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만취당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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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03-12 18:30 조회1,887회 댓글0건본문
이 [만취당기]는 소설가 김문수씨가1989년 {실천문학, 여룸호}에 발표한 단편입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 -7-
아버지는 여간 흥분해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나는 왠지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보석을 빼앗기고 그 대가로 모조보석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 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아버지는 내 어깨를 치며 계속해 입을 열었다. 요새 세상을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지
환쟁이두 떼부자가 되는 시상이라더라만 환쟁이하구 정승하구는 댈 일이 못 되능겨.
어떤 세상이든간에 버슬을 하믄 돈은 저절루 굴러오능겨.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나 싶어 이렇게 쐐기를 쳤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진학할 때 이미 그림을 포기해 버렸다. 행정과나 정치과를 고집하는 아버지에게 순종을 한
것이라기보다 그림공부를 할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때문에 고생만 지지리
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오직 나 하나만을 정성스레 키워 벼슬자리에 오르도록 하겠다는 아버지의
원대(?)한 계획에 의해 어린애 땟국을 벗기 무섭게 공장에 들어가 숱한 고생을 해온 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내 고집대로 그림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아버지가 뜻한 대로 세칭
일류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하여 행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돈 때문에 중도에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위기를 몇 번이나 맞이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서예학원을 차려 택택한 생활을
하는, 동향이자 친척인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뛰어난 붓글씨 솜씨는 우리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마다 않고 도움을 베풀었고 또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이따금
쌀가마니며 연탄 따위를 들여놓아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무사히 대학을 마칠 수 있었으며 졸업하던
해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행운으로만 여길 수가 없었다. 왠지 잘못
든 길의 저쪽 어딘가에 숨어있을 불행이 예감되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불길한 예감일수록 적중률이 높았고 따라서 나의 그 불길한 예감도 맞아 떨어졌다.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시쳇말로 괘씸죄에 걸려 하마터면 모가지가 잘릴 뻔했다. 헛기침만으로도 하늘의 새를
떨굴 수 있다는 어떤 세도가의 지시에 불복했기 때문이었다. 그 지시라는 게 크게는 나라에 흠집을
내는 일이었고 작게는 당자를 옭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물론 법으로도 금하는
일이었다. 나는 목이 잘릴 각오로 법을 지켰다. 아직은 목이 붙어 있지만 실은 붙어 있는 목이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내막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져 아내가
직장을 그만둘 작정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뒤, 내 목이 잘린다면
단돈 한 푼도 저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판이라 둘 다 직장이 없게 된다면 살아갈 방도가
막막했다. 그래서 내 처지를 밝히고 당분간 사표내는 것을 보류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아내더러 한 말은 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아내로부터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가 날 불러 앉혔다. 내가 너한티 을매나 말했니! 모난 돌이 정 맞는 벱이라구. 그런디 도대체
어떻게 처신을 했으믄■ 너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 을매나 고생을 했냐 말여. 그런디 그 벼슬자리에
앉아보지두 못하구 모가지 걱정을 해야 하다니! 너도 니 오대조 할아버님 꼴이 되구 싶으냐?
그분께서두 바른 소릴 하시다가 조정에서 쫓겨나 낙향하신 겨. 처신만 잘했으믄 정승자리는 식은 죽
먹기였다는 겨. 그래설람 낙향해 가지군 오동남구 잎사구마냥 일찍 벼슬자리에서 떨어진 당신 신셀
한탄하믄서 당신은 이왕에 그렇게 됐지만서두 자손들만은 즑꺼정 푸른 솔잎마냥 되라는 뜻으루다
만취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붙이신겨. 나는 아버지의 그 터무니도 없는 애기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어렸다면 한 차례 종아리를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노여운
기색이긴 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낯빛을 살피면서 노여움을 돋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말씀대로 만취당의 만취가 겨울철이 돼도 솔잎의
푸른빛이 변하지 않는 걸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노후에도 그 굳은 절조가 변하지 않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에요. 내말에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억지를 부렸다. 요새 세상은 옛날하군
달러. 절조를 지키구 살다간 웃음거리가 되는 벱여. 시류에 맞추어 살어야 하능겨. 그래야 즑에두 늘
푸른 소나무처럼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느릴 수가 있능겨. 만취당은 그런 뜻으루다 진 당호란 말여.
그런디 니가 아까 한 말, 대체 누가 그러디?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게 그
얘기를 해준 것은 서예학원을 경영하는 아저씨였다. 물론 아버지도 그 아저씨로부터 만취당의 내력을
들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만취당의 정확한 내력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 목이 위험하게 됐다는 것을 아내로부터 들은 뒤부터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절조를 지키느라고 벼슬자리를 잃게 된 오대조처럼 내 신세가 그렇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달포 전, 아버지는 나와 아내를 불러 앉히곤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용이 물 밖에 나면 개미도 침노를
하는 벱이여.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냐? 실수가 아니라 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소신껏 처리한
일이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화를 벌컥 냈다. 치성 드려 낳은 자식이 눈 먼 꼴이여. 야, 이 녀석아!
니가 이 애비 생각을 조금이라두 하는 눔이냐? 두말할 필요 읎이 며늘애기 너는 만취당에 내려가 애
낳을 작정해라. 내말 알겠지? 나는 아이를 낳으러 가다가 숲 속에 이르러 해산을 하게 되는 아내의
모습을 연상하며 쓴웃음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톳불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환영을 피워 올렸다. 나는 아버지가 만취당을 되찾는 데 성공했기를
빌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야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찾아야 될지, 그런 것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 김창우 -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 김윤식 - 대부님 감사합니다.
