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順衛公諱질墓碑銘(충순위 휘 질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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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3-04-14 23:51 조회1,681회 댓글0건본문
강진 시향제에 즈음하여 강진에 영면해 계신 군사공파 선조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忠順衛公諱질墓碑銘(충순위 휘 질 묘비명) ----질( 石+質)

공(公)의 휘(諱)는 질이요 자(字)는 중임(重任)이시며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으로 신라 경순왕(新羅 敬順王)의 二十三世 손(孫)이며 고려 삼중대광 첨의 세자사 상락군(高麗 三重大匡 僉議 世子師 上洛君)으로 시(諡)가 충렬공(忠烈公)이요 휘(諱)가 방경(方慶)이신 분의 구세소(九世孫)이며 이조 인수부윤 집현전 직제학(李朝 仁壽府尹 集賢殿 直提學)으로 휘(諱)가 돈(墩)이신 분의 사세손이고 고(考)의 휘(諱)는 정건(廷建)으로 관(官)이 충순위(忠順衛)이며 비(妣) 정부인탐진최씨(貞夫人 耽津崔氏)는 첨사(僉使) 감(泔)의 따님이며 조고(祖考)의 휘(諱) 석정(石精)은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묘소는 고다지(古多只) 간좌(艮坐)이고 조비(祖妣)는 의인 인천이씨(宜人 仁川李氏)로서 묘소는 쌍봉(雙封)이다. 배위 숙부인 해주오씨(配位 淑夫人 海州吳氏)는 진사(進士) 팽수(彭壽)의 따님으로 묘는 공묘(公墓)의 좌측(左側)에 합장(合葬)하였고 아드님 휘 흥업(興業)은 직장(直長)으로 만력정유(萬曆丁酉)(一五九七)十月十一日에 왜란(倭亂)을 만나 칼을 뽑아들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왜병(倭兵)의 괴수에게 살해(殺害)되었는데 묘는 남산동 술좌(南山洞 戌座)이며 손자의 휘는 서봉(瑞鳳)으로 참봉(參奉)인데 부친이 왜적(倭賊)에게 살해(殺害)당하심을 보고 칼을 뽑아들고 적진(敵陣)에 돌입하여 같은날 피해를 입었고 묘는 부묘(父墓)의 밑이다.
공께서 선산(선산)이 계신 고장에서 타향살이를 하셨으니 이로 역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유풍이며 충효(忠孝)의 행실(行實)이라> 도향(道鄕)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자랑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선행(善行)의 자취와 아름다운 지략(智畧)은 감히 거듭하지 못하는 고로 이에 그 대충대충을 들어서 소목(昭穆)을 기록하고 그 사실만을 모아서 삼가 썻노라.
崇禎紀元後五回甲 丙申十月日(西紀一九五六年)
十二世孫 誠烈 謹記
十二世孫 東鉉 삼가쓰고
東煥 檢閱함.
작성자 :김재이() 작성일 : 2002/07/03
안동김씨 집성촌인 강진군 군동면 내동마을 소개
강진군 군동면 내동마을은 우리선조가 동명을 지어 지금까지 불러오고 있지요.
중시조 충렬공(忠烈公) 방경(1212 ~ 1300)의 9대손인 김 질(郡事公)(1519 ~?)선조께서 1538년 한양에서 강진 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선영을 찾아 청소년기에 내려오셔 해가 저믈어 오갈때없이 방황하고 계실때 해주오씨 오팽수씨의 눈띄어 그분의 사위가 되어 지금의 내동마을 안골목에 터를잡아 마을이름을 지금까지 불러오고있다
그리하여 본마을에는 안동김씨 해주최씨 죽산안씨가 주로 거세했으나 훗날 죽산 안씨는 모두 마을을 떠났고 따라서 오랬동안 안동김씨와 해주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으나 현재는 해주최씨 안동김씨 해주오씨 언양김씨등 17개 성씨가 살고 있으며 현재 동원산업구룹 회장이시며 대한무역협회 회장이신 김재철씨도 이마을 출신이십니다,
다음에는 강진입향조 김질 선조님의 후손의 정유재란시 강진전투에서 전사하신 내용을 강진문헌집에서 참고하여 전하겠습다.
▣ 김발용 - 군사공파보 제작당시(1991년) 사진이므로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김주회 - 귀한 자료 소개!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윤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본 홈에 올리겠습니다.
