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김덕규의 양반선비고을 안동-국난을 극복한 김방경장군

페이지 정보

김정중 작성일03-02-24 01:19 조회1,469회 댓글0건

본문

국난을 평정한 김방경(金方慶) 장군



김방경 장군은 우리 고장이 낳은 위대한 명장이다.



장군은 오직 나라를 위한 뜨거운 충성으로 군사를 이끌고 외적을 막아 싸우던 당시의 고려는 몽고의 침입, 삼별초의 난, 왜구의 노략질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하여 나이 여든이 넘도록 나라 위해 몸바친 장군의 애국애민의 정신은 길이 후손에게 나라 사랑의 산 교훈이 될 것이다.



장군의 자는 본연(本然)이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본관은 안동이니 신라 경순왕의 후예 한림학사 효인(孝印)의 아들로 1212년 태어났다.



어려서 독서에 열중하고 학문을 닦아 소년시절 과거에 급제하여 열 여섯 살의 어린 몸으로 조정에 나갔다.



벼슬이 감찰어사를 거쳐 서북면 병마판관으로 있을 때 몽고병의 침입을 위동에서 막아 잘 싸워 이름을 드날렸다.



특히 장군은 성품이 충직하고 대범했으며 학문이 높고 근면 검소하여 매사에 부하 장병들의 모범이 되었다.



1263년(원종 3년) 전라도 진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고, 또 서북면 병마사로 부임하여 북쪽지방을 평안히 다스렸고 이어 벼슬이 올라 형부상서가 되었다.



1270년 강화도에서 장군 배중손이 삼별초를 이끌고 난을 일으켜 왕족인 승화후(承化候)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자 장군은 추토사(追討使)의 명을 받고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난군을 물리쳤고, 난군이 전라도 진도로 옮겨 항전을 계속하자, 1271년 몽고군과 합세하여 이를 정벌하였고, 탐라도까지 물러가 최후의 항전을 계속하는 난군을 끝까지 추적하여 완전히 섬멸하였다.



1274년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장군은 63세의 연만한 몸이지만 고려군을 이끌고 참가하여 대마도를 정벌하고 일본본토로 향하였다.



그러나 원래 육지에서만 살아 온 몽고군은 해전에 약한 데다가 도중에 풍랑을 만나 정벌을 포기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1281년 장군은 고려군의 도원수로 몽고장수 혼도, 다구와 함께 10만의 연합군을 거느리고 2차 일본정벌에 나섰으나 이번에도 대폭풍을 만나 한 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수많은 군사만 잃은 채 되돌아 왔다.



1295년 장군의 나이가 여든 넷이 되었다.



젊어서부터 전쟁터에서 지낸 장군이지만 벼슬을 사직하는 상소를 올렸다.



벼슬에서 물러난 장군은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새 임금을 모시고 충성을 다한 공으로 상락군 개국공(上洛君開國公)에 봉하여졌다.



1300년 8월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충선왕은 생전의 공을 기려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臣)의 벼슬을 내리고 신도비를 세우고 충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무덤은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다.















▣ 김영윤 - 정중씨 홈 지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염려 덕분에 만족스럽게 일정 마치고 무사이 귀가 했습니다

▣ 김항용 -

▣ 김항용 - 어제 하루 우리 홈을 지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덕분에 편히 잘 다녀왔습니다.

▣ 김은회 -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김윤만 - 상락군개국공(上洛君開國公)은 上洛郡開國公

▣ 김정중 - 윤만 대부님 잘 지적 하셨습니다 상락군(郡) 이 맞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