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혜전과 경주부윤 김시양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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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3-02-25 16:53 조회1,571회 댓글0건본문
숭혜전(崇惠殿)의 창시와 연혁----
신라 경순왕이 나라를 양국한 후에 옛 도읍의 유민들이
왕께서 베푼 덕의를 사모하여 월성(月城) 에 사당을 세워
영정을 모시고 매양 명절에는 고을의 아전이 삼반(三班)관속을 이끌고
제향을 올렸으니
이는 초나라 사람들이 일간모옥(띠로 지붕을 이은집)에서
초나라 소왕에게 제사 지낸 의에서 나온 것이다 (중략)
임진 왜란에 묘우가 불탔으며 그 후 부터는 제향 올리는 의식을
화상(畵像)으로서 하지 아니하고 나무로 만든 위패로 봉행 하였다
천계(天啓) 7년 인조5년1672년에
후손 김시양이 경주부윤으로서
본부(경주부)에 이르러
왕의 사당에 배알 하고 인하여 중건 하기를
계청(임금에게 아뢰어 청함)하였으며
본부의 유생 김성원 등으로 더불어 경주부의 동쪽 5리쯤 되는 금학산 아래
동천촌에 터를 잡고 사당을 옮겨 일신하게 중건 하였다 --후략--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김시양 선조께서 경주 부윤이셨군요.
▣ 김발용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하담 선조님께서 행하신 선조님에 대한 효심과 예절을 늘 본받고 있습니다. 비록 40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마음이야 다를 수 있사오리까?
▣ 김영윤 -
신라 경순왕이 나라를 양국한 후에 옛 도읍의 유민들이
왕께서 베푼 덕의를 사모하여 월성(月城) 에 사당을 세워
영정을 모시고 매양 명절에는 고을의 아전이 삼반(三班)관속을 이끌고
제향을 올렸으니
이는 초나라 사람들이 일간모옥(띠로 지붕을 이은집)에서
초나라 소왕에게 제사 지낸 의에서 나온 것이다 (중략)
임진 왜란에 묘우가 불탔으며 그 후 부터는 제향 올리는 의식을
화상(畵像)으로서 하지 아니하고 나무로 만든 위패로 봉행 하였다
천계(天啓) 7년 인조5년1672년에
후손 김시양이 경주부윤으로서
본부(경주부)에 이르러
왕의 사당에 배알 하고 인하여 중건 하기를
계청(임금에게 아뢰어 청함)하였으며
본부의 유생 김성원 등으로 더불어 경주부의 동쪽 5리쯤 되는 금학산 아래
동천촌에 터를 잡고 사당을 옮겨 일신하게 중건 하였다 --후략--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김시양 선조께서 경주 부윤이셨군요.
▣ 김발용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하담 선조님께서 행하신 선조님에 대한 효심과 예절을 늘 본받고 있습니다. 비록 40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마음이야 다를 수 있사오리까?
▣ 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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