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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만취당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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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06 18:17 조회1,5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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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4-



시오릿길이 왜 이다지도 멀기만 할까. 나는 다시 불안해지고 말았다. 혹 길에 홀린 것이나 아닐까



싶어서였다. 이제 내게는 낡은 유행가를 흥얼거릴 여유마저도 없었다. 동녘 하늘의 샛별이 길잡이를



해주건만 이제는 그 샛별조차도 믿을 수가 없었다. 별에만 의지해 아군의 진지를 찾아가는 낙오병의



심정이 꼭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역 광장을 빠져나올 때 너 댓명의 여인들이 내게 미끼를 던졌었다.



그 미끼는 ‘따뜻한 방’과 ‘예쁜 아가씨’였다. 그때 ‘따뜻한 방’ 하나를 덥썩 물지 못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후회막급이었다. 이니 고향 읍의 이름과 함께 합승요금이 오천 원 이라고 외쳐댄 택시



운전사의 그물을 피했어야 옳았다. 그 역에서 고향 읍까지는 택시가 아무리 기를 써도 미터 요금은



오천 원 미만의 거리였다. 그렇지만 심야 운행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택시 운전사는 네 명을



태우고 한 사람 앞에 오천 원씩의 요금을 받아냈다. 사실 나는 그 택시를 타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한 사람만 타면 떠난다고 외쳐대는 운전사의 말에 나는 그 빈자리를 남에게 빼앗길까봐 잽싸게 차에



올랐다. 잠이야 어디서 자건 마찬가지가 아니냐 싶었던 것이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가운



법이라고 했는데 이왕이면 한 발짝이라도 고향 가까운 곳에서 자는 게 좋지 않으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택시로 고향 읍에 닿고 보니 그곳에서는 잠자리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여관이나



여인숙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기관의 숙직실들까지도 사람사태가 나 있다고 내가 들른 여관 중인이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잠꼬대를 하는가 싶어 따지듯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선잠으로 게슴츠레해 있던 여관주인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댁은 뭐때미 온 사람유?”



“볼일이 있어 서울에서 왔습니다만, 왜요?”



나의 볼멘소리에 여관주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봉한 채 한동안 내 행색을 훑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행하게도 그의 눈에는 내가 수상쩍게 비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턱짓으로 여관사무실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상쇠가 꽹과리를 치는 장면이 클로스엎 된 포스터였다.



군(郡) 대항 농악경연대회의 포스터였다. 그야말로 가던 날이 장날이었다.



“볼일루다 오셨다니 누가 있을 게 아뉴. 일가면 일가, 친구면 친구가.”



포스터 위의 대회날짜에 눈길을 박은 채 낭패해 있는 내게 여관주인이 귀띔을 해주었다.



“실은 이 읍내에서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동촌에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럼 동촌으로 가면 될 거 아뉴. 읍내는 증말루 잘 데가 없슈.”



“하지만 이 밤중에■ 어디 좀 끼어 잘 수도 없겠습니까? 숙박비는 제대로 내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지갑을 꺼내 만원권 한 장을 뽑아 그의 잠옷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남들이 흔히 쓰는



수법을 흉내낸 것이었다. 그 수법은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숙박비는 숙박비대로 따로 드리겠습니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소, 하는 뜻의 웃음을 나는 여관주인에게 날렸다.



“아니 이 냥반이! 이런다구 읎는 잠짜리가 나오는 줄 아나배.”



그는 내가 넣어준 돈을 꺼내 내 파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참으로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 냉큼 물러설 수도 없었다



“숙박비는 숙박비대로 따로 낸다니까요.”



아무리 돈 값이 똥값이라 해도 하룻밤 끼워 재우고 그만한 돈을 받는다면 시골 여관의 주인으로서는



횡재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끝까지 분명했다.



“이냥반이 증말루 답답한 양반이네. 돈 아니라 대통령을 시켜준대두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유.”



“안 될 일도 아니잖습니까!”



