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Re:아! 퇴계(退溪) (02-2) - 모재 김안국, 하서 김인후, 우암 김주, 이암 송인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3-04-18 00:25 조회1,399회 댓글0건

본문

아! 퇴계(退溪) (02-2) - 모재 김안국, 하서 김인후, 우암 김주, 이암 송인







■ 디지털한국학



★김안국(金安國)

시대 조선

생몰년 1478-1543(성종9-중종38)

본관 의성(義城)

자 국경(國卿)

호 모재(慕齋)

시호 문경(文敬)

활동분야 문신, 학자

다른 이름



1478(성종 9)∼1543(중종 38). 조선시대 문신·학자. 본관은 의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참봉 연(連)의 아들이며, ★정국(正國)의 형이다. ★조광조(趙光祖)·★기준(奇遵) 등과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도학에 통달하여 지치주의(至治主義)사림파의 선도자가 되었다.



1501년(연산군 7) 생진과에 합격, 1503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으며, 이어 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에는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지평·장령·예조참의·대사간·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각 향교에 《소학》을 권하고, 《농서언해 農書諺解》·《잠서언해 蠶書諺解》·《이륜행실도언해 二倫行實圖諺解》·《여씨향약언해 呂氏鄕約諺解》·《정속언해 正俗諺解》 등의 언해서와 ♠《벽온방 #벽17瘟方》·《창진방 瘡疹方》 등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으며 향약을 시행하도록 하여 교화사업에 힘썼다.



1519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참찬이 되었으나 같은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서 ★조광조 일파의 소장파 명신들이 죽음을 당할 때, 겨우 화를 면하고 파직되어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서 후진들을 가르치며 한가히 지냈다.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예조판서·대사헌·병조판서·좌참찬·대제학·찬성·판중추부사·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을 역임하였으며, 1541년 병조판서 때에 천문·역법·병법 등에 관한 서적의 구입을 상소하고, 물이끼〔水苔〕와 닥〔楮〕을 화합시켜 태지(苔紙)를 만들어 왕에게 바치고 이를 권장하였다.



사대부출신 관료로서 성리학적 이념에 의한 통치의 강화에 힘썼으며, 중국문화를 수용,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시문으로도 명성이 있었으며 대제학으로 죽은 뒤 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과 이천의 설봉서원(雪峰書院) 및 의성의 빙계서원(氷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모재집》·《모재가훈 慕齋家訓》·《동몽선습 童蒙先習》 등이 있고, 편서(編書)로는 《이륜행실도언해》·《성리대전언해 性理大典諺解》·《농서언해》·《잠서언해》·《여씨향약언해》·《정속언해》·《벽온방》·《창진방》 등이 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慕齋集. 〈丁淳睦〉











★김인후(金麟厚)

시대 조선

생몰년 1510-1560(중종5-명종15)

본관 울산(蔚山)

자 후지(厚之)

호 하서(河西)/담재(湛齋)

시호 문정(文靖)

활동분야 유학자, 문신

다른 이름



1510(중종 5)∼1560(명종 15). 조선 중기의 유학자·문신. 본관은 울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湛齋). 전라도 장성출신. 아버지는 참봉 영(齡)이며, 어머니는 옥천조씨(玉川趙氏)이다.



열살 때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소학》을 배웠고, 1531년에 성균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이황(李滉) 등과 교우가 두터웠다.



1540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등용되었으며, 이듬해에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하고,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이 되었다.



1543년에 홍문관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홍문관부수찬이 되어 세자 보도(輔導)의 임을 맡았다.

특히,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한 제현(諸賢)의 원한을 개진하여 문신으로서 본분을 수행하였다. 그해에 부모의 봉양을 위해 옥과현감(玉果縣監)으로 나갔다. 중종이 죽자 제술관(製述官)으로 서울에 올라왔으나, 일년도 채 못되어 인종이 죽고 곧이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고향 장성에 돌아갔다.



