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만취당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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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10 18:16 조회1,478회 댓글0건본문
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내 기억으로는 그 무렵 우리 집에 왕고모의 출입이 잦았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왕고모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내는지 아버지는 용케도 몸을 피하곤 했다. 그러면 왕고모는 혹시나 하고
며칠씩 묵으며 아버지를 만나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왕고모는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돌아갈 때 마다 왕고모는 늘 똑같은 내용의 탄식을 하곤 했다. 그눔이 정승감
이었는데 정승은커녕 조막손이가 돼가지구설랑 이렇게 패가망신을 시키다니! 내 이렇게 늙도록
조막손이가 달걀 도독질 한단 소린 들었어두 조막손이가 화톳장 만진단 소린 듣두 못 했는데,
아이구머니나 저승에 계신 우리 오라버님만 불쌍하시지. 우리 오라버님만 딱하셔. 나는 왕고모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하얀 새가 나무마다 눈처럼 뒤덮여 있는 것을 보며 왕고모의 탄식을
듣곤 했다. 그리고 신작로 저 멀리서 버스가 뽀얗게 먼지를 피우며 오는 것이 보이면 왕고모는 합죽한
입으로 내 뺨을 부비며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이사람아, 이제는 자네가 정승일세. 우리 정승
튼튼하게 잘 크시겨. 우리 정승 잘 계시겨! 왕고모는 버스가 앞에까지 와 서야만 내 뺨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비척걸음으로 버스에 으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속울음을 울었다. 어깨로, 등으로, 온몸으로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나는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려 했으나 화톳불 위에 어른거리는 것은 병석의 그 핼쓱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직업병이라는 걸 대수롭잖게 생각한다 이겁니다. 나도 입원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업 병동에서 한 일 년 지내보니까 살기 위해 제 살 뜯어 먹다가 죽게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더라 이겁니다. 중추신경 이상으로 입원한 빙과공장 아가씨, 나처럼 폐수종을 앓는 유리공장
아가씨,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겁니다. 진시황은 늙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했다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날그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독가스 속에서 묻혀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이겁니다. 어디 진시황뿐입니까? 하루라도 더 살려고 온갖 보약을 다 먹고 저 멀리 제주도 산골짜기
에서 나오는 무공해 생수를 비행기로 날라다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그 사람들이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강물을 오염시키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사람들이다 이겁니다. 기찻간에서 만났던
그 청년의 얘기는 나에게 어머니의 죽음도 폐수종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청년의
얘기로는 유리공장에서 공원들이 맡게 되는 유독가스도 포스겐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까지 돈을 벌었던 곳은 유리공장이었다. 어머니는 조막손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정승자리에 앉히고야 말겠다는 나 때문에 당신 자신은 물론 나어린 누이들까지도 그 공장에 넣어
벌이를 시켰고 병이 들어 죽을 때에는 돈이 아까워 약 한 첩도 먹지 않고 가쁜 숨을 헐떡이기만 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병색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서울생활을 시작한 지 칠 년째 되던 해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했었는데 어머니는 그 이듬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병원에 가 본적이 없으니 병명이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지만 거품 섞인 가래와 호흡곤란으로 고생했던 것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
당시 어머니의 얘기로는 다른 공원들도 그런 증상으로 공장을 그만둔 사람이 몇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공장 측에 자신의 그러한 증상이 알려지면 목이 잘릴까봐 몇 년을 숨기고 근무했다는
것이었다.
화톳불은 어머니의 모습과 청년의 얼굴을 계속해 피워 올렸다.
온몸이 으스스 했다. 나는 모아놓은 땔감 중에서 불땀이 좋은 것 같은 놈들을 골라 사위기 시작하는
화톳불 위에다 얹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주병과 오징어를 파카 주머니에서
꺼냈다. 불이 붙은 삭정이를 한쪽으로 동개어놓고 잉걸불을 펴 그 위에 오징어를 얹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언제나 그러듯이 나는 이빨로 마개를 따서 뱉고 병나팔을 불었다. 아내가 이런 꼴을 봤더라면
분명 한마디 내쏘았을 것이다. 아버님은 한 손을 못 쓰시니까 그러신다지만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세요? 언젠가 한번 이빨로 병마개를 땄더니 아내가 질색을 했었다. 그때 아내의 그 놀란 표정을
떠올리며 나는 오징어다리를 떼어 씹었다.
