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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에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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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3-03-28 21:08 조회1,7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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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발발과 활약상

장군이 진주판관에 부임한지 1년후인 1592년(선조25년) 임진년 4월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진주목사 이경이 병사하자 초유사 김성일의 명에 따라 진주목사 대행에 임명된 장군은 병기를 수리하고 성지를 구축하는 한편 수성군을 모집하여 진주성을 사수하고자 했다.

 장군은 모집된 수성군에게 맹훈련을 시켰음은 물론 병기와 자재를 정비하고 양곡을 비치하였는데 염초 510근 제조 및 총통 70여자로를 제작하였다. 진주성은 지리적으로 호남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만약 이곳이 무너지면 왜적은 바로 호남지역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장군은 의병장 김면의 요청에 따라 거창으로 나가 사랑암 부근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이 공로로 1592년 8월 7일 진주목사에 정식으로 임명됨). 9월에는 진해에서 왜군장수 평소태(平小泰)를 생포하여 의주 행재소에 보내 조정의 사기를 높여 주었으며(이로인해 경상우병사에 임명), 연이어 고성, 창원까지 진격하여 왜군을 무찌르는 등 큰 공을 세웠다.

 ◎진주대첩과 기여도

왜군은 김해, 고성, 창원 등 경상도 남부지역에서 연패하자 경상우도의 조선군 주력부대가 진성에 주둔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전세만회를 위해 이를 일거에 함락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왜군은 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등원랑(藤元郞), 평조신(平調信)등을 주축으로 부산, 동래, 김해지역에 포진하고 있던 정예병 3만여명을 동원하여 1592년 10월 5일 진주성 공격을 개시하였다.

※ 제1차 진주성전투는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계속 한편 진주성에는 김시민 목사의 본성군사 3,700명과 곤양군수 이광악의 100명등 도합 3,800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정병이라기 보다는 새로 모집한 장정들이었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은 진주성민들의 필사적인 단결과 곽재우·최강·이달 등 각처 의병들의 열렬한 성원에 고무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진주성을 사수키로 결심한후 화살하나 탄환 한발이라도 낭비하지 말 것을 지시하는 등 만반의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10월 5일 아침부터 왜군은 신식무기인 조총을 주무기로 3개부대로 나누어 공격을 감행하였다. 김시민장군은 적군의 화력을 최대한 소모시키고자 일정한 거리에 올때까지 대적하지 않고 성안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위장하는 한편, 직접 성내를 순회하면서 임전태세를 점검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등 장병위에 군림하기 보다는 자신도 병사와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솔선수범 하였다.

이와 같이 장군의 실천궁행 노력에 감복한 군사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무릎쓰고 싸우게되었다.장군은 소수병력으로 대병을 맞아 싸움에 있어 필승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성밖에 있는 아군과 긴밀히 연락을 취하여 야간을 이용해 화살 등 무기를 몰래 반입하였다.

- 성밖에 있는 의병들로 하여금 산발적인 적 측후방공격 및 교란작전, 횃불시위 등을 전 개하여 아군의 사기진작 및 적군의 혼란을 유도하였다. - 성안의 노약자와 부녀자에게 남장을 하도록 하여 군사가 많아 보이게 하였다. - 야간에 악공으로 하여금 피리를 불게하여 왜군의 심리를 교란시켰다.

 -차대전, 현자총통, 질려포, 비격진천뢰, 화약등 당시 조선군의 신식무기를 적절히 활용하 였다. - 왜군에게 잡혀있다 탈출한 민간인들을 통해 적정을 소상히 파악하여 적의 공격에 적절히 대처하였다. - 성민들로 하여금 돌·기와·집단 등을 가져와 투척하게 하는 등 민·관·군 총력전을 전개하였다.

결국 제1차 진주성전투는 의병들의 적극적인 성원에 힘입은 김시민장군의 탁월한 용병술과 전략술, 그리고 진주성내의 모든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결사 항전한 결과 3만의 왜병중 2만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등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전란사에 3대첩의 하나로 찬연히 기록되기 되었다.

 ▨ 기여도 ▧

 진주대첩은 호남지역으로 진출하려던 왜군의 시도를 좌절시켜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를 온저히 보전하는데 기여하였을 분 아니라, 의주까지 피난을 간 선조임금을 비롯한 대소신료 및 조선 육군과 의병들에게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며, 또한 왜군으로 하여금 남방에 강력한 조선군이 있어 전역을 확대하지 못하게 하고 조선군을 더 이상 깔보지 못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의 효과를 창출하였다.


▣ 김항용 -
▣ 김주회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 김윤식 -
▣ 솔내영환 -
▣ 충무공김시민장군 - 지극 정성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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