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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오은대관下 17 ---화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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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2-16 03:06 조회1,8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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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대관下 17 ---화해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해사전 華海師全

고려말의 학자 ★신현(申賢)의 학문과 언행을 모아 엮은책. 4권 2책. 신활자본.

화해사(華海師)란 곧 중국의 원나라와 명나라, 그리고 동해 즉 고려의 스승이라는 뜻이니, 화해사전이란 화해사 신현과 관계된 모든 기록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문인 ★정몽주가 ★원천석에게 전하여 원천석과 ★범세동이 편집하여 간행하려 하였으나, 고려말 어지러운 상황 속에 간행을 보지 못하였고, 조선의 건국과 함께 그 후손 또한 몰락하여 ★원, ★범, ★공(孔) 3가에 비장되어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31년 ★강영직이 군산에서 발견하여 원본의 오자 낙서를 바로잡아 편집, 교정하여 비로소 간행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8권의 규모였으나 중간에 유실되어 4권으로 엮었다.

권두에 ★강영직의 서문과 동방도통도(東方道統圖), 세계도가 실려 있다.

권1은 비모(備耗), 잠가범(箴家範), 간재홀서(簡齋笏書),

권2는 본조주대(本朝奏對), 원주문답(元主問答), 명조빙문(明朝聘問), 제자문답(諸子問答),

권3은 출처대략(出處大略), 발미(跋尾), 사전계사(師全繼辭), 제자찬사(諸子讚辭), 제자서술(諸子敍述), 동방사문연원록(東方斯文淵源錄),

권4는 부록으로 후학찬사, 후학찬술(後學撰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의 <동방도통도>에서는 우리나라 유학의 도통을 ★단군에서 ★기자로 이어져, ★설총, ★최충, ★김양감, ★안향, ★우탁의 차례로 전해져, 우탁이 다시 ★신현에게 전하고, 신현이 ★정몽주나 ★이색, 그리고 아들 ★용희에게 전한 것으로 세웠다. 정몽주나 이색 등의 문로나 학문의 계통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것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이 책의 발견으로 신현이 안향과 우탁의 도통을 이들에게 전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비모>는 모두 39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주로 송유(宋儒)의 성경설(誠敬說)과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에 대한 신현의 견해를 엮어 편집한 것이다.



<잠가범>은 신현의 아우인 ★즙과 아들 ★용희 등이 성리학의 여러 문제에 대한 선인의 말을 엮어 편집, 교정하고 여기에 자신의 견해를 더하여 신현에게 질정한 내용으로, 역시 그의 성리학에 대한 생각이 나타나 있다.



<간재홀서>는 1381년(우왕7) ★용희가 명나라 태조와 신현이 학문 및 도학, 의리명분 등의 내용을 가지고 문답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본조주대>는 문인들의 기록으로, 충숙왕과 충혜왕 등 임금과의 주대를 모아 저자의 학문과 행적의 소재를 밝혔다.



<원주문답>과 <명조빙문>은 각각 원나라 인종 및 명나라 태조와의 문답내용인데, 인종과 태조가 모두 저자에게 스승의 예를 갖추고 있어 당시 그의 문망이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제자문답>은 제자 문인들과 학문의 문제를 두고 문답한 내용이고,



<출처대략>은 문인들이 선생의 출처 행적 가운데 앞선 글에서 누락된 것을 습유하여 보충한 내용이며,



<발미>는 ★원천석이 이 책을 인간(印刊)한 경위를 적은 것이다.



<사전계사> 역시 ★원천석이 선생의 생애에 관한 사실 중 누락된 것을 모아 정리한 것이며,



<제자찬사>는 명나라의 대학자 ★송렴을 비롯한 고려말 조선초 여러 인사들의 신현에 대한 찬사를 모은 것이고,



<제자서술>은 ★정몽주와 ★원천석 등 문인 및 후학들이 스승의 학행에 대하여 추술한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동방사문연원록>은 본래 ★범세동의 <화동인물총기>에 실렸던 것으로, 앞서 연원도에서의 도통의 연원을 인물별로 구분하여 설총에서 정몽주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후학찬사>에는 간행에 앞서 ★정국필 외 112인의 찬사를 모아 수록하였고,



<후학찬술>은 ★강영직 등이 이책의 간행에 앞서 전국 여러 서원과 유림들의 의견을 수렴, 이 책의 가치를 밝힌 내용이다.



권말의 <화해사전제자안>에는 이 책에 수록된 229인의 이름을 적어 놓아, 고려말 유학의 계통과 당대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수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다만 이토록 비중있는 문헌이 조선왕조 500년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근대에 와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신현에 대해서도 아무리 격변기의 와중이었  하여도 <고려사>나 그밖의 관련 저술에서 거의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사실은 본 저작의 진위 여부에 많은 의심을 품게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후인의 두찬(杜撰)이거나 위서(僞書)일 가능성이 다분히 많다. 만약 그렇다면 매우 정교하고 세심한 배려에 의하여 이루어진 이 책의 편제를 두고 볼 때, 통(統)에 대한 관념이 강조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의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은 천착과 검증이 요구되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본서의 내용과 의식의 문제는 그 자체로 또다른 탐구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정각도서에 있다. <정민>

화해사전 신현 지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야후백과>

★화해사전 華海師全

고려 후기의 학자 신현(申賢:1298~1377)의 전기(傳記).

구분 : 전기, 신연활자본

저자 : 신현

시대 : 고려 후기



신연활자본. 4권 2책. 1931년 ★강영식(姜泳植)이 군산에서 우연히 이 책을 구해 편집 ·정리하여 1935년 논산에서 간행하였다. 책머리의 강영식의 서문에 의하면, ★신현은 ★우탁(禹倬)의 문하생으로 송대(宋代)의 유학을 ★정몽주(鄭夢周)와 ★이색(李穡)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신현의 문하생인 정몽주가 이 책을 ★원천석(元天錫)에게 전해주자 원천석은 ★범세동(范世東)과 함께 편집을 하고 나서 간행하려 하였으나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조선 초에도 후손들이 몰락하여 책이 궤짝 속에 넣어져 빛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서문 다음에 있는 〈동방도통도(東方道統圖)〉에는 유학의 도통을 단군에서부터 고려 후기까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계통을 그려내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신현의 학문과 덕행 ·도학 ·의리명분 등을 문답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말미의 〈동방사문연원록(東方斯文淵源錄)〉은 도통(道統)의 연원을 인물별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화해사전제자안(華海師全諸子案)〉은 이 책에 수록된 229명의 이름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고려 말에서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유학에 대한 깊이와 수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조선 후기의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진위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범세동 范世東 [?~?]

고려 말기의 학자.

본관 : 금성

호 : 복애

별칭 : 자 여명, 시호 문충

주요저서 :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



본관 금성(錦城). 자 여명(汝明). 호 복애(伏厓). 시호 문충(文忠). 공민왕 때 덕녕부윤(德寧府尹)·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지냈다. 나라가 망해 가는 것을 보고 물러나와, 만수산(萬壽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뒤에도 출사(出仕)하지 않고, 오직 성리학만 깊이 연구하여 널리 퍼뜨렸다.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華海師全)》을 편집,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김윤만 -

▣ 솔내영환 - 화해사전에는 척약재(김구용)할아버님에 대한 기록도 많이 보입니다.

▣ 김항용 -

▣ 김윤식 -

▣ 김은회 -

▣ 김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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