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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만취당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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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05 18:09 조회1,3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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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위당기 -3-



노인들의 목청 돋운 영남사투리는 아직도 지칠 줄을 몰랐다. 나는 담배생각을 더 이상 찍어누르고만



있을 수 없어 통로로 나왔다. 막차 여서 인지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객실 밖으로



나갈 작정을 허물고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빈자리를 향해 다가갔다. 객실 밖 바람받이에 서서 도둑담배



피우듯 하느니 이왕이면 자리에 편히 앉아 느긋하게 한 대 피우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빈 좌석 맞은편에는 부부사이로 짐작되는 젊은 한 쌍이 ㅅ자 꼴로 서로 기대어 잠에 떨어져 있었고



빈 좌석 옆 창 쪽에는 점퍼차림의 청년이 마치 거울이라도 들여다보듯 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빈 자립니까?"



내 물음에 청년은 깜짝 놀라며 창유리에서 거둔 눈으로 나를 치켜다보았다. 그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진 빈자립니다만."



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맥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나이를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물 대여섯쯤 나 보였다.



"앉으십시오. 아직은 자리 임자가 없습니다."



청년은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기 얼굴에 꽂혀 있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아까보다는 좀 힘이 들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청년에게 실례를 범하고 있는



눈길을 급히 거두고 그의 옆에 앉았다. 내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청년이 물었다.



"어디서 타셨는데 좌석표를 끊지 못했습니까?"



"저쪽에 내 자리가 있어요. 그런데 노인네들과 같이 앉게 된 자리라 담밸 필 수가 있어야죠."



"말하자면 잠시 피노 오신 셈이로군요?"



청년의 웃음에도 역시 힘이 없었다.



"피노라니요?"



"난리를 피하는 게 피난이니까 노인을 피하는 건 피노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내가 말 끝에 웃음을 달자 그도 씨익 입웃음을 지었다. 이 친구가 보기와는 달리 유머 감각이



제법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담배갑을 꺼내 그의 턱 밑으로 내밀었다.



"전 담밸 안 합니다."



청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혼잣말처럼 그러나 청년을 겨냥해



한 마디 했다.



"내 담배연기 때문에 피연가는 사람이 안 생길지 모르겠군요."



내 말에 청년은 그냥 입웃음만 날렸다.



"혐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냥 앉아 있고 그렇잖으면…."



나는 그의 속을 알 수가 없어 다시 입을 열어야만 했다.



"그깐 담배연기쯤이야 문제도 안 됩니다."



나는 청년을 말뜻을 헤아릴 수가 없어 의아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훑었다. 그러자



청년은 지체없이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저 말입니다. 만 오 년 동안이나 독가스 속에서 살았습니다. 공기를 마시고 산 게 아니라



독가스를 마시고 살았다 이겁니다. 그리고 그 독가스를 마시는 대가로 월급이라는 걸 탔었지요."



청년은 잠시 쉬는 입에 그 독특한 웃음을 올렸다. 나는 청년의 얘기로 그가 지금 처해 입장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포스겐가스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독가습니다."



청년은 포스겐가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포스겐은 인체에 아주 해로운 강력한



질식성 가스로 유기합성의 원료·독가스 등으로 쓰이는 무색 기체인데 그 농도가 약할 때는 마른 풀에서



나는 냄새를 풍기는 정도지만 농도가 짙을 때는 질식사까지도 하게 되는 무서운 것이라 했다. 또 아무리



농도가 흐리다 하더라도 그것을 장기간 맡게 되면 순환기장애를 일으키게 되며 폐수종(肺水腫)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전 플래스틱 공장에 다녔었습니다. 제품 제조공정에서 그 가스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스의 냄샙니다. 인체에 해로운 가스니까 그 냄새도 고약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질 않다 이겁니다.



그놈은 농도가 약하면 그저 건초냄새를 풍기는 정돕니다. 그런데 우린 여태 그 건초냄새가 그렇게



해로운 건질 전혀 몰랐다 이겁니다. 그래 결국은 그놈의 건초냄새를 만 오 년 맡고는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지 뭡니까.



병원에서 하는 말이 그 포스겐가스 때문에 폐수종에 걸렸다는 겁니다."



"저런… 산재보험에는 들었었나요?"



"들긴 들었었지요. 그래 산재보험의 혜택도 받았고 생계보조금이라는 것도 탔지요. 그러나 병원에서



산재보험 환잘 어떻게 취급하는지 압니까? 또 생계보조금이라는 것도 병아리 오줌만도 못하다



이겁니다. 아십니까?"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담배연기를 내뿜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담뱃불을



끄자 그가 말했다.



"공연히 신세타령이 심했나 봅니다. 포스겐가스를 만 오 년이나 맡은 몸이니까 그깐 담배연기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길 하려다가 그만 선생님 담배맛만 떨어지게 했습니다."



"아니, 다 태우고 끈 거요. 그러나저러나 이제 완치가 됐나요?"



"완치요? 전 병원생활에 넌덜머리가 났습니다. 아니, 병원도 병원이지만 서울이라는 데가 죽도록



싫어졌다 이겁니다."



그는 또다시 입웃음을 흘렸다. 나는 그의 핼쓱한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청년의 얼굴빛이



시찾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 올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어쩌다 고향을 두고 서울에서 죽게 되는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국 당신이 그렇게도 싫어했던 서울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마치 서울을 떠나지 못할 바에야 더 이상 서울에서 숨을 쉬지 않겠다는 듯이.



청년의 서울얘기는 끝이 없었다. 그에게는 내가 모르는 서울얘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나는



그 청년보다도 곱쟁이가 넘는 세월을 서울에 살았으면서도 내가 아는 서울얘기를 그에게 들려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서울얘기는 서울얘기가 아니라 썩은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살다가 지쳐버린 사람에게 그 썩은 얘기를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빈자리의 임자는 내가 내릴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은회 - 잘 읽었습니다.

▣ 김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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