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님의 혁명(적)사상의 기원.(자점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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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2-18 09:06 조회1,522회 댓글0건본문
▣ 김구선생님의 혁명(적)사상의 기원.(자점할아버지) ▣
☞ 한국독립운동사 영인·교양총서(2) 金九先生血鬪史(김구선생혈투사)는 1946년도에 간행되어 단어와
띄어쓰기가 오늘날과 다소 상이합니다. 그러므로 사실감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는 그대로 쓰되 띄어쓰기는
오늘날 띄어쓰기로 수정하여 올림을 양해 바랍니다.
☞ 옮긴이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도왜실기』 <서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이었던 엄항섭님의
<소전>을 읽고 다음 두가지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1) 백범선생님의 혁명적 사상의 근원은 방조이신 자점할아버지 옥사로 부터 기인했다는 사실.
(2) 소위“김자점 역모사건”을 이승만 전 대통령께서는 반역을 “하신 것”으로 보지않고 “몰리신 것”으로
---보았고, 엄항섭님 또한 자점할아버지의 정적들이 “없는 일을 꾸며서 무고했다.”라고 본 사실.
◉ <序文(서문)>
--『屠倭實記(도왜실기)』는 金九(김구)先生(선생)께서 中國(중국)에 亡命(망명)해 계실 때에 中國語(중국어)
로써 刊行(간행)하신 冊子(책자)이니 韓國人(한국인)의 獨立運動(독립운동)을 넓이 中國人(중국인)에게
알리고저 하신 것이다. 金九(김구)先生(선생)은 七十平生(70평생)을 오로지 祖國(조국)의 光復(광복)과
獨立(독립)을 위하여 바치섯스니 先生(선생)께서 亡國(망국)의 痛恨(통한)을 가슴에 품으시고 멀리 海外
(해외)에 亡命(망명)하섯다가 祖國(조국)의 解放(해방)과 함께 夢寐(몽매)에도 있지 못하시든 그리운 故土
(고토)에 다시 凱旋(개선)하시기 까지의 苦難(고난)과 辛酸(신산)은 어찌 뉘라서 想像(상상)인들 할 수
있을까 보냐.
--大韓臨時政府(대한임시정부)와 金九(김구)主席(주석)의 還國(환국)을 가르처 었던 外國新聞(외국신문)이
『二十年間 苦難(고난)의 勝利(승리)』라고 지적한 것은 這間(저간)의 消息(소식)을 雄辯(웅변)으로 表現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金九(김구)先生(선생)은 名門(명문)의 後裔(후예)로 其先祖(기선조)에 反逆(반역)으로 몰리시어서 所謂
(소위) 滅門之禍(멸문지화)를 당한 일이 있었든 關係(관계)로 어렷슬 때부터 벌서 復仇(복구)의 念(념)과
革命的(혁명적) 思想(사상)이 旺盛(왕성)하였든 것이니 十七歲 때에 이미 兵書(병서)를 愛讀(애독)하고
十八歲에 東學黨(동학당)에 加盟(가맹)하여 童子(동자) 接主(접주)의 稱號(칭호)를 듯게 된 것은 모다 이에
연유함이다.
--(후략)--
- - - - - - - - - - - - - - - - - - 一 九 四 六 年 二 月 李 承 晩(이 승 만)
◉ <1. 金九先生小傳(김구선생소전)>
--先生(선생)은 姓(성)이 金(김)이시고 처음에는 昌洙(창수)라고 부르시다가 다시 龜(구)라고 개명하섯고
上海(상해)로 가신 後(후)부터 九(구)라고 하시였다. 백범(白凡)이라는 號(호)는 白丁(백정 ; 소(牛)를 죽이는
사람을 白丁(백정)이라 부르니 最下層(최하층) 階級(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다)과 凡夫(범부)라는데 取義
(취의)하신 것이다. 先生(선생)은 監獄(감옥)에 계실 때 전국의 白丁(백정)과 凡夫(범부)들이 모다 先生
(선생)과 같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면 韓國(한국) 獨立(독립)은 成功(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감히 미드신
까닭으로 出獄(출옥) 후에는 이런 階級(계급)을 위하야 노력하실 것을 결심하시고 이 號(호)를 지어서
自身(자신)을 激勵(격려)하신 것이다.