아내는 내가 막차 타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실은 막차든 첫차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향에
내려간다는 그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아버지를 내세워 만취당을 되사들이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기 모르게 많은 돈을 아버지에게 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한 달쯤 전, 아내는 그
문제를 가지고 내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 여태까지 아버님께 드린 돈이 모두 얼마예요? 당신이
않아도 난 다 알고 있어요. 도대체 지금 우리가 시골에다 집을 사둘 형편이에요? 한 푼이라도 아껴서
서울에다 집을 늘여 사야지, 시골에다 집을 사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거에요?
난 죽으면 죽었지 시골로는 안 내려가요. 당신도 그렇잖아요. 시골 가서 뭘 해먹고 살겠다는 거예요?
어디, 얘기 좀 해보세요, 흥, 정승이 태어나는 집터라구요? 집터만 좋으면 그냥 정승이 되는 거냐구요!
나는 아내의 여러 질문에 간단히 대답했다. 용돈은 자주 드렸지만 달리 드린 돈은 없다고. 그것은
거젓 돈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모은 것이었다. 내가 학교를 마치기 전까지 아버지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동네
복덕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음을 잡기 위해 장기판이나 화투판에 끼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개업의 요령을 터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결국 몇 해 뒤에 아버지의 직업은 복덕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업으로는 먹고 살기에만도 벅찼다. 그런 형편에 두 누이를 시집보냈고 나를
공부시켰기 때문에 빚을 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빚을 갚고도 삼천이백만 원의
돈을 모았다니 놀랄 수 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내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아버지가 하루 속히 만취당을 되찾게 되길 진정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은 나로서도 크게 기쁜 일이었다. 눈치 빠른 아내가 그러한 내 속을 모를
리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나간 아버지가 날이 밝아도 연락이 없자 아내는 나를 의심했다. 아버님께선 지금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은 미리부터 알고 계셨죠? 나는 화가 치밀었으나 꾹 참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선반 위를 더듬어보았으나 통장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통장을 두는 자리는
선반 위였으나 나는 혹시나 싶어 방안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통장은 아무데에도 없었다. 그 집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신 건 분명한데 그렇다면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실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아내의
말에 나를 의심하는 빛이 역력했으나 나는 그 말의 겉만 받아들였다. 그러게 말야. 혹 모르지, 무슨
딴 일이 있으신지도. 아내는 계속 나를 의심했다. 딴 일이라뇨? 아버님께서 숨겨둔 여자가 있을 리도
없잖아요! 나는 더 이상 화를 누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버럭 고함을 지르고 출근길에 올랐다.
마침 다음날이 쉬는 날이어서 혹시나 싶어 업무가 끝나는 대로 아버지의 행방을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보았고 거리가 먼 곳은 전화로 알아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고향에
내려간 것으로 단정하고 23시 50분발 마지막 기차표를 끊었다. 공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다는 고향에
내려가 내가 태어났다는 만취당도 둘러볼 겸 아버지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의 기차표를 끊은 것은 집에 들러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역으로 나가면 시간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등산용 파카를 찾아 입는 등 부산하게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정 내려가시고
싶으면 내일 새벽에 떠나세요. 김씨한테 전화할까요? 낼 새벽에 차 가지고 오라고요.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찰 가지고 내려가시면 아버님 모시고 올 수도 있고 좋잖아요. 김씨한테
전화할께요. 김씨는 나라에서 내게 배당한 승용차의 운전사였다. 나는 아내에게 역정을 냈다. 공무로
츨장 가는 게 아니잖아!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양말이나 달라구! 아내는 양말을 가지고 와서
또 쫑알거렸다. 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눈 줄 아세요? 당신 혼자만 깨끗,,,. 나는 급히
아내의 입을 막았다. 쓸데없는 얘기 말랬잖아! 길 떠나는 사람한테 웬 설교가 그렇게 심해!