이 만취당기는 이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만취당기]는 실제 소재지인 의성의 안동김씨 도평의공파 소유인 [의성 만취당]의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이 소설의 내용도 전혀 허구 임을 밝혀두고 그저 제목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재미 삼아 옮겨 적어 연재하니 소설은 소설일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만취당기 -7-
아버지는 여간 흥분해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나는 왠지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보석을 빼앗기고 그 대가로 모조보석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 내 마음 속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아버지는 내 어깨를 치며 계속해 입을 열었다. 요새 세상을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지
환쟁이두 떼부자가 되는 시상이라더라만 환쟁이하구 정승하구는 댈 일이 못 되능겨.
어떤 세상이든간에 버슬을 하믄 돈은 저절루 굴러오능겨.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나 싶어 이렇게 쐐기를 쳤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진학할 때 이미 그림을 포기해 버렸다. 행정과나 정치과를 고집하는 아버지에게 순종을 한
것이라기보다 그림공부를 할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때문에 고생만 지지리
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오직 나 하나만을 정성스레 키워 벼슬자리에 오르도록 하겠다는 아버지의
원대(?)한 계획에 의해 어린애 땟국을 벗기 무섭게 공장에 들어가 숱한 고생을 해온 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내 고집대로 그림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아버지가 뜻한 대로 세칭
일류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하여 행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돈 때문에 중도에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위기를 몇 번이나 맞이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서예학원을 차려 택택한 생활을
하는, 동향이자 친척인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의 뛰어난 붓글씨 솜씨는 우리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마다 않고 도움을 베풀었고 또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이따금
쌀가마니며 연탄 따위를 들여놓아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무사히 대학을 마칠 수 있었으며 졸업하던
해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행운으로만 여길 수가 없었다. 왠지 잘못
든 길의 저쪽 어딘가에 숨어있을 불행이 예감되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불길한 예감일수록 적중률이 높았고 따라서 나의 그 불길한 예감도 맞아 떨어졌다.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시쳇말로 괘씸죄에 걸려 하마터면 모가지가 잘릴 뻔했다. 헛기침만으로도 하늘의 새를
떨굴 수 있다는 어떤 세도가의 지시에 불복했기 때문이었다. 그 지시라는 게 크게는 나라에 흠집을
내는 일이었고 작게는 당자를 옭는 올가미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물론 법으로도 금하는
일이었다. 나는 목이 잘릴 각오로 법을 지켰다. 아직은 목이 붙어 있지만 실은 붙어 있는 목이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내막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져 아내가
직장을 그만둘 작정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뒤, 내 목이 잘린다면
단돈 한 푼도 저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판이라 둘 다 직장이 없게 된다면 살아갈 방도가
막막했다. 그래서 내 처지를 밝히고 당분간 사표내는 것을 보류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아내더러 한 말은 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아내로부터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아버지가 날 불러 앉혔다. 내가 너한티 을매나 말했니! 모난 돌이 정 맞는 벱이라구. 그런디 도대체
어떻게 처신을 했으믄■ 너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 을매나 고생을 했냐 말여. 그런디 그 벼슬자리에
앉아보지두 못하구 모가지 걱정을 해야 하다니! 너도 니 오대조 할아버님 꼴이 되구 싶으냐?
그분께서두 바른 소릴 하시다가 조정에서 쫓겨나 낙향하신 겨. 처신만 잘했으믄 정승자리는 식은 죽
먹기였다는 겨. 그래설람 낙향해 가지군 오동남구 잎사구마냥 일찍 벼슬자리에서 떨어진 당신 신셀
한탄하믄서 당신은 이왕에 그렇게 됐지만서두 자손들만은 즑꺼정 푸른 솔잎마냥 되라는 뜻으루다
만취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붙이신겨. 나는 아버지의 그 터무니도 없는 애기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어렸다면 한 차례 종아리를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노여운
기색이긴 했으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낯빛을 살피면서 노여움을 돋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말씀대로 만취당의 만취가 겨울철이 돼도 솔잎의
푸른빛이 변하지 않는 걸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노후에도 그 굳은 절조가 변하지 않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에요. 내말에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억지를 부렸다. 요새 세상은 옛날하군
달러. 절조를 지키구 살다간 웃음거리가 되는 벱여. 시류에 맞추어 살어야 하능겨. 그래야 즑에두 늘
푸른 소나무처럼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느릴 수가 있능겨. 만취당은 그런 뜻으루다 진 당호란 말여.
그런디 니가 아까 한 말, 대체 누가 그러디?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게 그
얘기를 해준 것은 서예학원을 경영하는 아저씨였다. 물론 아버지도 그 아저씨로부터 만취당의 내력을
들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만취당의 정확한 내력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 목이 위험하게 됐다는 것을 아내로부터 들은 뒤부터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절조를 지키느라고 벼슬자리를 잃게 된 오대조처럼 내 신세가 그렇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달포 전, 아버지는 나와 아내를 불러 앉히곤 자못 엄숙하게 말했다. 용이 물 밖에 나면 개미도 침노를
하는 벱이여.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했냐? 실수가 아니라 법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소신껏 처리한
일이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화를 벌컥 냈다. 치성 드려 낳은 자식이 눈 먼 꼴이여. 야, 이 녀석아!
니가 이 애비 생각을 조금이라두 하는 눔이냐? 두말할 필요 읎이 며늘애기 너는 만취당에 내려가 애
낳을 작정해라. 내말 알겠지? 나는 아이를 낳으러 가다가 숲 속에 이르러 해산을 하게 되는 아내의
모습을 연상하며 쓴웃음을 날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톳불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환영을 피워 올렸다. 나는 아버지가 만취당을 되찾는 데 성공했기를
빌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야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찾아야 될지, 그런 것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 김창우 -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 김윤식 - 대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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