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령당(海寧堂)과 해양향(海陽鄕)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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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3-02-08 21:42 조회1,859회 댓글0건본문
해령당(海寧堂)
지금의 길상면 온수리(溫水理) 중앙부위에 해령당(海寧堂)이라 부르는 고
지명이 있다. 이곳엔 성공회(聖公會) 공소가 자리하고 있어 명소로 알려져
있고 성공회는 전국에서 성직자가 제일먼저 배출한 지역이다. 고려 고종(高
宗)때에 도원수 김방경(都元帥 金方慶)이 살던 지역이라 한다. 이때 그곳을
원수리(元帥里)라 했는데 그 살던 고장을 해령당(海寧堂)이라 부르는데 지
금도 역시 고여금(古如今)인가 한다. 김방경(金方慶)은 안동(安東) 사람으
로 서북면 병마판관(西北面 兵馬判官)을 역임하고 위도(葦島)에 들어가 저
수지를 만들고 강화에서는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저수하였다가 겨울에는
음료수로 적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안동에서 장서(長逝)하였는데 고려시대
의 명사이니 지금에는 양도면 삼흥리에 후예가 살고 있다는 설이 있다.
<출전-강도의 민담과 전설> 강화문화원
해양향(海陽鄕)
진강산(鎭江山)의 서편 5리에 있었다는데 오직 지명조차 희미하다. 일설
에 의하면 고려 고종(高麗 高宗)이 이고장으로 천도하여 강화(江華)에서 장
서하시고 뒤를 이어 원종(元宗)이 동극하여 11년만에 강도(江都)에서 개성
(開城)으로 환도하였다. 고종때의 권신 최충헌이 죽고 뒤를 이은 아들 우가
강화천도(江華遷都)를 강행하고 궁궐(宮闕)이며 호화주택을 세우고 횡포하
다가 손자 최의에 이르러 집권한지 2년만에 임연(林衍)에게 살해되었는데
그 공으로 인하여 별장(別將) 김인준(金仁俊)(최충헌의 가복)은 시중(侍中}
에 해양후(海陽候)라 칭하였다. 김인준은 횡포가 심하여 임연에게 피살되었
다. 이것이 와전되어 해령향海寧鄕) 해망(海亡)이라고 부른다. 이 고장은
양도면 건평리(乾坪里) 해망(海亡)이라는 곳 이다.
<출전-강도의 민담과 전설>강화문화원
▣ 김주회 -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양도면 삼흥리 내용이 궁금합니다.
▣ 김항용 - 강화에 가서 여러분을 만나시는 수고가 있으셨고 많은 자료도 가져오시느라 노고가 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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