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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증 교관공 김성추·효부 김해김씨(孝子 贈 敎官公 金成秋·金海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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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1-06 20:29 조회1,6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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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증교관공 김성추·효부 김해김씨(孝子 贈 敎官公 金成秋·金海金氏)

공은 문정공의 14대손으로 통정랑공 김계묵의 아들이고 김희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4살 때 숙부인 김계묵께서 부인 안동권씨를 남겨두고 17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자 숙부님의 양자로 들어갔다. 양모께서 18세의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삶의 보람을 어린 아들의 성장에서 찾으려고 행동하고 관심을 기울여 엄한 교육을 시켜서 의젓한 선비의 자질을 갖추도록 키웠다. 공께서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순하고 지혜가 있어 어머니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면서 가장으로써 도리를 닦아 성년이 되어서 현모양처의 자질을 갖춘 김해김씨를 배필로 맞아 들였다.
두 부부는 효심이 지극하여 홀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언행에 더욱 조심을 하면서 외롭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비록 가난했지만 나들이를 하고 오면 반드시 보고들은 사실을 일일이 고해 올렸고 좋아하시는 반찬과 과일을 계절따라 수시로 사다가 대접해 드리는 등 항시 마음을 편안하게 극진히 모셨으며, 부부 화합하여 열심히 일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공의 나이 37세때 첫아들 규찬을 얻게 되니 집안에 경사였다. 이듬해 공께서 우연히 병을 얻어 병석에 눕게 되자 부인이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여 지성을 다해서 간호를 해드렸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부인의 정성도 무심한채 세상을 떠나시니 고부의 대성 통곡하는 모습은 보는 이마다 슬프게 하였다 한다. 부인은 노시모님이 마음 상할까 슬픔을 억누르고 아들을 잃고 시름에 잠겨 있는 노시모님을 위해 좋아하시는 고기반찬 등을 제때에 식사를 하시도록 봉양해 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한편으로 어린 아들 양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써서 성장해서 아비없는 호로자식이란 악담을 듣지 않도록 자애로움에서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이러던 중 시모님께서 고령으로 바깥출입이 부자유스럽게 되자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고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수시로 갈아입히는 등 오히려 부군의 생전보다 더욱 극진히 모셨다. 이와 같은 두 부부의 효행을 본받아 후일에 아들부부 역시 큰효를 행하였다. 이러한 두분의 효행이 인근 향리에 알려져 출천의 효자효부라고 여러 사람들로 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이 널리 전해져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고종께서 이 부부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1905년(고종광무9년)에 효자효부의 정려문을 내리고 공께서 증 종사랑 중학교 교관 벼슬을 내려서 후세인의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익원공파 자료가 속속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 김윤식 -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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