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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 강화도의 충렬공 유허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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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2-25 09:21 조회1,8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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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충렬공 유허지 답사기





2월 23일 아침



어제는 주5일 근무제로 하루 쉬는 날이었습니다. 딸 아이는 엊그제부터 감기에 장렴에 시달려 하루종일 자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또 자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부슬부슬 봄안개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레저레 심난합니다.



오늘아침 하는수 없이 딸아이와 아들놈과 안 식구를 남겨놓고 혼자서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솔직히 가족을 남겨놓고 혼자서 떠나려고 하니 외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러나 집을 떠나면서부터 느끼는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소풍가는 기분입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는 보는 것도 많고 듣는 것도 많고,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무순) 재광, 만길, 성회, 명회 어르신께서 도착해 계시고, 이어서 우회 종친 내외분, 윤만 종친 내외분과 태경이가 속속 도착합니다.



한참을 추위에 떨다보니 강화도행 답사버스가 도착합니다. (무순) 재철(용진)종친님, 영윤 내외분, 항용 내외분, 발용 내외분과 아들, 은회 종친님, 상석 종친님께서 승차하고 계십니다.



항용 종친님의 사회로 간단한 인사소개가 이어지고, 비디오 시청이 이어집니다. 역사스페셜 <강화도는 1/3이 바다였다.> 테이프를 미리 구해 오셨다고 합니다. 답사 기분이 소록소록 새어납니다.





드디어 강화역사관에 도착합니다. 한바퀴 둘러보다 보니 <김공선필애민선정비>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뒤편에는 갑곶돈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좌둔전(제포, 와포)는 군사구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우둔전(이포, 초포)지역 답사가 이어집니다. 강화도의 칼바람을 맞으면 이포 언덕에 섰습니다. 화강석이 너무나 깨끗한게 최근에 보수한 듯 합니다. 화강석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빛바랜 돌을 줏어 들고 충렬공 할아버지를 생각합니다.



37세때 1248년 서북면 병마판관으로 계실때에 평안도 정주 앞바다 위도에 주민들을 이끌고 들어가셔서 방파제를 쌓고 개간을 하고 우물을 파고 하셨습니다. 1250년경 이내 강화도로 들어 오셔서 견룡행수 (국왕친위대의 지휘관)를 지내시면서 45세때 1256년에 제포와 와포를 쌓아 좌둔전을 만들고, 이포와 초포를 쌓아 우둔전을 쌓으셨을 겁니다.



광성보에 도착합니다. 광성보에 오르니 외성의 흔적인 옛 토성이 있어 밟아 봅니다. 한참을 오르니 용두돈대와 손돌목돈대가 나타납니다. 이곳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때 어재연 장군이 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곳입니다. 어재연 장군의 후임으로 김선필공께서 진무사로 이곳 광성보에 부임하였습니다.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전몰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고 표충비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김선필 찬 표충비는 없습니다. 눈을 돌려보니 무명용사 51인 묘역이 있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어재연 장군의 묘는 충북 음성으로 이장하였다 합니다. 아마도 이때에 김선필 찬 <광성제단 표충비>를 함께 옮겼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돈대가 마치 용의 머리 모양을 하였다고 하는 1679년에 축성한 천연적인 교두보 용두돈대와 원통하게 죽은 뱃사공 손돌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손돌목 돈대를 일별하고 내려옵니다.



전등사 아래 원두막가든에서 회 한접시와 (항용 종친님께서 가락동시장에서 떠 온) 소주 한잔에 얼었던 몸을 녹이고, 전등사에 오릅니다. 이곳은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라 하였다 합니다. 정화궁주는 후에 김방경 무고사건때 함께 연루된 것으로 보아 충렬공 할아버지와 교유가 있었던 듯 합니다. 또한 이곳 전등사에서 남쪽으로 2km 아래에는 충렬공 할아버지의 집터라고 전해오는 길상면 온수리 해령당터와 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고, 정족산에는 또한 별궁이 있던 곳이며, 군창(군량창고)의 흔적이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 정족산에는 업무상 또는 등산삼아 충렬공께서 자주 오르신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포리의 삼별초호국항몽유허비를 둘러보면서 항몽은 그래도 괜찮은데, 호국은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모든 분들이 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때부터 삼별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하셨듯이 마치 삼별초를 토벌하듯 열변을 토하시는 분이 여럿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지석묘를 둘러본 후,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가운데 강화읍내 고려궁지에 도착합니다. 강화부유수부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강화부사를 지내신 김오공, 강화유수를 지내신 김시양공과 김휘공, 정묘호란때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시고 강화부윤을 지내신 김자점공, 신미양요때 어재연 후임으로 진무사로 오셔서 <광성제단 표충비>를 지으시고 이내 강화부 유수를 지내신 김선필공께서 정사를 보시던 곳입니다. 흩날리는 빗방울을 피해가다가 보니 고려궁지가 나타납니다. 이곳은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도에 계시면서 자주 들리시던 곳, 고려궁터입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서울로 방향을 잡습니다. 재철 종친님의 <충렬공 신도비문의 상락君에 대한 고찰>과 <문영공휘순字비석문의 의문점에 대한 고찰>에 대한 해박한 설명이 이어지고, 이어서 재광 종친님의 안동 음수재, 문영공 묘역 역사에 대한 설명이 술술 이어집니다. 마이크는 드디어 항용 종친님께 돌아가고 앞으로 3,4,5월은 충렬공과 삼별초의 달로 정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자는 제안이 이어집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너무나 고생하신 은회 종친님과 항용 종친님께 두손모아 감사 드립니다.









▣ 김발용 - 광한리의 밤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맛깔 나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 김정중 - 女人네의 허리처럼 나긋나긋하며 도란도란 다정한 情人의 속삭임 같은 주회 대부님의 후기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함께 감화도를 답사하는 듯 한 자상한 글에 동참하지 못한 설움이 솟아남니다.



▣ 김윤만 -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떠나려하니 외롭고 쓸쓸하였다고 표현한 대목에서 가슴 찡하니 주회 아우님의 가족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후기 감사하구요.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먼길 피곤하실 텐데 상세한 후기 쓰시느라 노고가 크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우회 - 보고글 항상 써 주시니 그저 감탄만 할뿐 감사 감사입니다.

▣ 김항용 - 하루를 넘기고 이제서야(2. 26) 글을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윤 - 잘 보았습니다 그 뒤 잠실 뒤풀이 이야기 썼다가 컴퓨터가 다운되는 실수로 못 올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pc방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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