의해 독살되었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주2)
이형익은 조소용의 외가와 관련된 인물로 3개월전에 특채된 의관이었다.(주3)
--인조의 幸姬(행희) 趙昭容(조소용)은 전일부터 세자 및 세자빈과 본디 서로 좋지
않던 터라, 밤낮으로 인조 앞에서 참소하여 세자 내외에게 죄악을 얽어 만들어서, 저
주를 했다느니 대역부도의 행위를 했다느니 하는 말로 빈궁을 무함하였다. 사람들은
강씨에게 화가 미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인조 24년(1646) 1월 3일 인조가 먹는 전복구이에 독이 있자 강빈을 의심하여 그
궁인과 어주 나인들이 심문을 받았고, 2월 29일 남형제들인 姜文星(강문성)과 姜文明
(강문명)이 곤장을 맞다 죽고, 3월 15일 강빈은 36세로 사사되었다. 그러나 인조가
궁중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하였기 때문에 兩宮
(양궁)의 왕래가 끊겼으므로 御膳(어선)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인조가 이와 같이 생각하므로 사람들이 다 조씨가 모함한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소현세자빈 강씨는 성격이 거셌는데, 끝내 불순한 행실로 상의 뜻을 거슬려 오다
가 드디어 사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죄악이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단
지 추측만을 가지고 법을 집행하였기 때문에 안팍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고 모두 조
숙의에게 죄를 돌렸다.
--인조 25년(1647) 4월 25일 소현세자빈 강씨 관련 궐내 저주사건이 발각되자 유배
지에 있던 강석기의 두 아들 姜文斗(강문두)와 姜文璧(강문벽)이 잡혀와 형장을 맞다
가 죽었다. 이어 5월 13일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강빈의 옥’이라 하는데, 앞서 죽은 강석기는 관작을 추삭당하였고, 그의
부인은 처형되었으며, 아들 4형제는 장살 당하였다. 따라서 그의 집안은 역적의 집안
으로 멸문의 화를 당했다가 숙종 때 復官(복관)되었다.
--관행대로 소현세자를 치료한 이형익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형익에
대한 인책문제는 김상헌의 조카인 大司憲(대사헌) 金光鉉(김광현)이 제기하였다. 그
러나 인조는 김광현이 사돈 집안의 사주를 받고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여 김
광현을 미워하였다.(주4) 거기에다가 김광현이 김상헌의 조카라는 사실 때문에 반청
론자들도 미워하게 되었다.(주5)
--강석기의 생모는 광산부원군 김국광(김국광 : 1415~1480)의 후손으로 沙溪 金長生
(사계 김장생 : 1548~1631)과는 4촌 남매간이며, 강석기 또한 외당숙 김장생의 제자
이다. 강석기의 아들 강문명은 대사헌 김광현의 사위로 김광현은 김상용의 아들이며,
김상헌의 조카이다. 또한 효종비인 인선왕후의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1587~1638)이
며,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1532~1637)의 딸이다.
주(1) : 인조실록 권47, 24년 2월 기축조.
주(2) : 김용덕씨도 소현세자의 독살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소현세자연구>
------사학연구》18, 사학연구회, 1964.
주(3) : 인조실록 권46, 23년 6월 27일.
(주4) : 소현세자의 처남인 姜文明(강문명)은 김광현의 사위이며, 강문명의 아버지는
------姜碩基(강석기)이다. 그런데 강석기는 김광현의 숙부 김상헌과 같은 김장생의
------문인으로서 기호 사림의 존경을 받고 있던 인사였다. 인조는 김광현이 상소를
------한 근본적인 의도가 자신의 친인척을 비호하려는 의도에 있었다고 보고 김광
------현을 미워하였다.(인조실록 권46, 인조 23년 6월 신사조.) 이에 광현은 두려워
------하여 순천부사로 가기를 청하였는데, 근심으로 죽었다. 한편 광현은 효종의
------처 외삼촌이기도 하다.
