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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부원군의 졸기(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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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1-09-19 21:34 조회2,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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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089 09/02/24(정사) / 상락 부원군 김질의 졸기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 김질이 졸하였다. 철조하고 부의하였으며 조제와 예장을 규례대로 하였다.



김질의 자는 가안이고, 안동사람이며, 동지중추부사 김종숙의 아들이고 상락 부원군 김사형의 증손이다.



처음에 충의위에 속하였다. 부사직이 되었을 때에 참관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김질이 청하여



해직하고 학교에 갔는데, 참관이 학교에 가는 것은 김질로부터 시작되었다. 경태 경오년에 과거에 급제해



서 성균관 주부에 제배되고 병조 좌랑으로 옮겼다가 여러번 옮겨서 성균관 사예에 이르렀다. 병자년에 이



개등이 난을 꾀하고 날을 약속하여 일을 거행하기로 하였으나 수행하지 못하였는데, 수일 뒤에 김질이 장



인 정창손에게 말하여 변고를 상주하니 이개 등이 주살되었다. 여러 신하가, 김질이 함께 모반하였는데,



성패를 관망하다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서야 고한 것이라 하여 주살하기를 청하였으나, 세조가



듣지 않고, 판군기감사로 올리어 제수하고 곧 추충 좌익 공신이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 얼마 안 되어서 동



부승지에 오르고 옮기어 좌승지에 이르렀다. 천순기묘년에 가선 대부 병조 참판이 되고 상락군으로 봉해



졌다. 신사년에 자헌 대부가 되어 평안도 도관찰사로 나갔다가, 곧 정헌 대부로 가자되었다. 계미년에 들



어와 공조 판서가 되고, 병조 판서.형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성화병술년에 의정부 우참찬이 되고, 숭정 대



부로 가자되었다. 정해년에 경상도 관찰사가되고, 무자년에 도로 상락군에 봉해졌고, 우의정으로 발탁되



었다가 이윽고 좌의정으로 승진하였다. 기측년에 상락 부원군에 봉해졌고, 예종이 즉위하여 순성 명량 경



제 좌리 공신이라는 호를 내렸다. 갑오년에 다시 우의정이 제배되었고 주문사에 충차되어 중국에 가서 의



경왕의 시호를 청하여서 허락을 받아가지고 돌아오니,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정유년에 도로 상락 부원군



에 봉해졌다. 병에 걸리게 되자 임금이 의원을 보내어 문병하고 어주의 찬선을 내렸다. 이때에 이르러 졸



하니, 나이가 57세이다. 시호를 문정(文靖)이 라고 하였는데, 충신 애인(忠信愛人)한 것이 문(文)이고, 관



락 영종(寬樂令終)한 것이 정(靖)이다. 김질은 풍의가 아름답고 언론을 잘하였으며, 부모를 효성으로 섬



기고 형제를 우애로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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