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PD(4)<三早三脫(삼조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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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02-22 02:28 조회1,735회 댓글0건본문
『용의 눈물』 연출자 김재형PD(4)<三早三脫(삼조삼탈)>
--『제가 늘 三早三脫(삼조삼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가지는 빨리해야 하고 세가지는 탈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三早(삼조)는 조기 기획, 조기 제작, 조기 순환이예요.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획을 하고 철저한
준비를 거친 후 제작해야 합니다. 순환이란 것은 1백회로 기획했는데, 나중에 시청율이 올라간다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1백50회로 늘리는 식으로 물타기 하는 것인데, 이러면 좋아하는 시청자도 외면하게 됩니다.
--三脫(삼탈)의 첫째는 탈 매너리즘입니다. 현재 3대 방송사의 스튜디오 여건이나 기계만 보면 세계적 수준에
와 있어요. 그러나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도 일상적인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 타성에 젖어 있다는
겁니다. 색다른 기획력, 이런 것이 부족해요. 두 번째는 탈 졸속입니다. 대하드라마가 어떻게 방영 3, 4개월
전에 촬영에 들어가냐는 겁니다. 적어도 2년 전에는 제작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춘하추동 사계를
가려서 제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드라마의 경우 정월 초하루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정월 초하루에 찍어야 해요. 그렇게 안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실감이 안 나니까요. 저희가 지금 일주일에 50분짜리 두 회분을
찍는데, 1백분이면 조금 모자란 영화 한 편이예요. 하루에 18시간 20시간 찍는데, 이건 아무나 못합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 겁니다. 제일 필요한 건 돈보다도 시간이예요.
--다음은 탈 스튜디오 메이킹입니다. 현재 스튜디오 안을 보면 벽이 네 개고, 각 벽마다 세트가 돼 있어
각 세트마다 찍는 각도는 한 곳 밖에 안 나와요. 36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요. 이제는 그림이 3백60도가
들어갈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해요. 네 벽을 풀어헤친 오픈 세트를 만들어 다 변화된 영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원에 대단위 오픈 세트를 현재 만들고 있어 다행입니다』
--사극 전문 연출의 길을 걸어온 만큼 김재형 PD가 지금까지 민속촌을 찾은 횟수만 해도 수천번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집안의 작업실에는 민속촌의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들이 벽에 빽빽이 붙어 있다.
매 장면마다 어디서 어떻게 찍을 것인가와 배우가 움직이는 動線(동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 콘티
작업을 할 때 이를 보며 구상을 하는 것이다. 「용의 눈물」 책임프로듀서인 윤흥식 부주간은 『김 PD는
인상과 달리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분』이라며 『야외 촬영에 대한 콘티작업을
사전에 그처럼 완벽히 하는 연출자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김재형 PD 스스로도 『어디는 계단이 몇 개라는 것 까지 민속촌 구석구석이 머리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말한다.
--『민속촌에 온 것이 제 반 평생입니다. 민속촌의 기초를 세울 때부터 왔으니까 눈 감고도 걸어 갑니다.
현장에 와서 촬영감독에게 「이거 어떻게 찍어야 해요」 그러면 연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극을 바로
이 민속촌에서 촬영했지만 저는 한번도 똑같은 장소와 각도에서 촬영해 본 적이 없어요. 가령 한명회 때
이렇게 했다 하면 절대로 같은 방법으로 안합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요. 그건 나밖에 모를 겁니다』
--그의 몸속에는 벌써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연출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다. 고려조의 시대상을 영상에 담아
보려는 것이다. 『이제 조선왕조는 다룰 만큼 다룬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번에 조선왕조 초기를 다루다
보니까 고려 말기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고려 말기만 봐도 당시 위화도 회군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돼
있었습니다. 에이 빌어먹을 이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 ×놈의 새끼들 하면서 자학하는 국민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를 다뤄보면 일반 시민이나 정치인이나 뭔가 교훈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고려조를 다루려 해도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우선 의상이 제대로 고증이 안돼 있
었는데, 얼마전 유희경 이화여대 교수팀이 고려시대의 의상을 완벽하게 고증해 줘 가능해 졌습니다. 다만
당시를 재현하는 세트에 문제가 좀 있는데, 시청자가 이 점만 좀 이해해 준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고려사를
한번 다루는게 저의 마지막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그에게 『언제까지 연출을 계속할 것인가』고 묻자 『일본의 구로사와키 캍은 연출자는 80이 넘어도
연출을 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싶은가』라고 하자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외길 한 평생을 연출에 미쳐서, 연출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기억해 주면 만족할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용의 눈물」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은 『잠 좀 푹 자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이방원 역의 유
동근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국장님을 볼 때마다 제가 저 나이에도 저런 순수한 열정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출전 : 월간 조선/ 1997년 7월호>
▣ 김은회 - 윤만 형님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충렬공의 시대(삼별초와 일본정벌등)및 려말의 긴박한 시대상을 재형씨의 작품으로 감상할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 김태서 - 몇일 만에 들어와 일일이 답 못해 드리니 이해 바랍니다
--『제가 늘 三早三脫(삼조삼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가지는 빨리해야 하고 세가지는 탈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三早(삼조)는 조기 기획, 조기 제작, 조기 순환이예요.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획을 하고 철저한
준비를 거친 후 제작해야 합니다. 순환이란 것은 1백회로 기획했는데, 나중에 시청율이 올라간다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1백50회로 늘리는 식으로 물타기 하는 것인데, 이러면 좋아하는 시청자도 외면하게 됩니다.
