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대관上 07 ---김천과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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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1-24 03:40 조회1,630회 댓글0건본문
오은대관上 07 ---김천과 김장
정간공(김영후)께서는 두 아들 (김천과 김장)을 두었고, 영삼사사공(김천)은 4남(김사겸, 김사렴, 김사안, 김사형) 1녀(허강의 처)를, 장령공(김장)은 1남(김수)를 두었습니다.
김사겸과 김사안은 무후이고 김사렴은 안렴사공파 파조, 김사형은 익원공파 파조, 김수는 서운관정공파 파조가 되십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기록을 보면 영삼사사공(김천)은 1군데, 충강공(김사안)은 몇 군데, 익원공(김사형)은 많은 기록이 있으나, 김사겸, 안렴사공(김사렴), 장령공(김장), 서운관정공(김수) 등은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김천과 김장 형제 관련기록을 모두 모아 보았습니다.
2. 김천·김장과 안렴사공 형제
2-1 김천(金 ) --- 안렴사공의 考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그(=김순)의 아들로는 김영돈(金永旽), 김영휘(金永暉), 김영후(金永煦)가 있다.
-----
그(=김영후) 손자들인 김사안(士安), 김사형(士衡)의 나이 20세를 넘었는데 어떤 사람이 김영후더러 말하기를 “왜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얻어 주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제가 과연 현명하다면 국가에서 스스로 선발해서 쓸 것이며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관직을 주어서 얻게 하더라고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
그(=김영후)의 아들 ★김천은 관직이 밀직부사에까지 이르렀다.
▣ 족보 (익원공파보)
영삼사사공 김천
정간공 김영후의 장자로 출생하였다.
고려조에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호군을 지냈으며, 원나라로부터 자승고경점의 벼슬을 선수받기도 하였다.
또 후일 조선조에서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증되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이는 아드님인 익원공의 勳貴로 인함이며
배위는 삼한국대부인 현풍곽씨이다.
묘는 실전되어 오창면 모정리 고위와 동원에 설단 분향한다.
2-2 김천의 장인 곽원진 --- 안렴사공의 외조부
▣ 족보 (안렴사공파보)
김천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호군, 원조선수 승무랑 자승고경점, 아조贈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 상락군
배 三韓국대부인 현풍곽씨 (父대제학포산군 ★곽원진, 祖생원 ★곽돈효, 曾祖문하찬성 ★곽용, 外祖평리백천 ★조운경)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곽원진(郭元振)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돈효(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郎)으로서 원나라에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좌대언(左代言)을 거쳐 성균좨주 진현관제학(成均祭酒進賢館提學)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萬姓大同譜. 〈秦星圭〉
2-3 정간공(김영후)과 영삼사사공(김천) 설단
고려시대 墓誌들은 대부분 개성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개성주변 연천에 능이 있는 경순왕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인 김은열, 김황 등의 묘지가 개성에서 발견된 바 있고, 김승용 墓誌(1329, 이숙기 술)는 일제시에 개성 부근의 고려고분에서 청자가 도굴당하는 과정에서 수습되었다.
충렬공(김방경)의 아들이신 문영공(김순)의 묘는 실전되어 오다가, 壬午년(=1942년) 봄에 개풍군 임계년 가정리 마산 동록 장씨 성을 가진 무덤 부근에서 誌石을 발견하였고,
익년 癸未년(=1943년) 봄에 시흥군 안양시 관양1동 후록 양좌지원 (=현재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1동 관악산 줄기)에 옮겨 모시었다. 이때 배위 제평군부인 양천허씨 영단을 설단하였다. 이 산은 익원공 16대손 讚源 소유 선산 내의 한 葬地로 헌납한 것이다.
1948년에 다시 세운 김순 묘갈이 있으며, 그후 讚源씨 후손이 이 산을 타인에게 매도할 때에 문영공 묘 영역 300여평을 우리파 문중에 희사하여 제,안,익 3파 공동명의로 등기를 필하였다.
