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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박중손(朴仲孫)과 김수령(金壽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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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03-04 05:54 조회1,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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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손(朴仲孫)

1412(태종 12)∼1466(세조 1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경윤(慶胤), 호는 묵재(默齋).

찬성사(贊成事) 강생(剛生)의 손자이며, 교서관정자 절문(切問)의 아들이다.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박사가 되고, 부수찬·지제교를 거쳐 사인·집의·지병조사(知兵曹事)·동부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지면서 병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세종의 아들로 영빈 강씨(令嬪姜氏) 소생인 사위 화의군 영(和義君瓔)이 수양대군을 반대하다 귀양가게 되어 한때 난처한 입장에 빠졌으나, 이어 한성부윤에 임명되었다.

그뒤 대사헌, 공조·이조·형조·예조의 판서를 거쳐 밀산군(密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세조초에 좌찬성에 승진되었고 세 차례에 걸쳐 고시관이 되어 많은 인물을 등용시켰다. 시호는 공효(恭孝)이다.







김수령(金壽寧)

1436(세종 18)∼1473(성종 4).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이수(#이96#수04), 호는 소양당(素養堂).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이었던 숙(潚)이며, 어머니는 호조판서 안숭선(安崇善)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집현전수찬에 승진되고 이어 병조좌랑·헌납·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458년부터 1462년까지 함길·평안·강원·황해·충청 5도의 체찰사인 한명회(韓明澮)의 종사관이 되어 세조의 변방정책 수행에 주요한 소임을 담당하였다.

1463년 집의에 오르고 그뒤 동부승지, 1465년에는 좌승지를 거쳤다.

1468년 호조참의로 세조의 《주역구결 周易口訣》 간행에 참여하였다.

1469년(예종 즉위년) 공조참의가 되고 이어 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1470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대사간 재직시에는 성종에게 경연을 권고하는 명상소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1471년 성종을 보필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뒤에 공조참판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사재(史才)가 있어서 1458년에는 《국조보감 國朝寶鑑》 편찬에 참여하였고, 1463년에는 양성지(梁誠之)·서거정(徐居正) 등과 함께 《동국통감》을 편찬하였으며, 성종 초기에는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시호는 문도(文悼)이다.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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