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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명(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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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섭 작성일03-03-08 02:30 조회1,5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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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보시고 김수녕이라는 분이 남긴 글이나 묘갈명(墓碣銘)에 추가시켜주셨으면 합니다.





본인의 직계조인 전의이씨(全義李氏) 이함장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함장(李 言咸 長)의 계보>

이도(李棹:統合三韓開國翊贊 二等 功臣/三重大匡太師/전의이씨시조)▶ 이강(李康:精勇衛大將軍)▶ 이수영(李秀英:兵部尙書)▶ 이문경(李文景:千牛衛大將軍)▶ 이윤관(李允寬:刑部侍郞)▶ 이순(李順:保勝別將)▶ 이천(李仟/李阡:鷹揚軍大將軍)▶ 이자화(李子華:選部典書)▶ 이득영(李得榮:典法佐郎)▶ 이구직(李丘直:開國原從功臣/公州牧使)▶ 이정간(李貞幹:江原道道都觀察使/中樞院事/孝靖公)▶이사관(李士寬:江原道觀察使,京畿道觀察使,漢城府尹/全城府院君)▶ 이함장(李 言+咸 長:文科及第/佐翼原從功臣/江原道觀察使,慶尙道觀察使,禮曹參判)▶

●1남(男) 이수치(李壽稚)

●2남(男) 이수남(李壽男: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좌리공신(佐理功臣) 전산군(全山君) 이다.)▶ 이한원(李翰元:통정대부 양주목사(通政大夫楊州牧使), 증 자헌대부 공조판서(贈 資憲大夫工曹判書) 정국공신(靖國功臣) 전성군(全城君) 이다.)

●3남(男) 이수아(李壽兒)

●4남(男) 이수해(李壽孩)

●5남(男) 이수영(李壽영)





김수녕은 아래 묘갈명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承旨與壽寧善哭且言曰當銘曰 승지(이수남)가 (김)수녕과 가까이 지내는 터인데 찾아와서 곡하면서 지명을 지어 달라고 청하기로 다음과 같이 명을 엮는다.



김수녕과 이수남은 평소에도 교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67년(세조 13) 명나라 황제로부터 건주위(建州衛)의 정벌을 지원하라는 논지(論旨)가 있어 조정에서 예조참판(禮曹參判) 이함장[李 言咸 長:1410(태종 10) ∼ 1467(세조 12)]을 선위사(宣慰使)로 삼아 안주(安州)에 가서 명(明)나라 군대를 맞이하라고 하니, 병(病)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하다가 09월 20일(임오)에 58세(五十八歲)를 일기(一期)로 안주(安州)에서 졸하였다. 그해 12월 28일(경신) 부평(富平)의 동쪽 수탄리(水呑里)에 예장(禮葬)하였는데 이함장(李 言咸 長) 묘갈명(墓碣銘)은 가선대부 중추부첨지사 겸 춘추관동지사 김수녕(嘉善大夫 中樞府僉知事 兼 春秋館同知事 金壽寧)이 짓고(撰), 글씨는 그의 둘째아들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로 있던 이수남(李壽男)이 썼다(書).



김수녕(金壽寧:1436-1473)은 구안동인(舊安東人)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복창군(福昌君)으로 시호는 문도(文悼)이며 이수남(李壽男)은 좌리공신(佐理功臣) 전산군(全山君)으로 시호는 양간(良簡)이다.



김수녕(金壽寧)은 1468년(세조 14) 무자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승진하였고 1469년(예종 01) 02월 26일(신해)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임명되었다. 1471년(성종 02) 4월 6일(무신) 공신회맹에 순성좌리공신 가선대부 행 사간원대사간 겸 동지춘추관사 복창군(純誠佐理功臣 嘉善大夫 行 司諫院大司諫 兼 同知春秋館事 福昌君)으로, 이수남(李壽男)은 순성좌리공신 가선대부 행 의흥위상호군 전산군(純誠佐理功臣 嘉善大夫 行 義興衛上護軍 全山君)으로 참여하였다.





이함장(李 言咸 長) 1410(태종 10) ∼ 1467(세조 12)

조선의 문신(文臣). 자(字)는 여신(如神). 본관은 전의(全義). 효정공(孝靖公) 정간(貞幹)의 손자. 전성부원군(全城府院君) 사관(士寬)의 아들.