문영공(김순) 묘지명(1321, 민지 撰) 기록중에 -----영돈(永暾)의 문중(門中)에서 이미 장지를 덕수현 마산(德水縣 馬山)위에 잡아놓고 장차 장례를 지내려고 하는데 나(=민지)는 그(=김영돈)의 선친의 친구인지라 공(=김순)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명(銘)을 지어달라고 간청함으로 내가 비록 병들었으나 굳이 사양치 못하고 받아서 명(銘)을 쓰노라. ----- 라고 기록되어 있고,
김영돈 묘지명(1348, 안진 찬)은 조선순조8년 (1808, 술진)에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아버지 문영공(김순)의 장지와 백형 김영돈의 거처가 개성인 점과 정간공(김영후)께서 고위관직에 계시어 개성 어디에 거주하셨을 것이므로 정간공(김영후)와 영삼사사공(김천)의 묘도 개성 어딘가에 있다가 실전된 상태이고, 기록도 전무하여 알 수 없는 실정이다.
1962년 정간공(김영후)의 후손인 안렴사공파, 익원공파, 서운관정공파 3파에서 합력하여 충북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에 있는 안렴사공(김사렴) 묘역 좌하에 정간공(김영후) 설단과 영삼사사공(김천) 설단을 조성하였다가 , 1993년에 중수하고, 1996년 묘역 좌상으로 이설하였다가, 2000년 수해로 인하여 다시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9도산유적정화보수기 (2000, 영모재)
정간공단소除節(제절) 복원공사
정간공 및 영삼사사공 양대 영단은 1996년도에 안렴사공 묘소 좌측 상위에 3차로 이설해 모시었든바 昨夏(작하) 폭우시에 제절이 붕괴되어 시급히 복원치 않을 수 없는 실정인지라 안렴사공 및 익원공, 서운관정공 각파 대표가 회동하여 성심껏 헌성금을 醵出(갹출)하여 복구 완공하기로 宗議(종의)가 숙성되었다. 아울러 공사는 자연석으로 제절 하부를 축조하고 떼를 완전히 覆被(복피)하도록 설계 시공하였다.
소요공비 1,030만원은 안렴사공파 400만원, 익원공파 300만원, 서운관정공파 200만원에 130만원은 정간공종회 자부담으로 충용하였다.
2-4 김장과 김수(金綏) --- 안렴사공의 숙부와 4촌, 서운관정공파 파조
▣ 문화유적총람
§ 의왕 김장 영단
분류번호: 437-080-272-001
주소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산 81
지정사항: <지정사항 없음>
시대분류: 조선 시대
관리자:
유적종류: 사묘(단)
유적내용:
김장은 왜구 토벌로 상낙군의 작위를 받은 방경(方慶)의 증손이며 안동 김씨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시조인 수(綏)의 아버지이다.
고려에서 보궐지감찰사장령을 역임했으며, 조선에서는 사헌부집의를 추증받았다.
무덤은 고려말기에 잃은 듯하고, 전하는 기록도 없다.
1969년 안동김씨 종회에서 영단을 세웠다. 석물은 비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참고문헌: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경기도, 1991,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
§ 의왕 김수 영단(金綬靈檀)
분류번호: 437-080-272-002
주소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산 81
지정사항: <지정사항 없음>
시대분류: 조선 시대
관리자:
유적종류: 사묘(단)
유적내용:
김수는 안동 김씨 서운관정공파의 시조인데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서운판정공을 역임하였고, 그의 손자인 자행(自行)이 관찰사 등과 같은 관직을 역임한 공로로 조선에서 예조참의로 추증을 받았다.
그는 조선조 개창 이후, 이태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원주 지방에 은신하여 행적과 묘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1968년 안동 김씨 종회에서 그의 영단을 만들었다. 석물로는 비석, 혼유석, 향로석, 상석이 있다.
참고문헌: 충북1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경기도, 1991,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창엔 언제쯤 들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고맙습니다.