--三脫(삼탈)의 첫째는 탈 매너리즘입니다. 현재 3대 방송사의 스튜디오 여건이나 기계만 보면 세계적 수준에
와 있어요. 그러나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아직도 일상적인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요. 타성에 젖어 있다는
겁니다. 색다른 기획력, 이런 것이 부족해요. 두 번째는 탈 졸속입니다. 대하드라마가 어떻게 방영 3, 4개월
전에 촬영에 들어가냐는 겁니다. 적어도 2년 전에는 제작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춘하추동 사계를
가려서 제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드라마의 경우 정월 초하루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정월 초하루에 찍어야 해요. 그렇게 안하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실감이 안 나니까요. 저희가 지금 일주일에 50분짜리 두 회분을
찍는데, 1백분이면 조금 모자란 영화 한 편이예요. 하루에 18시간 20시간 찍는데, 이건 아무나 못합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 겁니다. 제일 필요한 건 돈보다도 시간이예요.
--다음은 탈 스튜디오 메이킹입니다. 현재 스튜디오 안을 보면 벽이 네 개고, 각 벽마다 세트가 돼 있어
각 세트마다 찍는 각도는 한 곳 밖에 안 나와요. 36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요. 이제는 그림이 3백60도가
들어갈 수 있도록 꾸며져야 해요. 네 벽을 풀어헤친 오픈 세트를 만들어 다 변화된 영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원에 대단위 오픈 세트를 현재 만들고 있어 다행입니다』
--사극 전문 연출의 길을 걸어온 만큼 김재형 PD가 지금까지 민속촌을 찾은 횟수만 해도 수천번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집안의 작업실에는 민속촌의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들이 벽에 빽빽이 붙어 있다.
매 장면마다 어디서 어떻게 찍을 것인가와 배우가 움직이는 動線(동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 콘티
작업을 할 때 이를 보며 구상을 하는 것이다. 「용의 눈물」 책임프로듀서인 윤흥식 부주간은 『김 PD는
인상과 달리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분』이라며 『야외 촬영에 대한 콘티작업을
사전에 그처럼 완벽히 하는 연출자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김재형 PD 스스로도 『어디는 계단이 몇 개라는 것 까지 민속촌 구석구석이 머리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말한다.
--『민속촌에 온 것이 제 반 평생입니다. 민속촌의 기초를 세울 때부터 왔으니까 눈 감고도 걸어 갑니다.
현장에 와서 촬영감독에게 「이거 어떻게 찍어야 해요」 그러면 연출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극을 바로
이 민속촌에서 촬영했지만 저는 한번도 똑같은 장소와 각도에서 촬영해 본 적이 없어요. 가령 한명회 때
이렇게 했다 하면 절대로 같은 방법으로 안합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만들어요. 그건 나밖에 모를 겁니다』
--그의 몸속에는 벌써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연출 욕심이 꿈틀거리고 있다. 고려조의 시대상을 영상에 담아
보려는 것이다. 『이제 조선왕조는 다룰 만큼 다룬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번에 조선왕조 초기를 다루다
보니까 고려 말기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고려 말기만 봐도 당시 위화도 회군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돼
있었습니다. 에이 빌어먹을 이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 ×놈의 새끼들 하면서 자학하는 국민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를 다뤄보면 일반 시민이나 정치인이나 뭔가 교훈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고려조를 다루려 해도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우선 의상이 제대로 고증이 안돼 있
었는데, 얼마전 유희경 이화여대 교수팀이 고려시대의 의상을 완벽하게 고증해 줘 가능해 졌습니다. 다만
당시를 재현하는 세트에 문제가 좀 있는데, 시청자가 이 점만 좀 이해해 준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고려사를
한번 다루는게 저의 마지막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그에게 『언제까지 연출을 계속할 것인가』고 묻자 『일본의 구로사와키 캍은 연출자는 80이 넘어도
연출을 하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싶은가』라고 하자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외길 한 평생을 연출에 미쳐서, 연출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기억해 주면 만족할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용의 눈물」이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은 『잠 좀 푹 자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이방원 역의 유
동근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국장님을 볼 때마다 제가 저 나이에도 저런 순수한 열정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출전 : 월간 조선/ 1997년 7월호>
▣ 김은회 - 윤만 형님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충렬공의 시대(삼별초와 일본정벌등)및 려말의 긴박한 시대상을 재형씨의 작품으로 감상할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 김태서 - 몇일 만에 들어와 일일이 답 못해 드리니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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