(주5) : 인조실록 권46, 23년 윤 6월 신사조.
<출전 및 참고서적 : 1.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2. 인조·효종대정치사연구/이기순/국학자료원/1998>
▣ 김주회 - 윤만 형님!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연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김태서 - 연일 계속되는 연재 복사 하여 보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셨습니까?
▣ 솔내 - 계속되는 연재에 속속 의문이 풀리면서도 또다를 의문의 연속입니다. 기대됩니다. 새해에 만사형통하시기 기원합니다.
【‘소현세자의 급서’, ‘강빈의 옥’ 사건에 효명옹주의 어머니 조귀인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여진다. 그리고 ‘강빈의 옥’은 사계문인의 반발을 불러왔다.
인조 24년(1646)의 정국은 강빈 옥사를 둘러싼 처리를 놓고 인조를 지지하는 김자점
등 공신세력과 사계문인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인조는 강빈 옥사로 야기된 정국 경색
을 타개하기 위해서 김상헌을 좌의정으로 기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상헌은 김류·
김자점이 인조의 신임을 받고 친청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여 좌의정
취임을 거부하였다.(주1)
--송시열 또한 소현세자 사망 직후에 정국이 혼미해지자 김상헌을 방문하여 시국 전
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시열이 김상헌을 방문한 것은 사계문인이라는 학연
에서 뿐아니라, 春秋大義(춘추대의)의 宗主(종주)인 김상헌이 숭명반청의식이 확대되
어 가는 상황에서 유력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다 더 의식한 행
동이었다. <송시열/송자대전 부록2, 연보 18년 5월조>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의 주역 조귀인과 강빈을 둘러싼 친.인척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조귀인의 친.인척으로는 자점 할아버지 가계가 있고, 강빈의 친.인
척으로는 효종과 사계 김장생. 청음 김상헌 가계가 있다. 이처럼 가문간의 갈등 관계
가 5년후인 1651년 ‘조귀인 저주사건’이 ‘김자점 역모사건’으로 변질 확대되는 과정에
작용을 하였다고 하면 무리한 추론일까? 소위 ‘김자점 역모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인조 24년 정국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동일한 인물들로서 서로 입장만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서평부원군 한준겸(한준겸,
1557~1627)의 딸인 인열왕후(1594~1635)이다. 효종의 형이다. 부인은 姜碩期(강석기,
1580~1643)의 딸인 愍懷嬪(민회빈 : 姜嬪<강빈>이라고도 함) 금천 강씨(1611~1646)
이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姜嬪(강빈)의 아버지는 우의정 문정공 姜碩期(강석기,
1580~1643)이며, 어머니는 申湜(신식, 1551~1623)의 딸인 고령 신씨이다.
--인조 23년(1645) 2월 18일 귀국한 소현세자는 68일 만인 4월 23일 병석에 눕게 되
고 4일 만인 4월 26일 34세로 창경궁 환경당에서 급서하였다. 일설에는 소현세자가
의관 이형익에 의해 독살되었다고도 하는데 이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주2)
이형익은 조소용의 외가와 관련된 인물로 3개월전에 특채된 의관이었다.(주3)
--인조의 幸姬(행희) 趙昭容(조소용)은 전일부터 세자 및 세자빈과 본디 서로 좋지
않던 터라, 밤낮으로 인조 앞에서 참소하여 세자 내외에게 죄악을 얽어 만들어서, 저
주를 했다느니 대역부도의 행위를 했다느니 하는 말로 빈궁을 무함하였다. 사람들은
강씨에게 화가 미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인조 24년(1646) 1월 3일 인조가 먹는 전복구이에 독이 있자 강빈을 의심하여 그
궁인과 어주 나인들이 심문을 받았고, 2월 29일 남형제들인 姜文星(강문성)과 姜文明
(강문명)이 곤장을 맞다 죽고, 3월 15일 강빈은 36세로 사사되었다. 그러나 인조가
궁중 사람들에게 “감히 강씨와 말하는 자는 죄를 주겠다.”고 경계하였기 때문에 兩宮
(양궁)의 왕래가 끊겼으므로 御膳(어선)에 독을 넣는 것은 형세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인조가 이와 같이 생각하므로 사람들이 다 조씨가 모함한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소현세자빈 강씨는 성격이 거셌는데, 끝내 불순한 행실로 상의 뜻을 거슬려 오다
가 드디어 사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죄악이 아직 밝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단
지 추측만을 가지고 법을 집행하였기 때문에 안팍의 민심이 수긍하지 않고 모두 조
숙의에게 죄를 돌렸다.