정간공(김영후)께서는 두 아들 (김천과 김장)을 두었고, 영삼사사공(김천)은 4남(김사겸, 김사렴, 김사안, 김사형) 1녀(허강의 처)를, 장령공(김장)은 1남(김수)를 두었습니다.
김사겸과 김사안은 무후이고 김사렴은 안렴사공파 파조, 김사형은 익원공파 파조, 김수는 서운관정공파 파조가 되십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기록을 보면 영삼사사공(김천)은 1군데, 충강공(김사안)은 몇 군데, 익원공(김사형)은 많은 기록이 있으나, 김사겸, 안렴사공(김사렴), 장령공(김장), 서운관정공(김수) 등은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김천과 김장 형제 관련기록을 모두 모아 보았습니다.
2. 김천·김장과 안렴사공 형제
2-1 김천(金 ) --- 안렴사공의 考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그(=김순)의 아들로는 김영돈(金永旽), 김영휘(金永暉), 김영후(金永煦)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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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김영후) 손자들인 김사안(士安), 김사형(士衡)의 나이 20세를 넘었는데 어떤 사람이 김영후더러 말하기를 “왜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얻어 주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제가 과연 현명하다면 국가에서 스스로 선발해서 쓸 것이며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관직을 주어서 얻게 하더라고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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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김영후)의 아들 ★김천은 관직이 밀직부사에까지 이르렀다.
▣ 족보 (익원공파보)
영삼사사공 김천
정간공 김영후의 장자로 출생하였다.
고려조에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호군을 지냈으며, 원나라로부터 자승고경점의 벼슬을 선수받기도 하였다.
또 후일 조선조에서 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에 추증되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이는 아드님인 익원공의 勳貴로 인함이며
배위는 삼한국대부인 현풍곽씨이다.
묘는 실전되어 오창면 모정리 고위와 동원에 설단 분향한다.
2-2 김천의 장인 곽원진 --- 안렴사공의 외조부
▣ 족보 (안렴사공파보)
김천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호군, 원조선수 승무랑 자승고경점, 아조贈보국숭록대부 영삼사사 상락군
배 三韓국대부인 현풍곽씨 (父대제학포산군 ★곽원진, 祖생원 ★곽돈효, 曾祖문하찬성 ★곽용, 外祖평리백천 ★조운경)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곽원진(郭元振)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돈효(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郎)으로서 원나라에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좌대언(左代言)을 거쳐 성균좨주 진현관제학(成均祭酒進賢館提學)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萬姓大同譜. 〈秦星圭〉
2-3 정간공(김영후)과 영삼사사공(김천) 설단
고려시대 墓誌들은 대부분 개성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개성주변 연천에 능이 있는 경순왕을 비롯하여 그의 아들인 김은열, 김황 등의 묘지가 개성에서 발견된 바 있고, 김승용 墓誌(1329, 이숙기 술)는 일제시에 개성 부근의 고려고분에서 청자가 도굴당하는 과정에서 수습되었다.
충렬공(김방경)의 아들이신 문영공(김순)의 묘는 실전되어 오다가, 壬午년(=1942년) 봄에 개풍군 임계년 가정리 마산 동록 장씨 성을 가진 무덤 부근에서 誌石을 발견하였고,
익년 癸未년(=1943년) 봄에 시흥군 안양시 관양1동 후록 양좌지원 (=현재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1동 관악산 줄기)에 옮겨 모시었다. 이때 배위 제평군부인 양천허씨 영단을 설단하였다. 이 산은 익원공 16대손 讚源 소유 선산 내의 한 葬地로 헌납한 것이다.
1948년에 다시 세운 김순 묘갈이 있으며, 그후 讚源씨 후손이 이 산을 타인에게 매도할 때에 문영공 묘 영역 300여평을 우리파 문중에 희사하여 제,안,익 3파 공동명의로 등기를 필하였다.
