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오은대관上 28 --- 안렴사공 후손 분파상황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02-21 06:44 조회1,976회 댓글0건

본문



오은대관上 28 --- 안렴사공 후손 분파상황





■ 고충지 (1982, 김재만, 안렴사공파종회)



11. 후손의 분파상황



오은공의

장자 안렴사 휘侃(간)은 무후이고,

2자 휘仁庇(인비)는 출가하여 입사문하였고,

3자 정랑 휘違(위)는 무후이고,

4자 절도사 휘 (제)는 무남2녀를 두어 1녀는 전의인 이사혜이니 효정공(이정간)의 자부이다. 이씨문에서 5세기를 지낸 지금까지 년향으로 외손 上墓를 행하고 있다. 2녀는 정랑 이훈이다. (본관불명)



5남이신 소윤공 휘 (약)께서는 子지주사공 휘遇周(우주)와 더불어 오은공을 평총으로 모시고 묘하에서 호천명인하기를 마지 아니하다. 별세하여 부자분 역시 평총으로 하게 하였다.

지주사공(*우주)의 子 휘丸(환)께서 여주 백양동으로 이거하여 비로소 과시에 응시하여 친시에서 합격되어 사정으로 한림주서를 거쳐 벼슬이 승문원판교에 끝이었다.



그아들 사헌부감찰 휘宗孫(종손)께서 아들 4형제를 두시었으니 장자 군수공 휘城(성)이고,



장자 안원군 휘公亮(공량)이요



그 장자 현감공 휘浣(완)께서는 천안 원이도에 거하시어 후손으로 ♠(01)德坪派(덕평파)라 하고



2자 목사공 휘滌(척)께서는 전라도 나주에 계시어 후손이 ♠(02)光山派(광산파)가 되고

3자 화산군 휘澍(주)께서 여주에 계시었고 후에 음죽 율목 (금 이천지내) 에 거하여 ♠(03)花山君派(화산군파)가 되고



군수공(*성)의 2자 도정공 휘公奭(공석)께서 거여주하여 ♠(04)여州派(여주파)가 되고



3자 목사공 휘公望(공망)께서는 거양주하여 후에 ♠(05)揚州派(양주파)라 칭하고 일운 ♠金浦派(김포파)라고도 한다.



감찰공(*종손)의 2자 현령공 휘土+遲(지)께서 문의현령으로



그 장자 사직공 휘公傑(공걸)의 후손이 괴산문광에 살아서 ♠(06)文光派(문광파)라 하고

2자 승지공 휘公藝(공예)께서는 숙부 신창현감공 휘 (계)에게로 출계하였고

3자 참봉공 휘公彦(공언)께서는 목천 광기에 계시어 후손이 ♠(07)廣基派(광기파) 일파 운 ♠延豊派(연풍파)가 되고



4자 군자감정공 휘公衍(공연)의



장자 참의공 휘繼賢(계현)

그의 아들 판관공 휘夢瑞(몽서) 후손으로 ♠(08)三山派(삼산파)라 하고

2자 진사공 휘應瑞(응서) 후손으로 ♠(09)北二派(북이파)라 하고

3자 삼함당공 휘河瑞(하서) 후손으로 ♠(10)陽地派(양지파)라 하고

4자 사마공 휘洛瑞(낙서) 2자 민숙공 휘王+言(언) 후손으로 ♠(11)論山派(논산파)라 하고



군자감정공(*공연) 2자 휘繼良(계량)은 무후이고

3자 참의공 휘繼貞(계정) 후손이 ♠(12)靑川派(청천파)가 되고

4자 휘繼雄(계웅) 후손을 ♠(13)庇安松谷派(비안송곡파)라 하고

5자 증참판공 휘繼英(계영) 후손을 ♠(14)盤灘派(반탄파)라고 호칭하고 있다.



감찰공(*종손) 3자 신창현감공 휘 (계) 후손으로 ♠(15)梧根陰地派(오근음지파) 신창공파라 하고



4자 무안현감공 휘土+保(보)

장자 휘公達(공달) 후손으로 ♠(16)梧倉塔里派(오창탑리파)로 하고

2자 휘公逸(공일) 후손으로 ♠(17)保寧派(보령파)라 하고





지주사공(*우주) 2자 양성현감공 휘吹(취) 후손으로♠(18)陶山派(도산파)라 하고

3자 휘演(연) 후손으로 ♠(19)內板派(내판파)라 하고

4자 휘石+勵(려) 후손으로 ♠(20)鐵原派(철원파)라 한다.









안렴사공(*사렴) 6자 좌랑공 휘湜(식)



장자 직장공 휘自麗(자려)



장자 대구교수공 휘 (극) 후손으로 ♠(21)永同派(영동파)라 하고

2자 휘擲(척)은 무후이고

3자 생원공 휘 (린) 후손으로 ♠(22)鎭川派(진천파)라 하고

4자 휘려(려) 후손으로 ♠(23)黃澗派(황간파)라 하고



좌랑공(*식) 2자 서령공 휘自荊(자형) 후손으로 ♠(24)曾坪派(증평파)라 하여 등?으로 분파가 형성되어 있다.







오은 안렴사공 증손 휘丸(환)께서는 상재지향인 오근서 출사하기가 미안해서 여주땅으로 이거하여 과시에 합격하여 승문원 판교에 이르렀고, 그 아들 휘宗孫(종손)께서는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그의 장자 휘城(성) 군수공께서는 여주에 계시고,

2자 휘 (지)께서는 문의현령으로 있다가 퇴임후 오근으로 돌아오시고,

3자 휘 (계)께서는 현 충남 온양 근지인 신창현감으로 있다가 역시 고향 오근으로 돌아오시고

4자 휘土+保(보)께서는 전라도 무안현감으로 충청도 보령으로 이임되시어 보령에서 영주한 일파가 있고 고향인 오창 농소리(탑리)에 돌아와 세거한 일파도 있다.



지주사공(*우주) 2자 휘吹(취)께서는 양성현감으로 후손이 오창 도산에 세거하고 있고



3자 휘演(연)께서는 그 후손이 연기 내판에 세거하고



4자 휘石+勵(려)께서는 후손이 철원에 집거하고 있다.



안렴사공(*사렴) 6자 휘湜(식)께서는 이조좌랑으로 퇴임후 鎭木(진천-목천)지간에 계시고



장자 휘自麗(자려)께서는 직장이시고

그의 장자 휘 (극)께서는 대구교수로 후손이 영동에 세거하고

2자 휘擲(척)은 절세되고

3자 휘 (린) 생원공 후손은 진천에 仍居(잉거)하고

4자 휘麗+ (려)께서는 현감으로 후손이 황간에 거주하고

5자 휘節(절)께서는 녹사로 무후했다.



좌랑공(*식) 2자 휘自荊(자형)께서는 서령으로 후손이 今증평읍(舊청안현 남면 죽리)에 세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분파되어 주거 내력을 약기한다. 그리고 후기 미수보에 입보자와 미수록 편보자를 합하면 세대수가 근어 2만 무려 10만명으로 추측된다.

이상은 세전집단을 간추려진 것으로 전국 각지에 산재하여 거주않는 곳이 없다.













▣ 김윤만 - 안렴사공파는 충청. 경기 일원에 대부분 세거하고 하는 편이네요.

▣ 솔내영환 -

▣ 김태서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