“읎는 방을 워띠키 맨들란 말유? 그라지 말구 얼렁 동천으루 가유. 동촌이면 예서 시오릿길인데 글루



가서 주무슈.”



“이 밤중에 어떻게 사람을 깨운단 말입니까!”



실은 동촌이 내 목적지이긴 했지만 그곳에 친척이나 친지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화가 치밀어



퉁명을 부리고 말았다.



“증 그렇게 사람 깨우기가 미안하거들랑 맘대루 하슈. 그 동넨 숲이 좋으니께 그 숲속에 들어가



한둔을 하든지■ 좌우간 우리집에선 얼렁 나가슈. 나두 인제 눈줌 붙여야 하닝깨.”



여관주인은 현관문을 밀쳐 열고 선 채 내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진피 부릴 수가



없었다. 진피 부려서 될 일도 아니었다. 나는 현관문으로 다가서며 동촌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여관주인은 한 푼 장사에 두 푼 밑져도 팔아야



장사인데 재울 수만 있으면 왜 손님을 받지 않겠느냐고 자기 입장부터 밝힌 뒤 자세하고도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다.



길을 일러준 쪽이나 그 길을 가는 나나 실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뻔한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뻔한 길이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초조감과 불안감은 한 걸음 한 걸음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차로 심해졌다. 밤새도록, 아니 몇 날 몇 달을



걸어도 목적지에 닿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이렇게 밤길을 걸어야만 될 운명에



처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홀연히 샛별이 사라지고



말았다. 샛별뿐만 아니라 그 언저리에서 깜빡거리던 별들까지도 일시에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한껍에 덥썩 동녘 하늘을 베어먹은 느낌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멈추었다기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뒤돌아서고 싶었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벌들을 삼킨 아가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괴물의 아가리가 아니고 숲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선 내 걸음에 숲은 키를 키웠고



그 숲에 동녘 하늘이 가리게 된 것이었다. 서림이다, 나는 반가워 소리지르고 뛰었다. 숲 특유의 냄새가



물씬 코끝으로 몰려들었다. 그 동넨 숲이 좋으니깨 그 숲 속에 들어가 한둔을 하든지■ 여관주인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남은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내게 일깨워주는



소리였다.



나는 조금은 여유가 있는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포장된 이차선의 국도는 숲 앞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휘어져 있었다. 그 길이 숲을 외면하고 달아나듯 나는 이제 그 길을 버려야만 했다. 숲 뒤에 웅크리고



있을 동촌 마을이 내 목적지였고 국도는 그 마을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포장도로가 휘어진



지점에서 나는 어렵잖게 한 가닥의 조붓한 길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게끔 세워둔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류장 덕택이었다. 하기야 그 지점에서 숲을 관통하는 샛길이 시작된다는



여관주인의 자세한 설명의 덕이 그에 앞서는 것이긴 했다. 그의 말로는 정류장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숲길이 끝나면 그곳이 바로 동촌 마을이라 했다.



나는 숲길로 들어섰다. 동굴 속처럼 캄캄절벽인 그 숲길 들머리의 한 돌부리가 느닷없이 나를



고꾸라뜨렸다. 숲은 처음부터 나를 그렇게 환영하지 않았다. 나는 라이터로 불을 일으켜 시계를 본 뒤



주위를 살폈다. 한둔할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넉넉잡아 네 시간만 고생을 하면 햇볕을 쪼일 수



있었으므로 나는 한층 더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어렵잖게 한둔할 만한 자리도 물색할 수 있었다. 등을 기댈 만한



바위가 박혀 있는 곳이었다. 그 바위를 등받이 삼아 앉으면 바로 코 앞이 숲길이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화톳불을 피우기로 했다. 숲 바닥에는 검불이며 제풀에 부러져 떨어진 삭정이며 또 한



마들거리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불을 밝힐 필요도 없었다. 팔을 뻗어 더듬기만 해도 얼마든지



그런 땔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화톳불을 피우자 바람을 탄 연기 때문인지 마을의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개들 중에



만취당 개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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