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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과 조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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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3-01-24 19:46 조회1,5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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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 [? ~ 1339]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충렬왕 때 환관(宦官)들과 결탁하여 세력을 떨치고, 1313년(충선왕 5) 우상시(右常侍) 때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밀직사(密直司)가 되고, 1320년(충숙왕 7) 선부전서(選部典書)를 거쳐 1323년 만호 때 허경(許慶)과 재산싸움을 한 뒤 원나라로 달아났다. 원나라 영종(英宗)에게 충숙왕을 무고하여 국새를 빼앗게 하고, 충선왕의 방환(放還)을 탄원한다고 속여 백관들의 서명을 받은 진정서로 심양왕의 즉위를 원나라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였다.



1324년 고려인 2,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원나라 한림원(翰林院)과 중서성(中書省)에 충숙왕을 비난하는 글을 보내고, 1327년 심양왕에게 선위(禪位)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조년(李兆年) 등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1332년 재차 선왕 충숙왕이 복위하자 돌아와 밀직지사(密直知事)가 되고 찬성사(贊成事)를 거쳐 1338년 첨의좌정승(僉議左政承)에 승진하였다. 다음해 왕이 죽고 충혜왕이 복위하자 원나라에 가려고 평양에 이르렀을 때, 충혜왕에게 욕을 당한 경화공주(慶華公主:忠肅王妃)의 폭로로 왕의 추행이 드러나자 폐위를 공언하고 개경에 들어와 국인(國印)을 영안궁(永安宮)에 숨기고 일당을 데리고 충혜왕의 궁을 공격하다가 실패하여 살해되었다.

















▣ 김재익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솔내영환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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