--十八歲 童子(동자) 接主(접주)가 되시다.--
--先生(선생)은 名門(명문)에 나시였으니 先生(선생)의 傍祖(방조)되시는 金自點(김자점)이라는 분이 게시어
李朝(이조)에 仕事(사사)하시다가 地位(지위)가 놉흠으로써 남의 미움을 밧고 다른 사람의 誣訴(무소 ;
주1)를 밧게되여 이 禍(화)가 三族(삼족)에 까지 미치게 되니 祖宗(조종)되시는 분은 黃海道(황해도) 海州郡
(해주군)의 基洞(기동)이라는 곳으로 率家徒命(솔가도명)하야 農業(농업)에 종사하며 ○晦(○회)의 날을
보내게 되였다. 先生(선생)의 집안이 다시 이러날 수 없는 까닭으로 때때로 鄕豪(향호)들에게 여러가지
壓迫(압박)을 바드시게 되니 年少(년소)하실 때부터 깁흔 恨(한)을 품으시고 뜻을 세워 이것을 報仇(보구
; 주2)코자 하시였으니 先生(선생)의 革命思想(혁명사상)은 실로 여기에 基因(기인)하는 것이다.
주1 誣訴(무소) : 없는 일을 꾸며 고소함.
주2 報仇(보구) : 앙갚음.
<출전 : 김구선생혈투사/엄항섭/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1998>
<원전 : 엄항섭저 김구선생혈투사/엄항섭/국제문화협회/대한민국29년>
▣ 솔내영환 - 백범선생님의 사상의 뿌리에는 역시 그런 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자점할아버지 역모사건의 전말과 진상은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할것입니다.
▣ 김은회 - 태서씨 의견에 동감입니다.
☞ 한국독립운동사 영인·교양총서(2) 金九先生血鬪史(김구선생혈투사)는 1946년도에 간행되어 단어와
띄어쓰기가 오늘날과 다소 상이합니다. 그러므로 사실감을 높이기 위하여 단어는 그대로 쓰되 띄어쓰기는
오늘날 띄어쓰기로 수정하여 올림을 양해 바랍니다.
☞ 옮긴이는 이승만 전대통령의 『도왜실기』 <서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장이었던 엄항섭님의
<소전>을 읽고 다음 두가지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1) 백범선생님의 혁명적 사상의 근원은 방조이신 자점할아버지 옥사로 부터 기인했다는 사실.
(2) 소위“김자점 역모사건”을 이승만 전 대통령께서는 반역을 “하신 것”으로 보지않고 “몰리신 것”으로
---보았고, 엄항섭님 또한 자점할아버지의 정적들이 “없는 일을 꾸며서 무고했다.”라고 본 사실.
◉ <序文(서문)>
--『屠倭實記(도왜실기)』는 金九(김구)先生(선생)께서 中國(중국)에 亡命(망명)해 계실 때에 中國語(중국어)
로써 刊行(간행)하신 冊子(책자)이니 韓國人(한국인)의 獨立運動(독립운동)을 넓이 中國人(중국인)에게
알리고저 하신 것이다. 金九(김구)先生(선생)은 七十平生(70평생)을 오로지 祖國(조국)의 光復(광복)과
獨立(독립)을 위하여 바치섯스니 先生(선생)께서 亡國(망국)의 痛恨(통한)을 가슴에 품으시고 멀리 海外
(해외)에 亡命(망명)하섯다가 祖國(조국)의 解放(해방)과 함께 夢寐(몽매)에도 있지 못하시든 그리운 故土
(고토)에 다시 凱旋(개선)하시기 까지의 苦難(고난)과 辛酸(신산)은 어찌 뉘라서 想像(상상)인들 할 수
있을까 보냐.
