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대관上 23 ---안렴사공 장자 안찰사공(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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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2-18 06:41 조회1,537회 댓글0건본문
오은대관上 23 ---안렴사공 장자 안찰사공(김간)
안렴사공의 장자이신 안찰사공(김간)의 묘는 오창 목령 하사동 술좌에 웅대한 방호석묘로 모셔져 있었고, 약 57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그 규모가 웅대하고 오랜 고분으로 1998년 체경묘원으로 면봉시 고려동경으로 추정되는 부장품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여말선초의 묘의 형태인 거대한 사각 방형 석묘였다고 합니다. 체경묘원으로 면봉시 문관석 등 석물을 옮겨오고, 사각 방형 묘의 ?석대는 옮겨와서 체경묘원 오르는 길 계단에 쌓아 놓고 묘는 둥그런 석묘 형태로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방호석묘 그대로 면봉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안렴사공의 장자이신 안찰사공(김간)은 무후하여 손이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무후하신 것인지?, 여말선초의 혼란한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고려수절신으로 남아서 어떠한 피해를 입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史書나 기타 자료에서 기록은 발견할 수 없고, 다만 <윤해묘지명(1380년)>에 보면 장인 김회조는 판내부사를, 안찰사공(김간)은 호군(정4품, =장군)을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안렴사공 아들 손자
4-1. 안렴사공 1자 金侃(김간)
■ 안렴사공파세보 (1988, 무진보)
○ 김간 +광산김씨 (父 판서 ★김회조)
안찰사를 지내고 배위는 광주인 김회조의 여이다
■ 고려묘지명집성 (1993, 김용선, 한림대학교)
1993년 김용선 편저로 한림대학교에서 발간한 [고려묘지성집성]에 있는
1380년 (우왕6년 경신)에 만들어진 윤해묘지명 (파평군윤공묘지명 병서)을 보면
金侃(김간)의 장인인 金懷祖는 당시 판내부사를
金侃은 護軍을 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군護軍)은 고려·조선 시대 정사품의 무관직으로
고려 공민왕 때 장군(將軍)을 고친 것이다. 오위(五衛)에 속하였던 정사품의 무관으로, 1392년 건국 초에는 12명의 정원을 두었으나 명종 때 8명을 감원하였다. 호군은 후에 문관·무관·음관(蔭官)에서 임명하고 봉록(俸祿)만을 지급, 실제 직무는 맡지 않았다.
★按廉使(안렴사) ; 고려 때 지방장관으로 절도사. 안찰사라고도 한다. 지금의 광역시장. 도지사.
■ 체경묘원유연비문 (1998, 김재화)
○-----
장군 휘★侃(간)공은 관이 안찰사에 이르시고 배는 무주부인 광주김씨니 부판서★懷祖(회조)지녀요 묘는 오창목령하사동술좌이었다가 금번 이 묘원에 면봉하게 되었다.
즉 안찰사 휘★侃(간)공의 영묘는 오창목령술좌에 웅대한 방호석묘로 모셔져 있었고 원래 비대한 산판과 위토가 있었을 것이나 후사없는 묘소인데다 방손들의 불찰로 거개가 상실되었고 임야는 소유포기되어 행정청의 귀속재산으로 처분된 것으로 사유된다. 우금까지 근소한 위토 330평이 유지되어 있어 묘하 양청동 방예손 일계에서 세사를 봉행하여 오던중
의외로 국가사업인 오창 첨단과학기술공단 건설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전기 위토가 편입되어 그 보상금 2천3백6십만원을 수령케 되자 소관문중의 협의로 오은공 대종회에 헌납하고 묘지이안을 성원하는지라 이를 기꺼이 가납하여 정랑공, 소윤공의 영분까지 일괄사업으로 병행키로 만장일치 종의가 숙성되어 묘원을 영건하게 되었다.
○ 묘원영건역사 개황
1998.4.2 묘원영건 추진위원이 2조로 편성되어 1조는 소윤공 설단비를 이전하여 오고 신묘원의 정지 영묘위치 및 굴광작업을 하고, 2조는 안찰사공 구묘 발굴 및 유골수습, 이안작업을 수행하였다.
안찰공 휘★侃(간)공의 분묘는 약 57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조고비 양위분의 유골이 정결히 유류되어 있어 실로 기이한 감탄을 느끼게 하였다.
예경묘원에는 以西爲上 원칙에 따라 향하여 좌측에 안찰사공의 면봉묘를, 중앙에 소윤공의 이안영분을, 우측에는 이제까지 실전되었든 정랑공의 초혼영분을 봉축하였다.
따라서 별항 게기한 바와 같이 각 석물을 배열하고 안찰사공 구묘에서 가져온 문관석을 세웠으며 우측에 유연비를 수립하여 묘정을 정제하였으니 이상 작업에는 범 3일간의 용역이 소요되었다.
○ 부장품 유물의 발견
★안찰사공 구묘에 대하여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 규모가 웅대하고 오랜 고분인지라 혹여 부장품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신중히 발굴한 바 과연 하나의 유물이 발견되었으니
직경 8cm, 厚3mm의 원형물건인데 표면은 약간 凸형으로 고운 면을 갖고 있으며 배면은 운용문이 조각되어 있고 중앙에 꼭지가 있고 위에는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슬끈으로 꾀었든 듯하였다. 이제는 전문가의 감정이 있어야 하겠지만 필자의 상식으로는 고려동경일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공께서 평생 지니든 애용물을 부장한 것이거나 더 비약적으로 해석하면 안렴사 부군께서 또는 상락후 부군 때부터의 것을 장자이신 안찰사공께로 유전하였다가 후사가 없으심으로 부장케 된 것인가도 추리해 보게 된다.
여하간 면경은 자기면모를 성찰하는 것이오 청직한 인격을 관조하는 것이니 고결한 역대 선조의 지조와 풍절을 포회한 진품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海< +農> 주)
▣ 솔내영환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안찰사공(휘 간)묘가 원형이 유지 되지 못함이 자못 아쉽습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장품은 어디에 보관되어 있나요?
▣ 김태서 - 많은 부장품을 발견하여 박물관을 세웠으면 합니다.
▣ 김윤만 - "조고비 양위분의 유골이 정결히 유류되어 있다."는 표현은 570년전 유골이 보존되어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네요.
▣ 김주회 - 고려동경 추정 부장품은 현재 안렴사공 재실 영모재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충남 아산에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 본 일인데, 동경과 비슷한 여러 물건들이 여성용 화장용품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안찰사공 묘에서 나온 고려동경 추정 부장품도 여성 화장용품이라면 안찰사공 배위 무주부인 광주김씨(김회조의 따님)의 유품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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