1435년(세종 17)에 성균시(成均試)에 1438년(세종 20) 29세에 문과(文科)에 각각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등용되었다. 그후 치평요람(治平要覽) 편수(編修)에 참여하였고,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1450년(세종 32)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을 다녀온 후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었으며, 문종이 즉위하여 경기도사(京畿都事)로 나갔다가 1452년(문종 02)에 세종실록 편수 기주관(世宗實錄編修記注官)이 되고 1454년(단종 02) 성균관 직강(成均館直講)으로 문종실록(文宗實錄)의 찬수에 참여하였다. 1455년(단종 03)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이 되고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1457년(세조 0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으며 이어 영흥대도호부사(永興大都護府使), 길주목사(吉州牧使)를 지내고 1462년(세조 07)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가 되었다.

이듬해인 1463년(세조 08) 사은사(謝恩使)로 명에 다녀온 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나갔다가 1465년(세조 10)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이르렀고, 1467년(세조 12) 선위사(宣慰使)로 명군을 맞아 안주(安州)에서 임무수행중 졸(卒)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





이수남(李壽男) 1439(세종 21) ∼ 1471(성종 0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인(子仁). 효정공(孝靖公) 정간(貞幹)의 증손자, 전성부원군(全城府院君) 사관(士寬)의 손자, 예조참판 함장(言+咸 長)의 아들이다.

1455년(단종 03) 17세의 약관으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458년(세조 04) 20세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 2인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임명되었으며 대교(待敎)를 거쳐 봉교(奉敎)로 전보되었다.

1460년(세조 06)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가 되고, 1462년(세조 08) 성균관 주부로 승진되었고 사헌부 감찰, 예조좌랑·이조좌랑, 병조정랑,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를 거쳐, 1465년(세조 11) 문과중시(文科重試)와 발영시(拔英試)에 연이어 급제하고 1466년(세조 12) 세조의 명을 받아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동부승지(同副承旨)·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좌승지를 역임하고 성종 즉위 후인 1469년에는 병조참의가 되었으며,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으로 전산군(全山君)에 봉(封)하여졌다. 이해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으나 33세로 요절하였다.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양간(良簡)이다.

이수남(李壽男)은 총민(聰敏)하고 경기(經記)하며, 또 사자(寫子)를 잘하여, 당시에 칭예(稱譽)가 있었다. 진취(進取)에 예민하여 비록 일찍 달관(達官:벼슬이 높은 관리)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만의(滿意)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







예조참판 이함장의 묘갈명 원문을 다음과 같이 그대로 올린다.