--大韓臨時政府(대한임시정부)와 金九(김구)主席(주석)의 還國(환국)을 가르처 었던 外國新聞(외국신문)이
『二十年間 苦難(고난)의 勝利(승리)』라고 지적한 것은 這間(저간)의 消息(소식)을 雄辯(웅변)으로 表現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金九(김구)先生(선생)은 名門(명문)의 後裔(후예)로 其先祖(기선조)에 反逆(반역)으로 몰리시어서 所謂
(소위) 滅門之禍(멸문지화)를 당한 일이 있었든 關係(관계)로 어렷슬 때부터 벌서 復仇(복구)의 念(념)과
革命的(혁명적) 思想(사상)이 旺盛(왕성)하였든 것이니 十七歲 때에 이미 兵書(병서)를 愛讀(애독)하고
十八歲에 東學黨(동학당)에 加盟(가맹)하여 童子(동자) 接主(접주)의 稱號(칭호)를 듯게 된 것은 모다 이에
연유함이다.
--(후략)--
- - - - - - - - - - - - - - - - - - 一 九 四 六 年 二 月 李 承 晩(이 승 만)
◉ <1. 金九先生小傳(김구선생소전)>
--先生(선생)은 姓(성)이 金(김)이시고 처음에는 昌洙(창수)라고 부르시다가 다시 龜(구)라고 개명하섯고
上海(상해)로 가신 後(후)부터 九(구)라고 하시였다. 백범(白凡)이라는 號(호)는 白丁(백정 ; 소(牛)를 죽이는
사람을 白丁(백정)이라 부르니 最下層(최하층) 階級(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다)과 凡夫(범부)라는데 取義
(취의)하신 것이다. 先生(선생)은 監獄(감옥)에 계실 때 전국의 白丁(백정)과 凡夫(범부)들이 모다 先生
(선생)과 같이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면 韓國(한국) 獨立(독립)은 成功(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감히 미드신
까닭으로 出獄(출옥) 후에는 이런 階級(계급)을 위하야 노력하실 것을 결심하시고 이 號(호)를 지어서
自身(자신)을 激勵(격려)하신 것이다.
--十八歲 童子(동자) 接主(접주)가 되시다.--
--先生(선생)은 名門(명문)에 나시였으니 先生(선생)의 傍祖(방조)되시는 金自點(김자점)이라는 분이 게시어
李朝(이조)에 仕事(사사)하시다가 地位(지위)가 놉흠으로써 남의 미움을 밧고 다른 사람의 誣訴(무소 ;
주1)를 밧게되여 이 禍(화)가 三族(삼족)에 까지 미치게 되니 祖宗(조종)되시는 분은 黃海道(황해도) 海州郡
(해주군)의 基洞(기동)이라는 곳으로 率家徒命(솔가도명)하야 農業(농업)에 종사하며 ○晦(○회)의 날을
보내게 되였다. 先生(선생)의 집안이 다시 이러날 수 없는 까닭으로 때때로 鄕豪(향호)들에게 여러가지
壓迫(압박)을 바드시게 되니 年少(년소)하실 때부터 깁흔 恨(한)을 품으시고 뜻을 세워 이것을 報仇(보구
; 주2)코자 하시였으니 先生(선생)의 革命思想(혁명사상)은 실로 여기에 基因(기인)하는 것이다.
주1 誣訴(무소) : 없는 일을 꾸며 고소함.
주2 報仇(보구) : 앙갚음.
<출전 : 김구선생혈투사/엄항섭/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1998>
<원전 : 엄항섭저 김구선생혈투사/엄항섭/국제문화협회/대한민국29년>
▣ 솔내영환 - 백범선생님의 사상의 뿌리에는 역시 그런 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발용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식 - 감사합니다!!!
▣ 김태서 - 자점할아버지 역모사건의 전말과 진상은 반드시 재조명 되어야 할것입니다.
▣ 김은회 - 태서씨 의견에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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