▣ 솔내영환 -
▣ 김태서 -
▣ 김윤식 -
忠順衛公諱질墓碑銘(충순위 휘 질 묘비명) ----질( 石+質)

공(公)의 휘(諱)는 질이요 자(字)는 중임(重任)이시며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으로 신라 경순왕(新羅 敬順王)의 二十三世 손(孫)이며 고려 삼중대광 첨의 세자사 상락군(高麗 三重大匡 僉議 世子師 上洛君)으로 시(諡)가 충렬공(忠烈公)이요 휘(諱)가 방경(方慶)이신 분의 구세소(九世孫)이며 이조 인수부윤 집현전 직제학(李朝 仁壽府尹 集賢殿 直提學)으로 휘(諱)가 돈(墩)이신 분의 사세손이고 고(考)의 휘(諱)는 정건(廷建)으로 관(官)이 충순위(忠順衛)이며 비(妣) 정부인탐진최씨(貞夫人 耽津崔氏)는 첨사(僉使) 감(泔)의 따님이며 조고(祖考)의 휘(諱) 석정(石精)은 이조좌랑(吏曹佐郞)으로 묘소는 고다지(古多只) 간좌(艮坐)이고 조비(祖妣)는 의인 인천이씨(宜人 仁川李氏)로서 묘소는 쌍봉(雙封)이다. 배위 숙부인 해주오씨(配位 淑夫人 海州吳氏)는 진사(進士) 팽수(彭壽)의 따님으로 묘는 공묘(公墓)의 좌측(左側)에 합장(合葬)하였고 아드님 휘 흥업(興業)은 직장(直長)으로 만력정유(萬曆丁酉)(一五九七)十月十一日에 왜란(倭亂)을 만나 칼을 뽑아들고 힘을 다해 싸우다가 왜병(倭兵)의 괴수에게 살해(殺害)되었는데 묘는 남산동 술좌(南山洞 戌座)이며 손자의 휘는 서봉(瑞鳳)으로 참봉(參奉)인데 부친이 왜적(倭賊)에게 살해(殺害)당하심을 보고 칼을 뽑아들고 적진(敵陣)에 돌입하여 같은날 피해를 입었고 묘는 부묘(父墓)의 밑이다.
공께서 선산(선산)이 계신 고장에서 타향살이를 하셨으니 이로 역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유풍이며 충효(忠孝)의 행실(行實)이라> 도향(道鄕)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자랑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선행(善行)의 자취와 아름다운 지략(智畧)은 감히 거듭하지 못하는 고로 이에 그 대충대충을 들어서 소목(昭穆)을 기록하고 그 사실만을 모아서 삼가 썻노라.
崇禎紀元後五回甲 丙申十月日(西紀一九五六年)
十二世孫 誠烈 謹記
十二世孫 東鉉 삼가쓰고
東煥 檢閱함.
작성자 :김재이() 작성일 : 2002/07/03
안동김씨 집성촌인 강진군 군동면 내동마을 소개
강진군 군동면 내동마을은 우리선조가 동명을 지어 지금까지 불러오고 있지요.
중시조 충렬공(忠烈公) 방경(1212 ~ 1300)의 9대손인 김 질(郡事公)(1519 ~?)선조께서 1538년 한양에서 강진 군 작천면 토마리 (남산)선영을 찾아 청소년기에 내려오셔 해가 저믈어 오갈때없이 방황하고 계실때 해주오씨 오팽수씨의 눈띄어 그분의 사위가 되어 지금의 내동마을 안골목에 터를잡아 마을이름을 지금까지 불러오고있다
그리하여 본마을에는 안동김씨 해주최씨 죽산안씨가 주로 거세했으나 훗날 죽산 안씨는 모두 마을을 떠났고 따라서 오랬동안 안동김씨와 해주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으나 현재는 해주최씨 안동김씨 해주오씨 언양김씨등 17개 성씨가 살고 있으며 현재 동원산업구룹 회장이시며 대한무역협회 회장이신 김재철씨도 이마을 출신이십니다,
다음에는 강진입향조 김질 선조님의 후손의 정유재란시 강진전투에서 전사하신 내용을 강진문헌집에서 참고하여 전하겠습다.
▣ 김발용 - 군사공파보 제작당시(1991년) 사진이므로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윤만 - 잘 보았습니다.
▣ 김주회 - 귀한 자료 소개! 감사합니다.
▣ 김태영 -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윤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본 홈에 올리겠습니다.
▣ 솔내영환 -
▣ 김태서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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