문영공(김순) 묘지명(1321, 민지 撰) 기록중에 -----영돈(永暾)의 문중(門中)에서 이미 장지를 덕수현 마산(德水縣 馬山)위에 잡아놓고 장차 장례를 지내려고 하는데 나(=민지)는 그(=김영돈)의 선친의 친구인지라 공(=김순)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명(銘)을 지어달라고 간청함으로 내가 비록 병들었으나 굳이 사양치 못하고 받아서 명(銘)을 쓰노라. ----- 라고 기록되어 있고,
김영돈 묘지명(1348, 안진 찬)은 조선순조8년 (1808, 술진)에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아버지 문영공(김순)의 장지와 백형 김영돈의 거처가 개성인 점과 정간공(김영후)께서 고위관직에 계시어 개성 어디에 거주하셨을 것이므로 정간공(김영후)와 영삼사사공(김천)의 묘도 개성 어딘가에 있다가 실전된 상태이고, 기록도 전무하여 알 수 없는 실정이다.
1962년 정간공(김영후)의 후손인 안렴사공파, 익원공파, 서운관정공파 3파에서 합력하여 충북 청원군 오창면 모정리에 있는 안렴사공(김사렴) 묘역 좌하에 정간공(김영후) 설단과 영삼사사공(김천) 설단을 조성하였다가 , 1993년에 중수하고, 1996년 묘역 좌상으로 이설하였다가, 2000년 수해로 인하여 다시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9도산유적정화보수기 (2000, 영모재)
정간공단소除節(제절) 복원공사
정간공 및 영삼사사공 양대 영단은 1996년도에 안렴사공 묘소 좌측 상위에 3차로 이설해 모시었든바 昨夏(작하) 폭우시에 제절이 붕괴되어 시급히 복원치 않을 수 없는 실정인지라 안렴사공 및 익원공, 서운관정공 각파 대표가 회동하여 성심껏 헌성금을 醵出(갹출)하여 복구 완공하기로 宗議(종의)가 숙성되었다. 아울러 공사는 자연석으로 제절 하부를 축조하고 떼를 완전히 覆被(복피)하도록 설계 시공하였다.
소요공비 1,030만원은 안렴사공파 400만원, 익원공파 300만원, 서운관정공파 200만원에 130만원은 정간공종회 자부담으로 충용하였다.
2-4 김장과 김수(金綏) --- 안렴사공의 숙부와 4촌, 서운관정공파 파조
▣ 문화유적총람
§ 의왕 김장 영단
분류번호: 437-080-272-001
주소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산 81
지정사항: <지정사항 없음>
시대분류: 조선 시대
관리자:
유적종류: 사묘(단)
유적내용:
김장은 왜구 토벌로 상낙군의 작위를 받은 방경(方慶)의 증손이며 안동 김씨 서운관정공파(書雲觀正公派) 시조인 수(綏)의 아버지이다.
고려에서 보궐지감찰사장령을 역임했으며, 조선에서는 사헌부집의를 추증받았다.
무덤은 고려말기에 잃은 듯하고, 전하는 기록도 없다.
1969년 안동김씨 종회에서 영단을 세웠다. 석물은 비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참고문헌: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경기도, 1991,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
§ 의왕 김수 영단(金綬靈檀)
분류번호: 437-080-272-002
주소지: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산 81
지정사항: <지정사항 없음>
시대분류: 조선 시대
관리자:
유적종류: 사묘(단)
유적내용:
김수는 안동 김씨 서운관정공파의 시조인데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서운판정공을 역임하였고, 그의 손자인 자행(自行)이 관찰사 등과 같은 관직을 역임한 공로로 조선에서 예조참의로 추증을 받았다.
그는 조선조 개창 이후, 이태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원주 지방에 은신하여 행적과 묘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1968년 안동 김씨 종회에서 그의 영단을 만들었다. 석물로는 비석, 혼유석, 향로석, 상석이 있다.
참고문헌: 충북1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경기도, 1991,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창엔 언제쯤 들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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