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정시인의 거묵이며 시문학파 동인이었던 영랑 김윤식이 1902년 출생하여 1948년 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 하기까지 46년을 살던 곳으로 영랑의 시적 소재의 산실이다. 현재의 영랑생가는 선생이 이주하고 그 후 몇차례 전매 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 되었던 것을 1985년 강진군이 도비지원을 받아 다시 사들여 연차공사로 복원한 것이다. 안채는 일부 변형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체는 철거되었던 것을 영랑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로 들어 가는 길엔 구부러진 돌담(시;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우에)이 있고, 입구넓은 잔디밭에 서 있는「모란이 피기까지는」의 돌 시비를 지나 문간채 대문을 들어서면안채가 나온다. 안채 왼쪽으로 옛날 돌로 쌓아진 우물(시; 마당앞 맑은 새암은)이 제 모습 그대로 하고 있으며. 안채 오른쪽으로 장독대와 감나무(시;오메 단풍 들 것네-원제는 누이야 내 마음을 보아라)와 모란꽃밭(시;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꽃밭에서 더 오른쪽으로 가면 북을 두들기며 시를 읊고 쓰던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앞의 은행나무(시;아파 누워 혼자)는 영랑이 19살에 심었다고 한다. 안채 뒷편 언덕엔 대나무숲과 동백나무들이 있는데 영랑의 데뷔작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의 모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