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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만취당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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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07 21:37 조회2,0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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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 -5-





만취당은 내가 태어난 집이기도 했다. 그 집터는 정승 셋을 나게 하는 명당이라 했다.



화톳불의 가세 좋은 불길과 함께 전설 같은 얘기가 피어올랐다.



내 오대조 때의 실화라 했다. 그분은 딸 하나에다 그 밑으로 아들이 형제였다. 그런데 그 고명딸이



출가해 첫아이를 낳으려고 친정으로 오자 그는 딸의 가마를 대문 안에 들이지도 못하게 하고 쫓다시피



시집으로 되돌려보냈다. 만취당에서 외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승 셋이



난다는 명당 만취당에서 그때까지 이미 정승이 둘이나 났으므로 이제는 정승자리가 하나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데 그 한 자리가 외손자의 몫이 될까 저어했던 것이다. 만약 외손자가 만취당에서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태어난 집터의 음덕으로 정승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결국은 사돈네 가문에다 그



벼슬자리를 내준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첫아이를 해산하러 친정에 왔다가 가마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되돌아가던 그 딸은 마을 빠져나와 서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통이 일어



가마를 세우게 되었고 급기야는 숲 속에서 분만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 가르기도 전에 태아뿐만



아니라 산모까지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일로 정승자리는 사돈네 가문에 빼앗길 염려가 없게 되었지만



딸과 외손자(태아는 사내였다)를 잃게 되었고 사돈네 하고도 척을 지게 되고 말았다.



그때 그렇게 지킨 정승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얘기였다. 아버지는 내가 그



정승자리에 오르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만취당’이라는 당호가 품고 있는 뜻을 내게 일러준 그 날 이후,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정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느 에미나 느 누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그걸 알어야 하능겨.



너 하나 잘 되는 걸 볼라구 그라능겨. 그라니께 넌 죽어라구 공부만햐. 공부만 열심히 하믄 반다시



정승자리에 오르게끔 되어 있응께. 넌 만취당에서 태어났단 말여. 공부만 열심히 하믄 정승이 되는 건



틀림없는 사실여. 그렇게만 되믄 그게 바루 느 에미나 느 누이한테 보답하는 질(길)이 되능겨.“



아버지의 정승타령은 노상 입에 붙어 있었다. 더구나 술이라도 한잔 걸쳤다 하면 그 정승타령은



도무지 끝이 없었다. 반복되는 녹음 테이프와 다름이 없었다. 또 평소와는 달라 술 취한 아버지는



꽤나 너그러워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정승타령에 쐐기를 박을 수도 있었다. 제발 그만 하세요.



정승은 옛날 벼슬이라구요. 아무리 태어난 집터가 좋대두 정승이라는 벼슬이 없는 세상인데 어떻게



정승이 된단 말예요. 내가 쐐기를 박으면 아버지는 머리부터 흔들고 나서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인석아, 넌 중학생이여, 핵교서 그런 것두 안 갈치냐? 옛날 정승벼슬이 지금은 뭔 벼슬인지 그런



것두 안 갈치냔 말이다. 니가 공부만 잘 하믄 옛날 정승하구 맞먹는 요즘의 정승자리에 오르게 된단



말여 내 얘기가 뭔 얘긴지 몰라? 이쯤 되자 나도 순순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집은



이십 년도 더 지난 옛날에 남의 집이 됐잖아요? 그러니 그 동안 그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씀은 그 사람들 중에서 그 명당 집터의 음덕을 입어 장관 혹은



국무총리가 될 사람이 없으라는 법이 없단 말예요. 누가 알아요? 대통령감이 태어났는지도. 아버지는



또다시 고개를 힘차게 젓고 나서 언성을 높였다. 인석아, 명당터에서 태어났다구 누구나 다 정승자리에



앉는 게 아녀. 가문하구 명당하구 궁합이 맞아야 하는 겨. 우리 선조들께서 대대로 그 집을 지키구



살아오셨는데 그 동안 그분들이 부린 종이 얼마나 많았겠냐. 그런데두 그 집에서 태어난 종눔의



자식들은 종노릇베끼 못 했다 이런 말여. 명당에서 태어나두 가문이 그러면 맬짱 헛일리라는 얘기여



그러니께 내 얘기는 지금 지깐 눔이 우리 만취당을 차지하구는 살어두 맬짱 헛일인겨. 정승은 켜녕



정승 발뒤꿈취를 구경할 수 있는 눔두 태어나덜 않는단 말여. 내 말이 뭔 말인지 알아? 내가 맥이 빠져



입을 봉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다른 방법으로 정승타령을 해댔다. 내가 자야 니가 공불 한다아 그말이냐?



그렇다면 자야지. 암 자구 말구. 내가 자야 니가 공불 하구, 내가 공불 해야 정승이 되니까 내가 자야지.



아암 자야 되구 말구. 그러나 인석아, 이거 하나는 명심해야 햐. 뭘 명심해야만 하는고 하니 정승이



됐다구 해서 이 애빌 우습게 보지 말란 말여. 사실은 말여, 내가 이 지경만 안 됐어두 정승은 니 차례가



아니라 내 차례였어! 늘 그러듯 아버지는 이 대목에서 미간을 잔뜩 좁혔다. 울음을 짜내려는 것이었다.



이제 그 만 주무세요. 아버지 말씀 명심하겠어요. 그러니 어서 주무세요. 나는 아버지의 눈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야만 잠자리에 들었다. 눈물과 함께



털어놓는 그 푸념은 어린애의 잠투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이 지경만 안 됐어두 정승이 되는 건데.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돼 가지군 신세를 망쳤는지. 이 지경만 안 됐으믄 집두 안 날리구■. 아버지는



당신의 오른손을 눈앞에 갖다대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 손은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잘려나간



조막손이었다. 휴전이 되던 바로 그 해, 논두렁에 굴러다니던 수류탄을 주워와 분해하다가 그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그때 이후에 일어난 아버지의 얘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중학 삼 학년이었던 아버지는 학교를 작파하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지냈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뜻이기도 했는데 할아버지는 이대 독자인 아들이 남들의 놀림가마리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전답이며 임야 등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가 있는데다 당시 휴전이



됐다고는 하나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때였으르로 외아들이 조막손이가 되어 군대에 뽑혀갈



염려가 없게 된 것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물려받을 재산이 많고



가문도 좋은 데다 난세에 병역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남부럽잖게 좋은 규수를 아내로



맞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결혼한 것은 열 여덟 살 때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손자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만약 여든까지 수 하셨다 해도 손녀만 셋을 볼 뻔했다.



어쨌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바쁘게 밖으로 나돌기만 했다. 때문에 해가 갈수록



상속받은 재산이 차츰차츰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는 집까지 남에게 넘기고



말았다.









▣ 김항용 - 종료편이 나오면 자료실에 올리겠습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정중 - !!!

▣ 김은회 -

▣ 김윤만 -

▣ 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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