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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공 김식(掌令公 金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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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3-01-11 20:58 조회1,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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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공 김식(掌令公 金湜)


   공의 호는 야은(野隱), 효소공 김작의 손자이며 통례원 찬의공 김맹함의 3남, 공은 1506(중종1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동생인 김엄(金淹), 김형(金炯)이 무과에 급제한지 2년후의 일로 6형

제중 세분이나 급제하는 영광된 일이다. 그후 여러 벼슬을 거처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 당시에 세도 간

신배들이 정사를 문란케 함으로 이들의 그릇됨을 왕에게 진소하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하

여 공주군 탄천면 송학리 학동으로 낙향하였다. 학동에서 은거하던 중 어느해 가을에 당숙인 문경공 만

보당 김수동에게서 전라감사 부임 행차길에 그곳을 찾아 다시 출사토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공은 묵묵

히 면화(綿花)대를 꺽어들고 낙향한 연유가 면화(免禍)에 있음을 밝히니 공의 굳은 의지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후 공의 5세손인 사과공 김이정 때에 부여읍 유촌 석탄

으로 이거한 이래 왕진(旺津)들을 터전삼아 수많은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고 있다. 학동 유

허지에는 유허비가 건립되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흰솜 꽃 면화(綿花)와 사화를 피한다는 면화(免禍)의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호가 석탄인 분이 한분 계신듯 한데. . . . .
▣ 김발용 -
▣ 김항용 - 면화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솔내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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