--인조 25년(1647) 4월 25일 소현세자빈 강씨 관련 궐내 저주사건이 발각되자 유배
지에 있던 강석기의 두 아들 姜文斗(강문두)와 姜文璧(강문벽)이 잡혀와 형장을 맞다
가 죽었다. 이어 5월 13일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강빈의 옥’이라 하는데, 앞서 죽은 강석기는 관작을 추삭당하였고, 그의
부인은 처형되었으며, 아들 4형제는 장살 당하였다. 따라서 그의 집안은 역적의 집안
으로 멸문의 화를 당했다가 숙종 때 復官(복관)되었다.
--관행대로 소현세자를 치료한 이형익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형익에
대한 인책문제는 김상헌의 조카인 大司憲(대사헌) 金光鉉(김광현)이 제기하였다. 그
러나 인조는 김광현이 사돈 집안의 사주를 받고 이러한 주장을 했다고 생각하여 김
광현을 미워하였다.(주4) 거기에다가 김광현이 김상헌의 조카라는 사실 때문에 반청
론자들도 미워하게 되었다.(주5)
--강석기의 생모는 광산부원군 김국광(김국광 : 1415~1480)의 후손으로 沙溪 金長生
(사계 김장생 : 1548~1631)과는 4촌 남매간이며, 강석기 또한 외당숙 김장생의 제자
이다. 강석기의 아들 강문명은 대사헌 김광현의 사위로 김광현은 김상용의 아들이며,
김상헌의 조카이다. 또한 효종비인 인선왕후의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1587~1638)이
며,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1532~1637)의 딸이다.
주(1) : 인조실록 권47, 24년 2월 기축조.
주(2) : 김용덕씨도 소현세자의 독살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소현세자연구>
------사학연구》18, 사학연구회, 1964.
주(3) : 인조실록 권46, 23년 6월 27일.
(주4) : 소현세자의 처남인 姜文明(강문명)은 김광현의 사위이며, 강문명의 아버지는
------姜碩基(강석기)이다. 그런데 강석기는 김광현의 숙부 김상헌과 같은 김장생의
------문인으로서 기호 사림의 존경을 받고 있던 인사였다. 인조는 김광현이 상소를
------한 근본적인 의도가 자신의 친인척을 비호하려는 의도에 있었다고 보고 김광
------현을 미워하였다.(인조실록 권46, 인조 23년 6월 신사조.) 이에 광현은 두려워
------하여 순천부사로 가기를 청하였는데, 근심으로 죽었다. 한편 광현은 효종의
------처 외삼촌이기도 하다.
(주5) : 인조실록 권46, 23년 윤 6월 신사조.
<출전 및 참고서적 : 1. 인조대왕과 친인척/지두환/역사문화/2000,
-------------------2. 인조·효종대정치사연구/이기순/국학자료원/1998>
▣ 김주회 - 윤만 형님! 잘 읽었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연재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김태서 - 연일 계속되는 연재 복사 하여 보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재원 -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셨습니까?
▣ 솔내 - 계속되는 연재에 속속 의문이 풀리면서도 또다를 의문의 연속입니다. 기대됩니다. 새해에 만사형통하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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