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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조적의 난> 발생 원인이 된 경화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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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3-01-24 19:56 조회1,6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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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공주(慶華公主)

?∼1344(충목왕 즉위년). 충숙왕의 셋째부인. 몽고여자로 이름은 백안홀도(伯顔忽都)이다.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결혼하여 1333년(충숙왕 복위 2)왕과 함께 고려로 돌아왔다.

1339년 충숙왕이 죽고, 충혜왕이 다시 복위하자 공주를 위하여 영안궁(永安宮)에서 두번이나 향연을 베풀었다. 이에 공주가 답례로 향연을 베풀었는데, 주연이 파하자 왕은 취한 체하고 공주를 폭행하였다. 공주가 이를 치욕스럽게 여겨 원나라에 돌아가려고 말을 사려 하였으나, 왕이 마시(馬市)를 금하여 말을 살 수 없었다.

이에 공주가 심왕파(瀋王派)인 조적(曺#적42)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말하자, 조적 일당은 이를 구실삼아 심왕을 옹립하기 위하여 난을 일으켰다. 난이 실패로 돌아가고 조적이 죽음을 당하자 왕은 공주를 만호(萬戶) 임숙(林淑)의 집으로 옮겼다.

이때 원나라의 사신 두린(頭麟) 등이 와서 이 사실을 알고는 충혜왕을 잡아 원나라로 돌아갔으며, 공주는 충혜왕의 폐신(嬖臣)이었던 찬성사(贊成事) 정천기(鄭天起)를 정동성(征東省)에 가두고, 김지겸(金之謙)을 권정동성(權征東省)에, 김자(金資)를 제조도첨의사사(提調都僉議司事)에 임명하였다.

1367년(공민왕 16)원나라로부터 숙공휘령공주(肅恭徽寧公主)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솔내영환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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