나는 다시 볼멘소리를 지르고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인종 아저씨께 전화 드렸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내 기억으로는 그 무렵 우리 집에 왕고모의 출입이 잦았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왕고모가 오는 것을 미리 알아내는지 아버지는 용케도 몸을 피하곤 했다. 그러면 왕고모는 혹시나 하고
며칠씩 묵으며 아버지를 만나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왕고모는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돌아갈 때 마다 왕고모는 늘 똑같은 내용의 탄식을 하곤 했다. 그눔이 정승감
이었는데 정승은커녕 조막손이가 돼가지구설랑 이렇게 패가망신을 시키다니! 내 이렇게 늙도록
조막손이가 달걀 도독질 한단 소린 들었어두 조막손이가 화톳장 만진단 소린 듣두 못 했는데,
아이구머니나 저승에 계신 우리 오라버님만 불쌍하시지. 우리 오라버님만 딱하셔. 나는 왕고모를
배웅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하얀 새가 나무마다 눈처럼 뒤덮여 있는 것을 보며 왕고모의 탄식을
듣곤 했다. 그리고 신작로 저 멀리서 버스가 뽀얗게 먼지를 피우며 오는 것이 보이면 왕고모는 합죽한
입으로 내 뺨을 부비며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이사람아, 이제는 자네가 정승일세. 우리 정승
튼튼하게 잘 크시겨. 우리 정승 잘 계시겨! 왕고모는 버스가 앞에까지 와 서야만 내 뺨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비척걸음으로 버스에 으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속울음을 울었다. 어깨로, 등으로, 온몸으로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나는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려 했으나 화톳불 위에 어른거리는 것은 병석의 그 핼쓱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직업병이라는 걸 대수롭잖게 생각한다 이겁니다. 나도 입원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업 병동에서 한 일 년 지내보니까 살기 위해 제 살 뜯어 먹다가 죽게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더라 이겁니다. 중추신경 이상으로 입원한 빙과공장 아가씨, 나처럼 폐수종을 앓는 유리공장
아가씨,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겁니다. 진시황은 늙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했다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날그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독가스 속에서 묻혀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이겁니다. 어디 진시황뿐입니까? 하루라도 더 살려고 온갖 보약을 다 먹고 저 멀리 제주도 산골짜기
에서 나오는 무공해 생수를 비행기로 날라다 먹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그 사람들이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강물을 오염시키고, 공기를 오염시키는 사람들이다 이겁니다. 기찻간에서 만났던
그 청년의 얘기는 나에게 어머니의 죽음도 폐수종 때문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청년의
얘기로는 유리공장에서 공원들이 맡게 되는 유독가스도 포스겐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까지 돈을 벌었던 곳은 유리공장이었다. 어머니는 조막손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정승자리에 앉히고야 말겠다는 나 때문에 당신 자신은 물론 나어린 누이들까지도 그 공장에 넣어
벌이를 시켰고 병이 들어 죽을 때에는 돈이 아까워 약 한 첩도 먹지 않고 가쁜 숨을 헐떡이기만 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병색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서울생활을 시작한 지 칠 년째 되던 해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했었는데 어머니는 그 이듬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병원에 가 본적이 없으니 병명이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지만 거품 섞인 가래와 호흡곤란으로 고생했던 것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했다.
당시 어머니의 얘기로는 다른 공원들도 그런 증상으로 공장을 그만둔 사람이 몇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공장 측에 자신의 그러한 증상이 알려지면 목이 잘릴까봐 몇 년을 숨기고 근무했다는
것이었다.
화톳불은 어머니의 모습과 청년의 얼굴을 계속해 피워 올렸다.
온몸이 으스스 했다. 나는 모아놓은 땔감 중에서 불땀이 좋은 것 같은 놈들을 골라 사위기 시작하는
화톳불 위에다 얹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소주병과 오징어를 파카 주머니에서
꺼냈다. 불이 붙은 삭정이를 한쪽으로 동개어놓고 잉걸불을 펴 그 위에 오징어를 얹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언제나 그러듯이 나는 이빨로 마개를 따서 뱉고 병나팔을 불었다. 아내가 이런 꼴을 봤더라면
분명 한마디 내쏘았을 것이다. 아버님은 한 손을 못 쓰시니까 그러신다지만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세요? 언젠가 한번 이빨로 병마개를 땄더니 아내가 질색을 했었다. 그때 아내의 그 놀란 표정을
떠올리며 나는 오징어다리를 떼어 씹었다.
