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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오은대관上 04 ---김영후3(복창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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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1-22 04:03 조회1,5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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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昌(복창)은 어디인가요?





정간공께서는 1352년에 복창부원군 이었습니다.



부원군이란 정1품 공신에게 준 작호라 하는데, 받는 사람의 본관(本貫)인 지명(地名)을 앞에 붙였으며, 같은 호칭이 여럿 생길 때에는 연고(緣故) 있는 지명 또는 다른 함자를 넣어 불렀다고 합니다.



정간공의 본관은 안동으로 상락, 영가, 화산, 복주 등으로 불리었다고 하는데, 백형이신 김영돈께서 상락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안동의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는 福昌부원군으로 봉해졌을 수도 있고, 또하나는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에 복창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혹시 이곳과 연고가 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려사》 제38권 - 세가 제38 > 공민왕 1 >

공민왕 임진 원년(1352)



기미일에 서연(書筵)을 열고 영천 부원군 이능간(李凌幹), 김해 부원군 이제현(李齊賢), 복창 부원군 ★김영후(金永煦), 한양 부원군 한종유(韓宗愈), 연안 부원군 인승단(印承旦), 전 첨의 정승 이군해, 정승으로 치사(致仕)한 손기(孫琦), 전 찬성사 허백(許伯)과 김자(金資), 안산군 안진(安震), 정천군 정을보(鄭乙輔), 영창군 김승택(金承澤), 영산군 장항(張沆), 낙 낭군 이천선(李遷善), 밀직부사 안목(安牧), 전리 판서 백문보(白文寶) 등이 날을 바꾸어 시독(侍讀)하게 하고,







부원군 府院君

조선시대 임금의 장인, 즉 국구(國舅) 또는 정1품 공신(功臣)에게 준 작호(爵號).



받는 사람의 본관(本貫)인 지명(地名)을 앞에 붙였으며, 같은 호칭이 여럿 생길 때에는 연고(緣故) 있는 지명 또는 다른 함자를 넣어 불렀다. 일반적으로 딸이 궁중에 들어와 정실 왕후가 되면, 왕비의 부친은 자동적으로 부원군이 되었다. 초기에는 국구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였으나, 중기 이후에는 정치에 참여하여 많은 폐단을 낳았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오등작제도 五等爵制度

고려의 봉작(封爵) 제도.



오등봉작제라고도 한다. 문종 때 중국의 제도를 들여와 국가의 공훈자에게 주기 위하여 두었던 훈작(勳爵)으로, 훈(勳)에는 상주국(上柱國:정2품) ·주국(柱國:종2품)의 2종류가 있고, 작(爵)에는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5등급으로 하였는데, 특히 공작(公爵)은 공후국공(公侯國公)과 군공(郡公)으로 구별하여 공후국공(정2품)에는 식읍(食邑) 3,000호(戶), 군공(종2품)에게는 2,000호, 현후(縣侯:후작)에게는 1,000호, 현백(縣伯:백작)에게는 700호, 개국자(開國子:자작)에게는 500호, 현남(縣男:남작)에게는 300호를 급봉(給封)하는 식읍제(食邑制)를 마련하여 이들을 봉건귀족(封建貴族)으로 우대하였다. 그러나 식읍의 급봉은 거의 형식에 불과하고, 거기에 따로 표시되는 ‘식실봉(食實封) 몇 호’라고 되어 있는 것이 실제로 받는 급봉이었다.



희종(熙宗) 때는 무신(武臣)인 공후국공 최충헌(崔忠獻)에 ‘식읍 3,000호, 식실봉 300호’를 주었다 하였는데, 식실봉 300호가 공작이 받는 실제 식읍지로서, 매호 3정(丁) 이상의 진호(眞戶:1호는 3명 이상이어야 진호로 쳤다)에서 징수되는 전조(田租)와 공부(貢賦)를 차지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전기에는 고려와 같이 공 ·후 ·백 등의 작호를 썼으나 1401년(태종 1) 명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이를 폐지하고 종친(宗親)의 공(公)을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후 ·백 등의 공신들을 부원군(府院君) ·군(君) 등으로 개봉(改封)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은 점촌, 지장, ★복창, 신창, 사거리, 원적봉 등 6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본래 서정이란 지명은 중앙동의 자연마을 명칭이지만, 1981년 송탄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서정 5. 6. 7. 8, 9리가 서정동으로 분리 별도의 행정동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최근 올리시는 오은대관 시리즈를 읽다 보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갑니다.

▣ 김윤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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