그뒤 1554년까지 성균관전적·공조정랑·홍문관교리·성균관직강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시문에 능하여 10여권의 시문집을 남겼으나 도학에 관한 저술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성리학 이론은 유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당시 ★이항(李恒)과 ★기대승(奇大升)사이에 논란되었던 태극음양설에 대하여 이항의 태극음양일물설(太極陰陽一物說)을 반대한 기대승에 동조하여, 인심과 도심은 다 그 동처(動處)를 두고 이른 말임을 주장함으로써, 후일 기대승의 주정설(主情說)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학문은 성경(誠敬)을 주안으로 하였기 때문에 ★노수신(盧守愼)과 더불어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를 논한 것을 보면, 마음이 일신을 주재한다는 노수신의 설을 비판하면서, 마음이 일신을 주재하지만 기(氣)가 섞여서 마음을 밖으로 잃게 되면 주재자를 잃게 되므로, 경(敬)으로써 이를 바르게 하여야 다시금 마음이 일신을 주재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여, 이른바 주경설(主敬說)을 내놓았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律曆)에도 정통하였다. 제자로는 ★정철(鄭澈)·★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조희문(趙希文)·★오건(吳健) 등이 있으며, 1796년(정조 20)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 옥과의 영귀서원(詠歸書院)에 제향되었으며,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하서집》·《주역관상편 周易觀象篇》·《서명사천도 西銘四天圖》·《백련초해 百聯抄解》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참고문헌 河西集, 中宗實錄, 明宗實錄. 〈李乙浩〉











● 김주(金澍){2}

시대 조선

생몰년 1512-1563(중종7-명종18)

본관 안동(安東)

자 응림(應霖)

호 우암(寓菴)

시호 문단(文端)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1512(중종 7)∼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응림(應霖), 호는 우암(寓菴). 안원군(安原君) ●공량(公亮)의 아들이다.



1531년에 진사가 되고, 1539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1563년 제학으로 있을 때 선계변무사(璿系辨誣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였으나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1590년(선조 23) 그의 공이 인정되어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화산군(花山君)에 추봉되었다.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 등과 교유가 깊었다.



문장이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저서로는 《우암유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兪炳勇〉











★송인(宋寅)

시대 조선

생몰년 1517-1584(중종12-선조17)

본관 여산(礪山)

자 명중(明仲)

호 이암(#이96庵)

시호 문단(文端)

활동분야 학자

다른 이름



1517(중종 12)∼1584(선조 17).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명중 (明仲), 호는 ★이암(#이96庵). 영의정 ★질(#질34)의 손자이며, ★지한(之翰)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외가에서 자랐다.



10세에 ★중종의 셋째서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결혼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봉해졌다. 의빈부·충훈부·사옹원·상의원 등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도총관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이황(李滉)·★조식(曺植)·★이민구(李敏求)·★정렴(鄭#염11)·★이이(李珥)·★성혼(成渾)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였으며,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하였다.



글과 글씨에 능하여 산릉 (山陵)의 지(誌)와 궁전의 액(額)으로부터 사대부의 비갈(碑碣)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그는 특히 오흥(吳興)의 필법을 받아 해서를 잘 썼다고 한다.



저서로는 《이암유고》 12권 4책이 있다.



그의 글씨는 양주의 덕흥대원군신도비(德興大院君神道碑)·송지한묘갈(宋之翰墓글), 남원의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부안의 김석옥묘비(金錫沃墓碑), 여주의 ●김공석묘갈(金公奭墓글), 남양의 영상홍언필비(領相洪彦弼碑), 광주(廣州)의 좌참찬심광언비(左參贊沈光彦碑) 등에 전한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澤堂集(李植)

글庵遺稿(宋寅)

朝鮮金石總覽, 大東書法. 〈李民植〉













▣ 김주회 - 모재 김안국이 간행보급한 <벽온방>과 관련하여 유연재 김희수 선조는 <간이벽온방>을 書하였고, 전남 장성 출신의 하서 김인후는 전북 고창의 영모당 김질 선조와 교유하여 현재 도암사에 김인후의 시 현판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송인과 교유한 분 중에 이민구는 (김대섭-)김확의 매형 이수광의 아들로서 외숙 김확의 묘지명을 찬하였습니다.

▣ 김태서 - 잘 보았습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솔내영환 - 이민구는 김확의 생질, 김확은 이민구의 외숙입니다.

▣ 김주회 - 영환대부님! 지적하여 주신 내용대로 정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식 - 하서 김인후 친필 초천자문을 보았는데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들께서 쓰신 천자문 갖고 계신 분은 소개 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