아내는 내가 막차 타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실은 막차든 첫차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고향에
내려간다는 그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내는 내가 아버지를 내세워 만취당을 되사들이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기 모르게 많은 돈을 아버지에게 주었다고 믿고 있었다. 한 달쯤 전, 아내는 그
문제를 가지고 내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 여태까지 아버님께 드린 돈이 모두 얼마예요? 당신이
않아도 난 다 알고 있어요. 도대체 지금 우리가 시골에다 집을 사둘 형편이에요? 한 푼이라도 아껴서
서울에다 집을 늘여 사야지, 시골에다 집을 사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거에요?
난 죽으면 죽었지 시골로는 안 내려가요. 당신도 그렇잖아요. 시골 가서 뭘 해먹고 살겠다는 거예요?
어디, 얘기 좀 해보세요, 흥, 정승이 태어나는 집터라구요? 집터만 좋으면 그냥 정승이 되는 거냐구요!
나는 아내의 여러 질문에 간단히 대답했다. 용돈은 자주 드렸지만 달리 드린 돈은 없다고. 그것은
거젓 돈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모은 것이었다. 내가 학교를 마치기 전까지 아버지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동네
복덕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음을 잡기 위해 장기판이나 화투판에 끼나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개업의 요령을 터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결국 몇 해 뒤에 아버지의 직업은 복덕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업으로는 먹고 살기에만도 벅찼다. 그런 형편에 두 누이를 시집보냈고 나를
공부시켰기 때문에 빚을 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빚을 갚고도 삼천이백만 원의
돈을 모았다니 놀랄 수 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구나 싶었다. 나는 아내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아버지가 하루 속히 만취당을 되찾게 되길 진정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은 나로서도 크게 기쁜 일이었다. 눈치 빠른 아내가 그러한 내 속을 모를
리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나간 아버지가 날이 밝아도 연락이 없자 아내는 나를 의심했다. 아버님께선 지금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당신은 미리부터 알고 계셨죠? 나는 화가 치밀었으나 꾹 참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선반 위를 더듬어보았으나 통장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통장을 두는 자리는
선반 위였으나 나는 혹시나 싶어 방안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통장은 아무데에도 없었다. 그 집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신 건 분명한데 그렇다면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실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아내의
말에 나를 의심하는 빛이 역력했으나 나는 그 말의 겉만 받아들였다. 그러게 말야. 혹 모르지, 무슨
딴 일이 있으신지도. 아내는 계속 나를 의심했다. 딴 일이라뇨? 아버님께서 숨겨둔 여자가 있을 리도
없잖아요! 나는 더 이상 화를 누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버럭 고함을 지르고 출근길에 올랐다.
마침 다음날이 쉬는 날이어서 혹시나 싶어 업무가 끝나는 대로 아버지의 행방을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보았고 거리가 먼 곳은 전화로 알아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고향에
내려간 것으로 단정하고 23시 50분발 마지막 기차표를 끊었다. 공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다는 고향에
내려가 내가 태어났다는 만취당도 둘러볼 겸 아버지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의 기차표를 끊은 것은 집에 들러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역으로 나가면 시간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등산용 파카를 찾아 입는 등 부산하게 여행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정 내려가시고
싶으면 내일 새벽에 떠나세요. 김씨한테 전화할까요? 낼 새벽에 차 가지고 오라고요.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찰 가지고 내려가시면 아버님 모시고 올 수도 있고 좋잖아요. 김씨한테
전화할께요. 김씨는 나라에서 내게 배당한 승용차의 운전사였다. 나는 아내에게 역정을 냈다. 공무로
츨장 가는 게 아니잖아!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양말이나 달라구! 아내는 양말을 가지고 와서
또 쫑알거렸다. 당신이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눈 줄 아세요? 당신 혼자만 깨끗,,,. 나는 급히
아내의 입을 막았다. 쓸데없는 얘기 말랬잖아! 길 떠나는 사람한테 웬 설교가 그렇게 심해!
나는 다시 볼멘소리를 지르고 현관을 향해 돌아섰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인종 아저씨께 전화 드렸습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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