禮曹參判公 諱言咸長 墓碣銘

예조참판공 휘함장 묘갈명





公諱⊙함長字如神姓李氏其先起全義麗祖之南征也有名棹者以禮迎⊙호王師最有勞策勳官至太師三重大匡自太師以來衣冠赫世蔚然相望入本朝曰丘直事 太祖有原從之功判公州牧使於公爲曾大父牧使生貞幹事母盡孝老而能慕 世宗嘉奬進資憲大夫爲中樞院使加賜⊙궤杖卒諡孝靖孝靖生士寬官漢城府尹用第三子平簡公勳贈純忠輔祚功臣議政府右議政全城府院君全城之子凡七科目賢者五公其一也⊙비韓氏西原府院君文簡公尙敬之女封上黨府夫人亦以五子故也 永樂庚寅十二月庚戌生公少而俊秀老益淳謹日事時書痛刮去豪習中乙卯成均試正統三年戊午射策選藝文檢閱庚申丁內艱預修治平要覽擬承政院注書再轉至忠淸都事時觀察使申近出且老不事事公洗心奉職興滯補蔽一道賴之入爲司憲府監察 世宗庚午以聖節使書狀官赴朝還拜吏曹佐郞公建言王子與公主親則一爾今有駙馬死則祿不及公主非厚意也請自今王女夫死者祿以終其身 文宗嘉納立定其法再轉爲京畿都事甲戌改成均直講兼職史官預撰 文宗實錄進拜司憲府掌令三遷又重爲本職世祖二年丁丑再試中第拜司憲府執義累遷出爲永興府大都護能廉平不苛惠政在民至今永人皆曰我有德繇僉知中樞出兼江原道觀察使癸未以謝恩使奉表如京旣還階嘉善觀察慶尙道 世祖十年乙酉拜禮曹參判丁亥秋 帝遣使諭助伐建州衛世祖命公爲宣慰使歸⊙아安州屬公疾聞 命因往九月壬午卒于安州客館享年五十八訃聞 上驚悼諭所過護喪 賜賻有加以其年十二月庚申禮葬于富平治之東水呑里原公天資⊙침毅莊重簡默修身治官周愼有槻法自公少時雖在倉卒無疾言遽色匡坐終日望之儼然遇子弟衣冠⊙내見至於輿臺待之至誠不敢加以⊙만語剛中小心不喜賓朋馳逐居家斥利不爲立産業基址其爲官事則小而不放大而不⊙파從容區處事己卽退憺然若無情者殆所謂君子人也 公嘗再佐史幕秉三憲綱爲大府爲觀察二道必務持正不少⊙굴法動遵大⊙체靜而無煩標望臨一時皆以坐鎭雅俗期之天之⊙구不大顯融惜也 娶蔚山郡事李伯臣女生五男一女男長壽稚戶曹正郞次壽男承政院左承旨三捷賢科有文名次壽兒典牲暑參奉次壽孩副司直次壽⊙영蔭授從仕郞女適務功郞朴仁烈正郞娶參判尹欽女生三男一女女適啓功郞申從沃餘幼承旨娶縣監朴秀林女生二男參奉娶直講金昇女生二男司直娶華山君權槃女生三男從仕郞娶佐郞李永弘女生一男務功郞生一女皆幼 承旨與壽寧善哭且言曰當銘曰

植桐千歲特不攀⊙예末之茂惟根深嗟李之門德業滋慶積之發桂五枝公於雁行秀白眉莊重寡言而有儀學之⊙제身行範俗⊙악立烏臺姦自伏彈琴單父春日長宣化至今民愛棠⊙민勉從事不自惜病惟奔命爲可戚志局於位施未豊惟有遺德垂無窮公胤旣多更有孫滿庭袞袞生蘭蓀譬如稼者種種⊙륙日至而熟皆可食我名不徵刻此石用告後人⊙욱無⊙역

嘉善大夫中樞府僉知事兼春秋館同知事金壽寧撰壽男謹書



<한자(漢字) 풀이>

⊙함-(言咸) 정성

⊙호-(食高) 호궤하다(餉軍, 勞之)

⊙궤-안석

⊙비-죽은어미, 어미

⊙아-맞다

⊙침-가라앉다. 빠지다. 잠기다.

⊙내-이에. 곧. 이르다.

⊙만-속이다. 헐뜯다. 게으름을 피우다.

⊙파-두려워하다.

⊙굴-굽히다. 복종하다.

⊙체-(身豊) 체(體)의 속자(俗字)

⊙구-기쁘다.

⊙영-어린아이

⊙예-소리마주치다.

⊙제-편안하다.

⊙악-물수리, 징경이

⊙민-힘쓰다. 맹꽁이

⊙륙-올벼

⊙욱-힘쓰다. 勖의 와자.

⊙역-싫어하다. [도]와 [두]로 발음하기도 한다.











▣ 김주회 - 전의이씨 이왕섭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김수령찬 이함장묘갈명 자료! 소개에 감사 드립니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게시번호 4333에는 청원오창 송천서원에 전의이씨 이정간, 이효석, 이제신 공이 배향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게시번호 4472에는 이정간공의 5자 이사혜공이 우리 선안동김씨의 김제 공의 사위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그리고 자주 들리시어 좋은 자료 소개해 주시길...

▣ 김정중 -

▣ 김은회 - 감사합니다.

▣ 솔내영환 - 청강 이제신공의 신도비와 재실이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 있습니다. 북한강남쪽길로 청평쪽으로 가다보면 양주골프장(강북)건너편에 있습니다. 관심있으신분 드라이브 하시다 들려 보십시요

▣ 김윤만 - 저희 홈페이지가 더욱 알차지는 느낌입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 김항용 -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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